3월29일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마포구, 관악구, 영등포구, 동작구, 서대문구, 광진구 등 곳곳에서 현수막이 칼로 찢긴 채 발견됐다고 알렸습니다. 오 후보의 현수막에는 “동성결혼, 차별금지, 퀴어축제 전면지원” 등 성소수자에 대한 공약이 담겨 있어 이번 사건은 ‘성소수자 혐오범죄’로 볼 소지가 다분합니다. 소수자를 대변하는 후보에 대한 혐오범죄가 반복된 만큼 문제를 정확히 알리는 보도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은 혐오범죄를 외면하며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태양 현수막 훼손 보도 한겨레 유일

먼저 오태양 후보 현수막 훼손 사건이 얼마나 보도됐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오 후보가 현수막 훼손 범죄 사실을 알린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2개 경제일간지(매일경제, 한국경제),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 저녁종합뉴스를 확인했습니다. 8개 신문과 7개 방송사 중 오 후보 현수막 훼손 사건을 다룬 매체는 한겨레가 유일했습니다.

▲ 3월29일부터 3월31일까지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현수막 훼손 관련 내용을 다룬 신문·방송 보도량(신문은 지면 보도, 방송은 저녁종합뉴스 기준. 괄호 안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 결과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3월29일부터 3월31일까지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현수막 훼손 관련 내용을 다룬 신문·방송 보도량(신문은 지면 보도, 방송은 저녁종합뉴스 기준. 괄호 안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 결과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더 폭넓은 매체를 대상으로 확인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이용해 추가로 관련 보도를 확인했습니다. 3월31일 오후 4시 기준으로 “현수막 훼손”을 검색해 3월29일부터 31일까지 나온 보도 중 오 후보 현수막 훼손을 언급한 경우를 추렸습니다. 네이버를 통해 검색한 결과에서도 관련 보도를 한 매체가 크게 늘지는 않았습니다. 한겨레를 비롯해 미디어스,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헤럴드경제, SBS, TV조선 8개 매체가 사안을 다룬 게 전부였습니다. 소수자 혐오범죄를 후보자가 직접 공론화했음에도 언론은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셈입니다.

‘혐오범죄’ 지적한 한겨레

신문 중 유일하게 지면에서 관련 내용을 다룬 한겨레는 선거기간 벌어진 혐오범죄 및 발언을 집중해서 다뤘습니다. 한겨레는 사진기사 <차별과 혐오 멈춰야 한다>(3월30일)를 1면에 배치하며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의제를 앞세우는 후보의 펼침막이 훼손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공공연히 드러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한겨레 <현수막 찢고, 비하… 선거판 ‘소수자 혐오’ 흙탕물>(3월30일)은 “7개 구에서 펼침막 20여개가 훼손”됐고 “오 후보의 신체 부위나 공약 문구를 찢고 펼침막 설치 끈을 끊거나 일부를 불로 태우는 방식”이었다며 훼손상황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또한 유세현장에서도 “동성애는 병이다”, “동성애는 심판을 받는다” 등 소수자 혐오 발언을 듣는 경우가 많다는 미래당 우인철 정책국장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 3월31일 오태양 미래당 후보의 훼손된 현수막 사진을 실은 한겨레 1면
▲ 3월31일 오태양 미래당 후보의 훼손된 현수막 사진을 실은 한겨레 1면

한겨레는 페미니즘 관련 공약을 내세운 다른 후보들이 온라인에서 공격받고 있다는 점과 오세훈 후보의 ‘중증 치매환자’ 발언 등 혐오발언 문제를 폭넓게 짚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선거에서 발생하는 혐오범죄는 ‘소수자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지적을 덧붙였습니다.

오마이뉴스 <오태양 현수막 훼손 사례 발생… “사회적 소수자 혐오범죄”>(3월29일), 연합뉴스 <미래당 오태양 후보 “성소수자 공약 현수막 곳곳서 훼손”>(3월29일 이유미 기자), SBS <오태양 후보 “성소수자 공약 현수막 훼손… 경찰·선관위 고발”>(3월29일 강민우 기자)는 “명백한 선거방해범죄이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라는 입장이 담긴 오 후보 측 보도자료를 전했습니다. 다만 오마이뉴스는 공식선거운동 첫날부터 “유세현장에서도 혐오차별성 발언”이 있었다는 미래당 측 피해사실을 전달하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해럴드경제 <단독-경찰, ‘선거벽보 훼손’ 30대 검거… 4·7재보선 관련 첫 사례[촉!]>(3월30일 신주희 기자)과 TV조선 <“직장 잃어 분풀이”… 서울서 선거벽보 훼손사건 잇달아>(3월30일 송민선 기자)는 선거홍보물을 훼손한 선거사범이 검거됐다는 소식과 오 후보 현수막 훼손을 함께 보도했습니다. 헤럴드경제의 경우 오 후보 측 보도자료를 인용해 혐오범죄라는 점을 짚었지만 TV조선은 현수막 훼손 사실만 전달해 이번 사건이 성소수자 혐오범죄라는 지적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소수자 혐오범죄 제대로 보도해야 멈출 수 있다

오태양 후보 현수막 훼손 사례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녹색당 신지예 후보 벽보 훼손 사건과 비슷합니다. 신지예 후보 벽보 훼손은 후보자가 ‘페미니스트 후보’라는 이유로 벌어진 여성혐오 범죄였습니다. 신지예 후보도 기자회견을 통해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정치인 한 명에 대한 유례없는 선거 벽보 훼손사건은 20대 여성 정치인이자 페미니스트 정치인을 상대로 한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당시 2018전국지방선거미디어감시연대는 <녹색당 신지예 후보 벽보 훼손, KBS‧MBN 미보도>(2018년 6월8일)를 통해 다수 매체가 신지예 후보 벽보 훼손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2018년 신지예 후보 벽보 훼손 사건 이후에도 소수자 혐오범죄는 이어졌습니다. 2020년 8월엔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내용이 담긴 지하철 광고판이 찢기는 범죄가 벌어졌고, 체포된 남성은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찢었다”고 주장했습니다. 2021년 유사한 혐오범죄가 반복된 데는 언론이 문제를 충분히 공론화하지 못한 점도 배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선거 시기 혐오범죄가 벌어졌는데 거대 양당 후보 행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이를 외면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언론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언론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혐오범죄를 지켜봐야 할 지도 모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3월29~31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종합뉴스9>(평일)/<종합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31일 16시 기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현수막 훼손’ 검색 후 확인된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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