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조직 효율화와 공적책무 강화를 골자로 조직개편안을 시행한다. KBS 양대 노조 반발을 불러온 개편안이 24일 KBS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사진은 조직 변화의 시급성에 동의하면서도 구체적인 ‘비전’이 부족하다며 보완책을 촉구했다.

KBS 이사회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에서 임시이사회를 열어 ‘직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KBS는 시행세칙 개정 등 후속 절차를 거쳐 이르면 다음달 초 개정안에 따른 인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KBS가 밝힌 개편안 주요 취지는 △지상파 중심 선형조직에서 디지털형 비(非)선형 조직으로의 전환 △유사·중복 업무 통폐합을 통한 인력 운영 효율화 △최고 수준의 재난미디어 조직구축 등 핵심 업무 강화 등이다.

조직개편안에서 두드러지는 대목은 ‘보직 10% 이상 감축’이다. 국장·부장·팀장급 보직을 현재 556개에서 491개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국장급은 52명에서 46명, 부장은 155명에서 137명, 팀장은 349명에서 308명으로 조정될 전망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KBS 사옥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KBS 사옥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업무를 통폐합하는 직무 재설계도 추진된다. 국은주 전략기획실장은 이사회에서 “부서가 합쳐지거나 소속이 바뀌는 구성원은 200여명이 될 것이다. 정책적 발령으로서 당장 통폐합하지 않아도 일부 조정을 먼저 시작하는 부서가 50여명”이라고 밝혔다. 대략 250여명의 인사 발령이 점쳐진다.

보도본부의 경우 ‘재난미디어센터’가 기존 부장급에서 국장급 관할로 격상돼 설치된다. 모든 취재부서에는 ‘디지털 직무’를 명기하기로 했다. 국 실장은 “지상파 방송사 우선인 업무 방식을 디지털로 견인하기 위해 모든 부서가 디지털 기사를 최대한 늘리고 가칭 ‘디지털전담기자’를 배정해 운영되도록 하는 의도로 업무분장에 넣었다”고 설명했다.

보도본부 스포츠국은 4개 부서 중 2개 부서(스포츠기획부·스포츠콘텐츠제작부)를 합쳐 3개 부서로 축소된다. 국 실장은 “현업자들 반발이 꽤 많았다”면서도 “MBC나 SBS는 스포츠 자체 중계를 포기하고 자회사로 이관했다. 저희는 공영방송이고 소외 종목은 KBS가 아니면 볼 수 없기 때문에 중요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각종 중계방송이 줄고 있고, 총원이 54명인데 4개 부서를 유지하고 있어 인원 대비 조직이 과다하다는 판단”이라 말했다.

개편안에 대한 KBS 내부 구성원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KBS노동조합 등 양대 노조 모두 개편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이사회 당일에도 노조 조합원들의 피켓 시위가 이어졌다. 이에 김상근 이사장을 비롯한 일부 이사진은 개편안에 관한 노조와의 협의 여부를 경영진에게 수차례 되물었다. 갈등이 불거지면서 오히려 개혁 동력을 상실해선 안 된다는 당부도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이사회에서의 직제규정 개정안 의결을 앞둔 24일 자사 건물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이사회에서의 직제규정 개정안 의결을 앞둔 24일 자사 건물 앞에서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이번 개편안의 ‘비전’이 약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강형철 이사는 “경영진의 고육지책에 동의하고 찬성하지만 이것이 가져온 파장에 대해 부정적인 효과를 우려한다”며 “신규인력, 더 창의적인 인력이 들어와야 하는데 비전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김경달 이사는 “디지털 전환 과정에 대해 늦게나마 절박함이 느껴지는 대목이 있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은 들지만 여전히 너무 부족하다, 좁다, 느리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실제 이런 직무재설계 과정을 통해서 뭘 하겠다는 부분이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서재석 이사 역시 “조직을 바꾸는 게 회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다. 회사에 힘을 실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조직개편안의 지향점에 충돌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 디지털, 멀티 플랫폼을 강조하기 위해선 그쪽 업무가 늘어나야 한다. 이제껏 KBS가 하지 않던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인원을 늘려야 한다”며 “어떤 부서에 직무를 넣는다고 강화하는 게 아니다. 직무를 새로 설계하고 전문가가 와야 하고 회사에서 전문가를 찾아 자리에 앉혀야 한다. 그런데 회사 지향점에 조직개편이 대응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시니어’ 인력을 몰아낼 대상으로 치부하기보다 제대로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영근 이사는 “‘시니어’로 통칭되는 사람들이 숫자 끼워맞추기 식으로 이리 가고 저리 갔을 때 직무설계 목적인 인력의 효율적 운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자칫하면 조직의 냉소주의가 조성될 수 있다. 시니어들이 의욕을 갖고 자긍심, 최소한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고연차를 실무와 먼 부서로 이동시킴에 따라 중·저연차 사원들에게 업무가 집중될 가능성도 문제로 제기됐다.

김태일 이사는 “조직개편이 너무 늦었다. 미흡한 수준이더라도 결심할 일이고 매듭지어야 할 일”이라며 “일단 이렇게라도 하고 앞으로 더 가야 할 건 더 처절하게 가자”며 시급성을 강조했다. 박옥희 이사 또한 “모두를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며 “너무 길게 끌면 조직의 화합을 더 늦추는 문제가 된다”고 시급성을 강조했다. 이사회는 결국 2시간에 가까운 질의 끝에 개편안을 의결했다.

양승동 KBS 사장은 “밖에서 민간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을 만나보면 1년에 한번 (조직개편을) 한다고 한다. KBS라는 언론사가 그렇게 하기 쉽지 않지만 (미디어 환경) 변화가 빠르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KBS 내부 혁신을 통해서 국민 눈높이에 더 부흥하는 효율적이고 유연한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내부적으로 진통”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무리 단계라는 입장도 전했다.

그러면서 양 사장은 “주니어 인력의 과부하 문제는, 인력 재배치 안이 나오면 70명에서 100명 사이의 신규인력을 상반기 중에 조만간 공급하고 채용할 생각이다. 시니어 인력은 계속 KBS의 중요한 이슈였다. 워낙 절박한 상황이라는 데 많은 인식을 공유하는 상황이다보니 본부별 직종별로 지금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어서 조직개편과 동시에 준비해서 시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명예퇴직 시행 여부에 대해선 “‘딜레마’가 있어서 결론은 못 내리고 있는데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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