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다. 그럼 두 번째로 가장 큰 기업은? 놀랍게도 쿠팡이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직후에는 쿠팡이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이 됐다. 현재는 주가가 다소 하락해 SK하이닉스에 이은 3위다. 

이런 빅뉴스를 전하는 언론 기사를 보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단정적이라고 한다. 

[관련기사 : 쿠팡 미국 상장이 정말 ‘차등의결권’ 때문일까]

언론들은 쿠팡이 미국에서 상장한 이유는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미국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차등의결권은 지배주주가 가진 주식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김범석 의장이 지닌 쿠팡 주식은 29배의 의결권을 갖게 된다. 

차등의결권이 있기에 미국에 상장했다고 주장하는 많은 언론의 논리는 이렇다. 상장되면 지분이 희석된다. → 지분이 희석돼도 지배주주가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다. → 희석된 지분에도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 미국에는 차등의결권이 있다. → 미국에 상장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쿠팡이 미국에 상장한 이유를 더 단순하고 더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쿠팡이 미국에 상장한 이유는 미국에 상장하면 상장 차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에 상장했다면 과연 쿠팡이 삼성전자에 이은 2위나 3위 기업이 될 수 있었을까? 전자상거래 매출만으로도 쿠팡을 앞지르는 인터넷 공룡 네이버보다도 더 시총이 커질 수 있었을까? 기라성 같은 현대차, LG화학을 가볍게 누를 수 있었을까? 만년 적자기업인 쿠팡이 롯데쇼핑, 현대백화점, 이마트, 신세계와 같은 한국 유통회사 주식을 다 합친 것보다도 몇 배가 더 커질 수 있을까?

물론 그럴 리 없다. 쿠팡의 2018년 영업손실액은 1조원을 초과한다. 2020년 영업손실액도 무려 5800억원이다. 코로나 특수로 매출이 거의 두 배 증가해 개선(?)된 결과다.

▲ 쿠팡. 사진=쿠팡
▲ 쿠팡. 사진=쿠팡

그럼 왜 미국에 상장하면 상장차익이 커질까? 그것은 한국은 과거 실적을 주로 보지만, 미국은 미래 성장성을 더 높게 평가하기 때문 아닐까? 단순히 미국 시장이 더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나 미국 시장에서 상장해 막대한 상장차익을 거둘 수 있다면 한국에 상장할 기업은 아무도 없다. 쿠팡이 지닌 미래가치가 미국에 더 어필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쿠팡 사례는 2014년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한 외국 기업이다. 

결국, 우리의 질문은 이렇게 돼야 한다. “왜 미국은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하는데 한국은 과거 실적에 치중할까?”

나는 미국이 미래가치를 과감하게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투명성에 대한 시장 신뢰라고 생각한다. 시장 투명성이 부족하고 신뢰가 없으면, 과거 실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미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면 남는 건 과거 실적이다. 쿠팡처럼 과거가 만년 적자기업은 한국 시장에서 높게 평가받기 어렵다. 그러나 시장 투명성에 대한 믿음이 크다면 미래를 적극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정보를 신뢰해야 미래 성장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 한국은 미국보다 어떤 점이 불투명할까? 의외로 형식적 공시제도는 미국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첫째,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크다. 소유와 지배의 괴리가 크면 기업과 특정 대주주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일감몰아주기 등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 판단이 발생한다. 지배주주 2세를 위해 기업의 이득이 특정 회사로 도관(터널링)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또는 삼성물산 같은 우량기업이 제일모직에 헐값에 인수된다. 이러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은 소유와 지배의 괴리로 인해 발생한다. 

둘째, 이사회 감시 기능이 떨어진다. 한국은 재벌총수 일가의 밥상머리 회의가 공식 이사회보다 중요하다. 그룹 회장의 잘못된 결정이 이사회를 통해 시정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런데 차등의결권 제도는 소유 지배 괴리도를 더욱 크게 하고 지배주주의 참호 구축효과(entrenchment)를 높여 이사회 견제를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그 외에 기업인 범죄 등에 대한 단호한 처벌 등이 예측 가능하고 투명한 시장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쿠팡은 왜 미국에 상장했을까?”의 정답은 미국에 상장하면 돈을 많이 벌기(상장 차익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장 차익이 더 큰 이유는 미국은 미래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미래가치에 높은 가중치를 주는 이유는 바로 시장 투명성의 믿음이다. 투명하지 못한 시장은 예측가능성이 없기에 과거 실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 시장 불투명성 근원은 소유 지배 괴리 등인데 차등의결권 제도가 도입되면 소유 지배 괴리도는 더욱 커지게 된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이코노미 조선’ 칼럼에서 “쿠팡이 한국 증시에 상장했다면 즉시 벤처캐피털의 경영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 벤처 기업이 상장 즉시 벤처캐피털의 적대적 M&A 희생양이 됐을까? 아니 손정의가 이끄는 소프트뱅크와 국내 벤처캐피털이 다른 게 무엇일까? 오히려, 차등의결권이 도입돼 소유 지배 괴리도가 더욱 커지면 한국은 쿠팡처럼 과거 실적보다 미래 가치가 큰 기업의 미래 예측을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시장의 토대에서 더욱 멀어질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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