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용산 참사’ 유가족과 생존 철거민들이 지난 31일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에게 “희생자와 유가족을 모독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조차 없이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후보는 시장 자격이 없다”며 “지금이라도 철거민 피해자들에 무릎 꿇고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오 후보가 같은 날 열린 관훈토론에서 용산참사를 “과도하고 부주의한 폭력 행위 진압을 위한 경찰력 투입으로 생겼던 사건”이라고 규정해 논란이 불거진 후다.

오 후보는 용산참사 관련 입장을 질문받자 “재개발 과정에서 전국철거민연합회라는 시민단체가 가세해 매우 폭력적 형태의 저항이 있었다”며 “쇠구슬인가 돌멩인가를 쏘며 저항하고 건물을 점거했는데, 거기에 경찰이 진입하다 생겼던 참사”라고 말했다. 또 “과도하고 부주의한 폭력 행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력 투입으로부터 생긴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9개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1면 모음.
▲9개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1일자 1면 모음.
▲9일 한겨레 3면
▲1일 한겨레 3면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과정에서 적정한 보상을 요구하며 남일당 건물에서 농성했던 임차인들을 경찰이 무리하게 진압하며 벌어진 대형 참사다. 당시 화재 사고로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오 후보 발언은 참사 책임을 임차인들에게 돌린 셈이다.

용산참사 유족과 철거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즉각 성명을 내 “철거민들의 저항이 ‘과도한 폭력’이었다고요? 땅 부자, 집 부자, 투기꾼과 건설재벌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가족들과 땀 흘려 일궈온 생계수단을 빼앗으며,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잔혹한 개발 폭력만큼, 과도 하도 잔혹한 대규모 폭력이 또 있느냐”며 “그 잔혹한 대규모 개발 폭력을 자행한 오세훈 당시 시장이, 철거 세입자들의 ‘과도한 폭력’을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이들은 “용산참사를 부른 뉴타운 재개발 광풍의 시대로 역행하는 서울시장 후보의 공약을 볼 때도 참담했다”며 “게다가 그때 그 책임자가 다시 ‘제2의 용산참사’를 촉발할 개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는 현실이 끔찍했다”고도 밝혔다.

▲1일 경향신문 3면
▲1일 경향신문 3면

 

당시 이들에 연대했던 48개 시민단체 연대체 빈곤사회연대도 “무엇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을 망루 위에 오르게 만들었는가? 용산참사는 세입자 대책없이 이윤만을 좇는 개발정책과 그를 비호한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해 발생됐다”며 “개발규제를 완화하고 개발구역을 무분별하게 지정하며 사람을 쫓아내는 이명박식의 개발정책과 그에 편승한 서울시와 공조한 경찰을 비롯한 국가권력의 폭력이 다섯 명의 철거민과 한명의 경찰특공대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참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용산참사에 책임있는 이들이 처벌받지 않고 성찰없이 권력을 유지하는 동안 세입자의 삶 자체를 철거하는 개발정책도 계속되고 있다”며 “서울 미아동, 개포동을 비롯한 전국의 개발지역에 ‘제2의 용산’이라 적힌 현수막이 나부낀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구호가 여전히 유효하며 용산참사가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인 이유“라고도 밝혔다.

1일 9개 전국단위 아침종합일간지 중 오 후보의 발언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언론사는 경향신문, 한겨레 2곳이다.

▲1일 동아 1면
▲1일 동아 1면
▲1일 동아 3면
▲1일 동아 3면

 

서울 보선 좁혀지지 않는 격차에 ‘부동산 민심’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8~29일 서울지역 유권자 82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오 후보 지지율이 52.3%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30.3%)보다 22.0%포인트 앞섰다. (95% 신뢰수준에 ±3.4%포인트 오차 범위)

오 후보는 4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박 후보를 제첬다. 60대 이상에서 65.1%의 지지를 얻는 등 연령대가 높을수록 지지율이 늘었다. 20~30대 응답자의 지지율도 오 후보가 박 후보를 20%포인트 넘게 앞섰다. 40대 경우 박 후보(43.2%)와 오 후보(43.4%)는 오차 범위 내인 0.2%포인트 차고 접전을 벌였다.

▲1일 세계일보 1면
▲1일 세계일보 1면
▲1일 국민일보 3면
▲1일 국민일보 3면

 

좁혀지지 않는 지지율 격차에 1일 언론은 ‘부동산 민심’을 주요하게 꼽았다. 한겨레는 ”최악으로 치닫는 부동산 민심“을 꼽으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직전 전셋값을 크게 올렸다가 경질된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사건이 치명타였다. 정권의 도덕성까지 흔들리는 악재“라고 지적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사태는 ”활활 타오르던 민심에 휘발유를 끼얹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여권의 선거 전략의 혼선도 한 몫 한다며 “민주당 지도부와 박영선 후보는 엘에이치 사태로 악화한 민심에 ‘사죄’와 ‘맞불’ 두 가지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머리 숙여 사죄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부동산 투기 원조는 우리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과 오세훈 후보”라고 외치는 모양새“라며 ”상호 모순되는 이런 태도는 두 가지 전략의 효과를 모두 다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짚었다.

▲1일 한겨레 1면
▲1일 한겨레 1면

 

세계일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20대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는 등 세대별 정당 지지성향에 지각변동이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세계일보는 “전문가들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세태 변화에 민감한 중도층 민심이 집권여당을 떠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25번에 이르는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며 “현 정부 임기 중반에 치러진 지난해 총선만 해도 코로나19 사태가 정권심판론을 잠재웠다”고 지적했다.

차별 기제로 작동하는 한국 공정성 담론

한국일보가 2021년 연중 기획 ‘탈진실시대, 보수-진보를 넘어’ 연재를 시작하며 첫 번째 주제인 불공정 사회를 전문가 대담으로 풀어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와 김정희원 미 애리조나주립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교수 모두 ‘구조적 불평등의 심화’를 근본 문제로 꼽았다. 김정 교수는 ‘한국 청년에게 불공정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성별·세대 갈등이라기보다 전체적으로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 교수는 “공정성 담론이 사실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명확하게 차별화 기제로 사용될 때가 많이 있는 것 같다. 남녀 문제도 그렇고 여성과 트랜스젠더 간의 문제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1일 한국 8면
▲1일 한국 8면

 

김정 교수는 또 “정의로운 사회는 기회균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것과 그 기회를 활용해서 개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은 다른 문제로, 생애주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하기 때문”이라며 “기회의 평등은 정책적으로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라는 것이다.

김정 교수는 “기회균등을 넘어 적극적 재분배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기회 평등조차 보장되고 있지 않다”며 “(비경제활동인구 통계를 보면) 매달 ‘쉬었음’ 인구는 최대치를 경신 중이고, 특히 20대는 1년 사이 30%나 급증해 거의 50만 명에 달한다. 청년빈곤층의 자립을 위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 또한 청년세대에 형성된 공정성 담론을 ‘계급의 문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청년층 내에서 안정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 범위는 매우 좁다. 안정된 위치에 간 사람들이 (비정규직 등에게) ‘시험 봐서 내가 이 이른 나이에 내부자의 위치로 들어왔는데, 어디 시험도 안 보고 들어오려고 하느냐’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하지만 이런 '내부자'의 위치로 진입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또 (내부자 위치에 들어가) 공정성 개념이 각인된 청년층이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청년층이 있다”며 “그렇게 본다면 지금 청년층의 불공정의 본질은 ‘계급의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1일 한국 9면
▲1일 한국 9면

불공정을 해소할 정치의 역량에 대해 김정 교수는 “LH사태를 봐도 어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문제해결의 단초가 시작됐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이 이러한 편법이나 불공정을 그냥 넘어가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나도 편법을 써야겠다’, ‘영끌해서 주식을 사야겠다’. ‘부동산에 투기를 해야겠다’는 식으로 반응하게 된다. 정부부터 이런 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항상 ‘포용국가’를 얘기하는데, 그 단어가 정확하게 뭘 뜻하는지 정책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이와 관련한 현 집권 세력의 책임에 대해 “진보가 가진 권력에 자정 장치를 더 엄격하게 작동시켰어야 하고, 더 깊이 권력의 위험을 성찰했어야 된다”며 “과거에는 보수의 전유물이었던 권력형 비리가 이쪽(진보)에서 터지고, 국민의 공분을 사는 상류층의 사고와 언어가 삐죽삐죽 노출된다”고 분석했다. 또 “진보를 지지하던 국민 입장에서는 사죄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당연히 보고 싶어하지만 점점 해명이 없어지고, 강행이 이뤄진다. 이런 과정 속에서 뭔가 물이 고여 왔다. LH, 조국 사태 등이 터지면서 물이 밖으로 확 넘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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