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탈북자들이 제기하고 있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은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거나, 역사적·전술적인 타당성이 없는 무리한 주장인 것으로 파악됐다.” 

1980년 광주에 침투했다는 북한군 김명국(가명)씨 주장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검증했다. 북한군 침투설의 ‘모태’가 된 탈북민 김명국씨 주장은 2013년 5월 채널A가 무비판적으로 중계하며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김씨의 존재는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는 지만원씨 주장의 주요 근거이기도 했다. 

5·18 진상규명위는 지난 1월31일 내놓은 240여쪽 분량의 ‘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탈북자의 북한특수군 광주 일원 침투 주장’ 검증 단락을 따로 마련했다. 규명위는 “탈북자 ○○○은 2006년경부터 기자회견과 언론인터뷰 등을 통해 본인이 북한 특수군으로 직접 5·18 당시 광주에 침투했는데, 약 300~600명의 병력이 배나 잠수함을 이용해 서해안·동해안으로, 또는 땅굴을 통해서 남침한 후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여러 차례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특수군의 광주침투 주장은 2015~2016년을 기점으로 유튜브 등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확산되었고,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진위를 밝히고 의혹을 해소해 향후 이와 관련된 국민적 논란 및 갈등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진상규명위는 군 및 정보기관에서 보유한 정보자료·교범·교훈집 등과 대조해 (침투설을) 분석하는 한편 로동신문·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문건과 기타 공개자료를 통해 조사 결과를 보완하고 미국정부 문서(주한 미 대사관, 국무부, 국방부, CIA 등)를 통해서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의 진위 여부를 추적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김명국의) 육·해상 및 땅굴을 통한 침투 및 복귀 경로 주장은 과거 북한 공작원 또는 무장공비 침투 사례와 당시 우리 군의 경계태세 등을 종합하여 분석했을 때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규명위는 “특히 자폭용으로 시신을 분쇄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폭약 관련 내용은 폭발물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일반인 수준의 서술로 그 신빙성이 극히 의심되는 주장”이라고 결론 냈다. 
 
이어 “(김명국 주장처럼) ○○해안에서 증심사까지 약 60km의 거리를 도보로 ‘광주시가지를 우회하여’ 5시간 내 이동하기에는 거리 및 위치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5·18 투입 북한군 기념 열사릉(전사자 묘지) 주장에 대해서도 “5·18 당시 남파 후 전사하여 복귀 못 한 북한군의 묘지가 청진에 소재한다는 주장으로서, 우리 군 및 북한 자료 등을 확인한 결과 이는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인원들의 묘지인 것으로 추정됐다”고 반박했다. 

5·18 진상규명위는 또한 “‘5·18 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 ‘5·18 프레스’, ‘5·18 기계공장’ 등 북한에서 5·18을 기념한다는 활동을 검증했는데, 이는 모두 다른 의미로 ‘5·18’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5·18 무사고 정시견인초과 운동’의 ‘5·18’은 1979년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18차 전원회의를 의미하는 식”이라고 밝혔다. 규명위는 무엇보다 “구체적인 도발 징후 또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침투 사례는 없었다는 것이 미국 정부 기관들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했다. 

▲2013년 5월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의 한 장면. 정면에 보이는 이가 김광현 진행자. 뒷모습 중 모자이크 처리된 이가 김명국씨다.
▲2013년 5월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의 한 장면. 정면에 보이는 이가 김광현 진행자. 뒷모습 중 모자이크 처리된 이가 김명국씨다.

박근혜정부 첫 해 첫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을 3일 앞둔 2013년 5월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은 ‘5·18 북한군 개입의 진실’ 편을 통해 ‘남파 특수군 최초 인터뷰’를 내보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방송에서 김명국씨는 “광주폭동 참가했던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이 됐다”고 주장했다. 채널A는 김씨 주장을 바탕으로 “5월23일 10시 광주시내 한 복판 진입”, “5월19일 4시 대항리에서 50명 전투인원 지프차 타고 출발”, “5월19일 밤 9시 황해남도 장산포 바닷가 도착” 같은 자막을 마치 사실처럼 제공했다.

당시 김명국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동아일보 기자 김광현씨는 “(김명국씨) 증언이 제대로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 사건은 채널A의 사과방송으로 끝났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또 다른 탈북민 이주성씨는 김씨의 주장을 바탕으로 논픽션 책 ‘보랏빛 호수’를 펴내 故 김대중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유죄를 받았다. 

2013년 6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한 권순활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은 “전언이 아닌 본인의 이야기이고, 본인이 그 진술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는 상태에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부분도 감안해 주길 바란다”고 했으며 “내용을 보면 굉장히 구체적이다.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나 합리적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채널A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및 경고’를 받고 사과방송을 했다. 

진상규명위는 “향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탈북자 면담 조사를 중점적으로 추진해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김명국씨는 5·18 진상규명위 앞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김씨가 8년 전 채널A 방송에 등장하기까지의 섭외 과정, 국가정보원 개입 여부 등 의혹이 드러날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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