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보궐선거에 대해 조선일보를 통해 입을 열었다. 조선일보가 지난 9일 윤 전 총장에게 4월 보선 개입을 요청한 지 20일 만이다. 

29일 조선일보는 정치면 톱기사로 윤 전 총장 전화 인터뷰를 실었다. 윤 전 총장은 ‘이번 보궐선거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느냐’는 조선일보 질문에 “권력을 악용한 성범죄 때문에 대한민국 제1, 제2 도시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선거를 다시 치르게 됐다”며 “그런데도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2차 가해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의 투표가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투표하면 바뀐다”고 덧붙였다. 

이에 조선일보는 “이번 보궐선거를 정권 심판의 장(場)으로 규정하고 투표 참여를 독려한 것”이라며 “한편으로 투표하지 않으면 현 정권의 부당함을 용인하는 것이라는 게 윤 전 총장의 시각”이라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29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인터뷰 기사
▲ 조선일보 29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인터뷰 기사

 

윤 전 총장은 ‘야권 후보 선거운동을 직접 지원할 계획이 있느냐’는 조선일보 질문에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사실상 야권을 지지하는 입장을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 전 총장이 지난 19일 101세 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를 만난 사실이 알려졌는데 윤 전 총장은 김 교수의 이날 만남 사진 4장을 조선일보 유튜브 ‘팩폭시스터’를 통해 지난 26일 공개했다. 윤 전 총장은 최근 조선일보 등 일부 매체를 통해 꾸준히 자신의 근황을 알리며 소위 ‘언론플레이’에 나서는 모양새다. 조선일보 보도를 보면 윤 전 총장은 김 교수에게 “제가 정치를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고 김 교수는 괜찮다는 취지로 답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사진=유튜브 조선일보 '팩폭시스터'
▲ 윤석열 전 검찰총장(왼쪽)과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사진=유튜브 조선일보 '팩폭시스터'

 

큰 틀에서 윤 전 총장은 조선일보 등 언론의 논조와 발을 맞춰가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에 걸쳐 조선일보는 윤 전 총장이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관련 입장을 내야 한다고 주문했고, 윤 전 총장은 지난 2일 이례적으로 언론사(국민일보)와 단독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이후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자 대권주자로 발돋움했고, 이후 조선일보는 꾸준히 윤 전 총장 소식을 다루고 있다.

지난 11일 김창균 논설주간의 칼럼 “‘보수와 악연’ 윤석열·안철수·오세훈이 野 희망 되다”, 지난 12일 윤평중 한신대 교수 칼럼 “윤석열이 마주한 ‘별의 순간’”, 지난 17일 이한우의 간실열전 “임금을 섬기는 도리”, 지난 19일 박정훈 칼럼 “문 정권이 불러낸 ‘지연된’ 시대정신” 등에서 윤 전 총장을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9일부터 윤 전 총장의 4월 보선 개입을 요청했다. 이동훈 논설위원은 “반기문과 다른 윤석열, 몸 사릴 필요없다”라는 글에서 “윤석열 총장은 4월 보선에 개입할까요? 아니, 개입해야 한다고 보십니까”라고 자문한 뒤 “결론은 뻔하지 않습니까. 몸 사릴 필요 없습니다”라며 선거 개입을 주문했다. 

지난 16일 김대중 칼럼 “4·7 선거는 그냥 보궐선거가 아니다”에서는 “야권의 승리를 담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카드는 윤 전 총장의 응원”이라며 “보궐선거까지는 3주의 시간이 있다. 야당의 사활이 걸리다시피 한 중대하고 절박한 선거이니만큼 자신이 앞으로 딛고 일어설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야당의 4·7 승리에 일조하는 게 역시 일의 당연한 순서”라고 한 뒤 “윤석열이 앞으로 정치인으로서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면 이번 선거가 적절하고 당연한 기회”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29일 윤 전 총장 인터뷰와 함께 기존 진보·보수 진영구도를 변형하는 내용의 칼럼도 실었다. 최근 대선·지방선거·총선 등에서 연패한 보수진영 입장에서 기존 구도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다. 집권 마지막해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도 함께 하락하는 가운데 민주당 대 반민주당 구도가 유리하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이날 조선일보 정치부장의 칼럼 “‘진보, 보수’ 舊체제가 무너진다”을 보면 “여권은 다음 달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진보, 보수’ 구도로 치르고 싶어한다”며 “민주당에 등 돌린 진보와 중도와 개혁적 보수가 한 배를 타는 연합전선이 구축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현 집권층이 거리에서 싸우던 시절의 ‘민주, 반민주’ 전선이 30년 뒤 ‘민주당 대 반민주당’으로 부활하는 셈”이라고 했다. 

현재까진 보수야권에서 주장한 정권심판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재보선과 차기 대선에서 보수야권에 역할을 해야 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윤 전 총장 등을 끌어안기 위해 반문 혹은 반민주당 프레임은 당분간 자주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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