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정체성을 낙인화하고,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낙인이 찍혀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단 한순간도 존엄성을 느끼며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날이 확인돼왔듯이 그 고통은 살아가려는 의지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특히 소수자 집단에게) 낙인을 찍고, 혐오를 부추겨서 지지를 모으려는 정치세력들이 있다. 특히 그런 발화들은 지지를 얻어서 권력에 다가가기 위한 기회인 선거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도 그런 모습이 또 반복되고 있다.

아무래도 혐오정치를 주요 기반으로 한 우파정당인 국민의힘과 그 주변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오세훈 후보는 얼마 전 ‘양꼬치 거리의 조선족들 때문에 지난 지역구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식으로 발언해서 문제가 됐고, 보수언론들과 국민의힘 일부에서는 ‘민주당은 친중이고 화교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혐중(중국인과 조선족에 대한 혐오) 프레임을 활용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과 손잡고 힘을 합친 국민의당 안철수는 이번에 경선 과정에서 ‘퀴어퍼레이드를 거부할 권리’를 이야기한 바 있고, 안철수가 그런 발언을 하자 국민의힘의 경선 후보들인 나경원, 조은희, 이언주, 오신환 등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 다퉈 퀴어퍼레이드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발언들을 쏟아냈었다.

이런 발언과 호응은 사실 크게 놀랍거나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난민 혐오, ‘우한 바이러스’ 운운하는 혐중 선동에도 앞장섰던 정치인들이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장 앞에서 가로막고 있고 전광훈이나 태극기 부대와도 연결된 정치세력이니 말이다. 정말 실망스러운 것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 세력들과 손잡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치를 하겠다는 금태섭 전의원 등 중도적 자유주의자들의 태도이다.

금태섭 전 의원이 검찰 출신인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검찰 출신이라고 반드시 검찰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검사 시절에 그가 쓴 ‘묵비’에 대한 글은, 당시에 국가보안법으로 공안탄압을 받던 처지의 나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가 큰 부자이고 자식에게 부를 물려준 것도 결정적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누구든 도덕적으로 완벽할 순 없고 계급적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또 공수처와 검찰개혁에 대한 금 전의원의 입장에 전혀 동의하진 않지만 민주당이 그를 징계한 것은 문제라고 봤다. ‘토론은 자유롭게 해도 행동을 통일해야 한다’는 소위 전통적 '민주집중제'에 회의감을 느껴온 개인적 처지로서, 아무리 ‘강제적 당론’이거나 민주적 토론을 통해 결정된 문제라도 비판할 자유, 행동통일을 거부할 자유는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징계와 일부 검찰개혁 지지자들의 과도한 비난, 댓글, 문자 때문에 마음이 상한 금 전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것도 이유는 알 것 같았다. 탈당을 전후해서 보수언론들과 인터뷰하며 검찰개혁 지지자들을 폄하하고 비난한 것은 과해 보였지만, 상처받은 것의 반작용이라고 이해해보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민주당에 있을 때 퀴어퍼레이드에 공개적으로 참가하고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중도적 자유주의 정치인으로서 그에게 기대할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크게 실망할 것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탈당한 그가 국민의힘에 가서 강연을 하는 것 까지도 그러려니 했지만, 이제 선거에서 아예 손잡고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니 놀랍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중도 자유주의 정치인인 그에게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급진민주주의를 기준으로 정치적 동맹을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 온건한 자유주의, 민주주의, 반부패, 반차별 정도가 그 기준일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그 기준에 단 하나라도 부합하는가?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더니 그것에 가장 대척점에 있는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용산 참사의 책임자였던 오세훈 후보와 같이 유세를 다니는 게 말이 되는가? 그의 ‘소신’은 무엇이었던 것인가?

스스로 궁색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금 전의원은 ‘소통이 안 되고 불공정한 문재인 정부에 맞서서 범야권이 손을 잡았다. 국민의힘이 변화했고 나와 공통점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소통’과 ‘공정’이 기준이라는 말인데, 과연 국민의힘이 ‘소통’을 잘하는 ‘공정’한 정치세력이라는 말인가? 더구나 국민의힘과 손잡는 과정에서 금 전의원이 여러 문제에서 드러낸 입장들도 갈수록 이상해지고 있다. 자유주의자답게 문재인 정부가 시장에 타협해서 망친 부동산을 시장주의적 접근으로 풀겠다는 것은 계급적 한계로 보고 넘어간다고 치자.

▲ 금태섭 국민의힘 전 의원이 3월31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사거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에 대해 지지를 호소했다. 사진=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페이스북
▲ 금태섭 국민의힘 전 의원이 3월31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사거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에 대해 지지를 호소했다. 사진=박형준 부산시장 후보 페이스북

그토록 이견의 포용과 표현의 자유를 말하던 사람이 입장이 다르다고 방송프로(뉴스공장) 폐지를 주장하고, 반민주적인 사법농단 책임 법관에 대한 탄핵도 반대했다. 공수처가 아니라 수사-기소 분리가 중요하다더니 막상 수사-기소 분리가 본격화되자 말바꾸며 반대했다. 특히 냉전우파적인 ‘원전 종북몰이’까지 편드는 것을 보면서, 도대체 이 나라에는 매카시즘에서 벗어난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이토록 없는가 다시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과 힘을 합치며 ‘범야권’이라고 퉁치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같은 야당이라도 여당을 어느 쪽에서 비판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은 완전히 달라지기에 그런 식으로 묶을 수는 없다. 결국 그가 민주당보다 오른쪽에서 그 당을 비판해 왔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이처럼 스스로 ‘중도’, 심지어 ‘진보’로 포장해 민주당을 비판해 오다가 반동적 우파와 손잡는 중도 자유주의적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에 나경원, 박형준을 응원하고 청년극우 유튜브에까지 출연한 진중권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처럼 중도적 자유주의자들이 경쟁적 양당구도 속에서 동요하다가 결국 보수우파 정치세력으로 흡수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유주의자들이 특히 더 소심하고 보수적이라는 일반적 경향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혁명 속에서 자유주의가 형성된 선발 자본주의 국가와 달리 냉전 구도 속에서 스탈린주의 체제와 경쟁 속에서 등장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자유주의는 자유시장경제에 훨씬 더 친화적이고 반공적 자유민주주의에 쉽게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역사적 몰락과 쇠퇴 속에서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됐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금과옥조를 여기는 냉전적 반공우파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진중권 교수의 궤적을 봐도 그것이 어느 정도 나타난다. 지난 정권 때, 진 교수가 극우인사인 전원책 등과 소통하며 남다른 친분을 과시할 때만 해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정치적 이견을 존중하는 태도는 나무라기 어렵고 정치적 차이가 꼭 인간적 적대로 나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전원책과 잘 구분돼지 않는 논리와 태도로 우파 정부의 종북몰이 마녀사냥에 동조할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전부터 ‘검찰대란’을 거치면서 진 교수의 정치적 좌표이동은 더 분명해졌고, 이제 그는 보수언론들이 애정하는 주요 논자가 돼서 우파에게 전략과 전술을 조언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가 청년극우 유투버와 대담한 것을 보게 됐다. ‘나는 소련 몰락 이후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했지만 주사파 운동권들은 여전히 전체주의적 인민민주주의자들’이라는 게 그의 논지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수용’했다는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검찰, 보수언론, 우파 정치세력과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다.

우파 정치세력에 반대하고 민주당을 비판하며, 둘 모두와 구분되는 새로운 좌파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진보좌파 정치세력은 이들과 명백히 달라야 한다. 적어도 국민의힘과 같은 우파와 손잡거나, 안철수나 금태섭, 윤석열에게 협력을 제안하거나, 보수언론이나 종편에 출연해서 민주당에 대한 오른쪽의 비판과 공격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여줘서는 결코 안 된다.

비록 아직 민주당에 머물러 있지만, 미국에서 양당체제를 넘어선 제3의 좌파적 대안의 희망으로 주목받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얼마 전, ‘게임스탑’ 사태에서 포퓰리즘적 선동을 하며 공동대응을 제안한 공화당의 우익 정치인 테드 크루즈에게 이렇게 답했다. ‘이 문제로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면 기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제거하고 싶어해 온 당신들은 그냥 가만 있어라. 이 일을 돕고 싶다면 스스로 물러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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