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 열풍에 전 세계 관심이 모이는 동안 방송가에서는 걱정과 우려가 들린다. 전통적인 오디오 매체로서의 라디오 지위가 더욱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이다. 라디오 청취자는 고령층에 집중돼있고, 단 한 번도 라디오를 들어본 적 없는 세대가 미디어 업계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디오 청취 방식의 80%를 차지하는 차량용 라디오 수신기가 조만간 사라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클럽하우스와 라디오가 작동하는 방식이 주요 사용자층만큼이나 전혀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재난상황에서 안정성이 보장되는 주파수 채널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낙관론도 있다. 그러나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클럽하우스라는 새롭고 성공적인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라디오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방송사 라디오 PD들을 통해 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들을 들어봤다.

“아, 이런 것까지 나왔구나”


윤성현 KBS PD는 ‘클럽하우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이 한마디에 담았다. “라디오만의 본질적인 미덕을 대체할 수 있는 굉장히 강력한 플랫폼이 나타났다.” 윤 PD는 ‘심야식당’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슈퍼주니어의 키스더라디오’ ‘불륨을 높여요’ 등 심야시간대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청취자들과 오랜 시간 소통해왔다. 그런 그에게 진행자(모더레이터)와 청취자(리스너)의 실시간 소통이 이뤄지는 클럽하우스는 복잡한 마음을 불렀다.

“위협적으로 느껴진 건 라디오에서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뒀던 부분이다. 라디오 청취자들은 사연이라는 방식으로 진행자에게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DJ나 게스트가 내가 없는 공간에서 나누는 대화에 끼고 싶고, 같이 있고 싶다는 여지가 있었다. 클럽하우스에선 가상의 방에 같이 모여앉아 의지에 따라 화자로 참여하거나 듣고만 있을 수 있다. 요즘 시대적 흐름이나 기술은 ‘여지’로 남겨두는 게 없더라. 과학기술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런 것까지 나와버렸다’는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윤 PD는 라디오에 대한 클럽하우스의 영향이 제한적일 거라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매체는 결국 영상이든 오디오든 이용자의 시간을 갖고 싸우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TV가 발명된 순간 라디오가 영향을 받았듯 그런 영향을 받는 관계는 계속 생겨났다. 읽는 매체든 보는 매체든 라디오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며 “클럽하우스는 라디오와 굉장히 비슷한 속성을 가진 만큼 이용자들의 시간을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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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은 CBS PD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멍석 깔아주면 말을 못하는 분위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너무 말을 하고 싶어하더라”며 클럽하우스의 성공이 의외였다고 전했다. 김 PD는 CBS에서 시사라디오 및 라디오다큐멘터리,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오디오·영상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김 PD는 한 동화작가의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뒤 클럽하우스에서 열렸던 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떠올렸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방이었다. 그는 “클럽하우스 하면 유명한 사람들이 주로 ‘마케팅 인사이트’를 주는 걸 떠올리는데, 많은 여성들이 내가 어릴 때 어떤 책을 읽었고 무엇이 소중한 양분이 됐는지 말하고, 최악의 동화책을 이야기하면 서로 박수치면서 공감하는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요즘 많은 이용자들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 내 의견이 반영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경험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다.

차량용 라디오가 사라진다면


라디오 업계 위축은 고착화 된 지 오래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의 방송통신광고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라디오 광고비는 2000억원 대가 무너져 1861억원대(전년 대비 -10.7%)로 나타났다. 올해도 감소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라디오 이용률은 23.1%이며 청취 방법은 자동차 이동 중이 79.2%로 압도적인 반면 앱(10.8%), 모바일·스마트기기(3.7%)는 미미했다. 

MBC 경영진은 최근 방송문화진흥회 업무보고에서 “커넥티드카의 세상이 오면 라디오가 없어질 거라는 전망이 있다. 스포티파이 같은 음원 전문 플랫폼, 클럽하우스 같은 디지털 라디오와 유사한 새로운 서비스 탄생으로 라디오가 변화 위기에 직면했다”며 “적절한 시점에 미래를 위해 판단할 수 있도록 긴장하겠다”고 위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익명의 지상파 라디오 PD는 “시장이 줄어들면 대대적인 제작 방식 변화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하나의 팀이 PD, 작가, 진행자, 엔지니어까지 규모가 있는 팀으로 꾸려졌다면 이제는 줄어들 거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제작진 감축이 가속화될 거라는 것”이라며 “회사에서도 그걸 계속 염두에 두고 기획안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라디오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손한서 MBC 라디오PD는 “매일 공기처럼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매체는 라디오가 아닐까. 라디오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오래 지속돼왔다. 그것이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 PD는 MBC에서 ‘문지애의 뮤직스트리트’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등을 제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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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라디오…존재 이유는


손PD는 “제 나이가 마흔 중반이 되었는데 중학교 때 듣던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아직도 방송되고 있다. 해외를 다녀오고 방황을 하다 와도 ‘이곳에 가면 항상 위로해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새로 생긴 매체들이 하기 힘든 일이다. ‘별밤’ DJ가 이문세씨에서 김이나씨까지 이어져 왔고, 김신영씨는 ‘정오의 희망곡’을 20대에 시작해 40대 가까운 지금까지 맡고 있다”며 “매일 들를 필요는 없지만 살다가 힘들 때 와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역할로 본분을 다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디오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끝까지 살아있을 매체’이기도 하다. 김다은 PD는 “새로운 매체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라디오가 여전히 자신과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매체로서 기능한다고 본다. 그런 사람들은 재난 상황이 생겼을 때 라디오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고독사회로 나아가는 상황을 생각하면 그 안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라디오가 생존을 위한 매체일 수도 있고, 사회관계를 위한 존재일 수도 있다”고 짚었다.

윤성현 KBS PD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이걸 들으면 나와 무언가를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납득이 되는 커뮤니티로서의 기능이 있다. 클럽하우스도 가능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정제된 음악과 이야기를 전송하는 방식은 아니다. 클럽하우스가 확장성과 폭발성이 강점이라면, 라디오의 소속감과 기다림의 영역은 아직도 유의미한, 대체하기 어려운 속성”이라고 밝혔다.

반면 10년차 이상의 한 프리랜서 라디오PD는 “‘전통’ 지상파 라디오는 사실상 죽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생방·편성 위주의 단순히 멘트하고 음악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생존할지 의문이다. 기본 구성, 제작, 포맷부터 편성까지 모두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라디오의 미래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 PD는 “영상도 그렇지만, 오디오 콘텐츠는 이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어 세상을 바꾸는 시대이다. PD, 작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편안하게 기존 체계에 기대어 나태하게 일하는지 반성하고, 뼈를 깎는 혁신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바뀌지 않으면 모두 도태될 거다. PD들은 어떻게 소리로 정보를 풍요롭게 전할지 고민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직접 글도 써야 한다”며 “정보를 효율적으로 담는 법부터 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다은 PD는 “과거엔 지상파 방송이 큰 정치, 거시적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미시적 이야기가 필요하다. 각각의 경험을 가진 청취자들에게 발언권을 많이 주는 열려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윤석열 검찰총장보다 변희수 하사 소식을 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느낄까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며 “라디오가 갖는 원래의 물성을 생각하면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소수자에게도 열려 있는 매체다. 소수자들에게 개방돼야 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 역할에 더 충실한 것이 지금의 시대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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