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성상민의 문화뒤집기] ‘미나리’, 아시아인 미국 이민사 정면으로 보다
[성상민의 문화뒤집기] ‘미나리’, 아시아인 미국 이민사 정면으로 보다
‘미나리’, 한국 떠났지만 쉽게 미국인이 될 수 없는 경계 놓인 ‘이주민’의 존재 포착

※ 영화 ‘미나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한국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썩이고 있다. 201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대상,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20년 2월에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총 6개 분의 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한국과 관련된 작품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시작해 미국의 주별 비평가협회에서 상을 받고, 바로 직전에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상을 받은 화제의 영화. 바로 리 아이삭 정(Lee Issac Chung, 한국 이름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작품 ‘미나리’(Minari)다.

‘미나리’는 작년 1월 26일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조금씩 한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작품인 동시에, 주연 배우 상당수 역시 한국인 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구성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을 맨 처음으로 공개한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받게 되면서, 조금씩 한국 언론과 여론은 ‘미나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미나리’에 등장하는 주연 배우들은 모두 한국에서 이름이 어느 정도 잘 알려진 배우들이다. 드라마 ‘워킹 데드’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으로 이름을 알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Steven Yeun)과 독립영화 ‘환상속의 그대’에서 처음 두각을 드러낸 이래 영화 ‘최악의 하루’,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청춘시대’ ‘녹두꽃’에 연이어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져온 한국인 배우 한예리가 각각 미국으로 이민을 간 부부 ‘제이콥’과 ‘모니카’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모니카’의 어머니인 ‘순자’ 역할에는 데뷔 초창기부터 김기영 감독의 전설적 서스펜스 영화 ‘화녀’와 ‘충녀’로 영화계에 깊게 이름을 남기고, 가수 조영남과의 결혼과 미국 이민으로 인한 잠시의 공백기를 제외하면 꾸준히 방송과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활발히 활동 중인 윤여정이 담당했다. 주연 배우 캐스팅으로만 보면 한국 영화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을 휩쓸어 온 ‘미나리’는 이제 두 차례의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하나는 영국을 대표하는 영화-드라마 시상식 BAFTA(British Academy Film Awards,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인이 그렇게도 선망해왔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미나리’는 영국 BAFTA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모두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갔다. (BAFTA에서는 감독상·여우조연상·남우조연상·외국어영화상·음악상·캐스팅상,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감독상·각본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음악상의 후보에 올랐다.) 이전까지의 수상 기록을 생각하면, 최소한 1개 부문 이상에서 상을 받을 것은 매우 유력해 보인다.

이와 함께 한국의 미디어나 여론이 ‘미나리’에 향하는 관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기생충’의 수상 기록은 주로 감독이나 각본, 촬영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미나리’는 윤여정이 무수한 해외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한국인 배우로서는 최대 수상 기록을 세울 것이 매우 유력한 점도 미디어와 여론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2021년에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기는 전세계적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최소한 한국에 있어서는 ‘미나리’의 연이은 수상 소식이 일종의 ‘사이다’와도 같은 존재가 된 셈이다.

그러나 단순히 ‘미나리’를 한국의 국위를 선양한 작품으로 보는 것은 타당한 일인가. 이미 몇몇 언론들이 지적했지만, ‘미나리’는 한국인 배우들이 주연으로 등장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간 한국계 미국인들의 삶을 그리지만 ‘미나리’는 엄연한 미국 영화의 자장 아래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작품의 제작사가 브래드 피트가 창립자 중 하나인 것으로 유명한 플랜B(Plan B) 엔터테인먼트인 것임은 물론 프로듀서, 투자 등의 제작 시스템도 모두 철저히 미국 영화의 구조 속에서 제작이 되었다. 소위 소니 픽쳐스나 디즈니 등으로 상징되는 ‘헐리우드 대형 스튜디오’와는 거리가 있는 일종의 독립적 제작 형태로 완성된 작품이긴 하나, ‘미나리’가 한국과 관련된 소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한 것과 이 작품이 제작된 과정은 엄연한 분리가 필요하다.

동시에 ‘미나리’ 작품 내부의 흐름 역시 여러모로 곱씹어가며 봐야 할 지점들이 산적하다. ‘미나리’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어떤 한국계 가정의 ‘이민사’를 다루는 작품이다. 작품은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는 두 자녀인 장녀 앤(노엘 케이트 조)와 막내 데이빗(앨런 김)와 함께 미국 아칸소주의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제이콥과 모니카는 미국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 보인다. 캘리포니아 같이 ‘코리아타운’이 형성될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살다가 뭔가 큰 마음을 먹고서 아칸소에 온 것이 은연 중에 느껴진다. 제이콥은 이 드넓은 푸른 들판에서 자신만의 ‘가든’을 짓고 살기를 원하지만, 모니카는 제이콥의 모습이 영 마땅치가 않다. 모니카는 제이콥이 가족들에게 새롭게 이사갈 곳이 어떤 곳인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을 지적한다. 태풍이라도 불면 쉽게 날아갈 것 같은 가건물 같은 집은 계단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고, 비라도 오면 바로 여기저기에서 물이 샐 정도로 마감 상태가 좋지 않다. 분명 땅은 넓고 푸르지만, 대신 주변에는 딱히 다른 집들이 보이지 않을 만큼 한적해도 너무나 한적하다.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제이콥과 모니카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작품은, 서서히 작품을 전개해나가면서 이 두 부부와 가족의 맥락을 점차 섬세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아칸소에서 ‘병아리 감별’ 일자리를 구해 생계를 유지한다. (‘병아리 감별’은 실제로도 한국계를 비롯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주로 종사했던 저임금 일자리이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이 처음인지 계속 헤메내는 모습을 보이지만, 제이콥은 이미 오랜 시간 일을 해봤다는 듯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병아리의 성별을 분류해낸다. 그러나 제이콥에게는 이 일은 어디까지나 ‘잠시’ 일하는 것임에 불과하다. 숙련된 그의 병아리 분류 솜씨는 그에게는 미국에서 온갖 고군부투하며 생존하기에 바빴던 하나의 ‘흔적’에 불과하다. 그가 일부러 아칸소의 너른 들판으로 이사를 온 것을 고집한 이유는 번듯한 사업체를 만들고 싶기 위해서다. 미국 음식에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처럼, 배추나 고추 같이 한국에서 주로 기르는 야채들을 길러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에게 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제이콥’의 계획에 불과하다. 모니카는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들을 제외하면 한국 사람이 보통 보이지 않는 아칸소가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실제로도 아칸소는 한국인이나 아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 아니며, 상대적으로 보수성이 짙은 남부 지역이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많은 병아리 감별 공장에서 간신히 한국 사람을 만나기는 하지만, 그다지 친해지기 쉽지 않다. 교회는 있지만, 소위 ‘한인 교회’는 없다는 말에 내심 아쉬워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역 교회를 나가봐도, 교회에는 백인들만 가득할 뿐 아시아계 이민자는커녕 흑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이 넓은 동네에 자신들만 ‘한국인’이라는 현실이 모니카는 내심 답답하지만, 정작 제이콥의 생각은 다르다. 제이콥은 모니카와 달리 한인들을 제일 믿을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선언한다. 이미 몇 번씩이나 미국에서 같은 한국계에게 속은 적이라도 있다는 듯, 제이콥은 한국계들을 무척이나 불신하고 있다. 허나 역설적으로 제이콥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믿지 못할 한국계’를 만날 수밖에 없다.

도무지 제이콥이 미덥지 않은 모니카는 대신 자신의 자녀, 특히 데이빗에게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이는 데이빗이 ‘아들’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데이빗이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모니카는 데이빗의 심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에 나선다. 매일 청진기를 데이빗의 가슴에 가져다 대어 심장의 ‘잡음’이 얼마나 들리는지를 확인하는 한편, 밖에 나가서도 뛰는 일도 없도록 관리한다. 그에 비하면 같은 자식이지만 딸인 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모니카의 관심은 덜한 편이다. 물론 앤이 데이빗보다는 큰 지병 없이 건강하며, 무엇보다 핏줄만 한국계일 뿐 미국 문화가 훨씬 익숙한 데이빗과 달리 앤은 미국 문화에도 익숙하지만 모니카와 제이콥 부부처럼 한국 문화도 잘 아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정작 데이빗은 모니카와의 기대와는 또 다른 모습과 심리를 보인다. 데이빗은 엄마가 자신에 가지는 기대, 자신이 ‘잘 되라는 이유’로 하는 모든 행동들이 부담스럽다. 도리어 교회에서 다른 백인 여성과 친해지지 못하는 모니카와 달리, 데이빗은 교회에서 처음 만난 백인 가정의 아이 ‘조니’(제이콥 웨이드)와 쉽게 친해질 정도로 미국의 문화에 익숙하다. 오히려 데이빗에게는 ‘남자’답게 살 것을 계속 강하게 강조하는 아빠 제이콥, 제이콥보다는 좀 더 섬세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은연 중에 강요하는 엄마 모니카 모두가 낯설게 느껴진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이렇게 한 가족이지만 이미 모니카와 제이콥의 가족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향한 원대한 목표도, 낯선 곳에서 생활하면서 생겨나는 심리도 가족 구성원마다 서로 느끼는바가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에게는 두 명의 존재가 등장한다. 한 명은 모니카에게는 어머니이자 제이콥에게는 장모님, 그리고 앤과 데이빗에게는 ‘할머니’인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방문한 ‘순자’이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아칸소의 집에 도착한 순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인 할머니’의 모습이다. 기본적인 단어를 제외하면 영어는 거의 익숙하지 않고, 한국에서 행동했던 그대로 순자는 미국에서도 행동한다. 모니카에게는 자신과 아들 데이빗을 위해 한국 음식이나 각종 한약재를 바리바리 싸들고 온 순자가 너무나도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정작 데이빗은 순자가 낯설다 못해 너무나도 꺼럼직하다. 마치 옛날 한국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흔하게 하던 행동대로, 데이빗이 이쁘고 귀엽다는 이유로 신체를 함부로 만지거나 기분나쁠 수 있는 이야기도 서슴치 않게 한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가져온 한약재를 달여 만든 검고 쓴 물은 데이빗에게는 그야말로 고역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작중에서 순자보다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근처 주민 ‘폴’(윌 패튼)이다. 제이콥이 빌린 트랙터를 전달하기 위한 배달부로 처음 이들 가족과 만난 폴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한다. 그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 이국 타지에서 싸운 이들을 만났다는 것이 폴은 너무나도 반갑지만, 정작 제이콥은 폴이 부담스럽다. 딱히 교회를 공들여 나가지 않으려는 제이콥과 달리 폴은 매사에 하느님을 외칠 정도로 신을 믿는 열성 신도이며, 미신에도 심취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주일에는 예수의 고통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는 이유로 거대한 십자가를 등에 지는 고행을 해 주변 사람들의 놀림을 받기까지 한다. 제이콥은 농사를 위해 콜을 고용하지만, 결코 쉽게 콜과는 가까워지지 못한다.

이렇게 가족은 물론 순자와 폴 모두 어딘가 붕 떠 있다. 순자는 그나마 자신의 딸인 모니카와는 혈연 관계로 묶여 친한 사이를 드러내지만, 모니카와 결혼한 제이콥은 물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과도 어딘가 관계가 미묘하다. 물론 데이빗에게는 완전히 상극인 존재이다. 폴은 자신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으로 어떻게든 제이콥은 물론 그들의 가족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정작 그를 고용한 제이콥도 폴과는 어떤 식으로든 거리를 두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큰 맘 먹고 시작한 한국 채소 농사도 난항에 부딛친다. 아칸소의 드넓은 동네에 ‘자신들만 한국인’이라는 고립감 이상으로,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그러나 ‘미나리’는 이러한 관계를 억지로 합치는 대신, 또는 일찌감치 한국인의 해외 이민을 다룬 다수의 매체가 그랬던 것처럼 ‘역경을 이겨낸 성공기’로서 이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서먹한 관계가 어떻게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이어지고, 그 관계가 정착의 과정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짚는 것이 초점을 맞춘다. 한동안 계속 상극일 것 같았던 데이빗과 순자는 순자의 ‘오지랖’으로 인해 새로운 관계 형성의 계기를 마련한다. 물론 그 ‘오지랖’은 순자의 선의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데이빗과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이유이자, 도리어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어떤 사고를 낳는 비극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다시 그 ‘오지랖’은 아들을 보호하려는 모니카의 태도와 화학 작용을 발휘하며 데이빗으로 하여금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순간으로 작용한다. 감독은 순자의 이러한 행동을 쉽게 긍정화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데이빗에게 그러한 모습들이 켜켜이 쌓여가는 과정에 서서히 초점을 맞춰낸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모니카와 제이콥, 제이콥과 콜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고, 감독은 직접적인 표현 대신 대사의 행간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물론 그 과정은 마냥 아름답지 않다.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결과적으로는 파국에 다다르는 경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마저도 그 전까지는 어떠한 맥락이나 인연도 없는, 난생 처음 보는 동네에서 거주하는 이들이 그곳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기 위한 하나의 단계이자 흐름임에 주목하며 담담하게 바라보기를 택한다. 쉽게 이에 관련된 인물이나 사건에 옳고 그름을 결론짓는 대신, 과정에 얽히는 여러 갈래의 관계를 진중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 아이삭 정은 등장인물을 먼발치에서 바라 보는 원경의 구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 풍경은 때로는 주인공의 가족을 빼면 아무도 없을 정도로 한적한 아칸소의 시골이 되기도 하고, 다시 때로는 사람으로 북적이는 아칸소의 어느 교회가 되기도 한다. 원경으로 가족 구성원을 바라보는 선택은 이들이 아칸소의 일부가 되고 있음을 보이는 동시에, 다시 쉽게 해당 공간에 섞일 수가 없는 한국계 가정의 위치를 함께 드러낸다.

여기에 등장 배우들의 호연이 ‘미나리’의 서사에 리얼리티를 더한다. 제이콥 배역을 맡은 스티븐 연은 전형적인 1980년대 한국계 가족의 ‘아버지’에 맞는 행동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그는 모니카를 비롯해 자신의 아들 제이콥에게 있어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자신만만하게 선언하는 자부심과 ‘남성’에 맞는 자존심을 드러내려 애쓰지만, 동시에 어느 순간에는 쉽게 섞일 수 없고 불화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이러한 캐릭터는 이전에도 주연으로 등장했던 이창동의 ‘버닝’에서도 맡았던 바가 있지만, 리 아이삭 정은 이창동보다 훨씬 능숙하게 섞여 있지만 다시 붕 떠 있는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스티븐 연과 깊은 논의를 한 것이 느껴진다. 한예리 또한 ‘최악의 하루’ 이후로 시대나 공간과 불화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드러내며 자신의 커리어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주목해야 할 배우는 단연 윤여정이다. 윤여정은 1960년대부터 시작한 오랜 연기 경력에 걸맞은 품격으로 ‘미나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등장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존재감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얼핏 보기에 윤여정이 맡은 ‘순자’의 모습은 정말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것만 같은 ‘한국인 할머니’이다. 자신의 가족에게는 무척이나 살갑지만, 동시에 어떤 모습에서는 ‘억척스러운’ 모습까지도 느껴진다. 이러한 ‘순자’의 캐릭터는 윤여정이 근래에 TV 주말 드라마에서도 흔하게 보여주는 역할과 비슷해 보이지만, 윤여정은 이 캐릭터를 결코 단순한 모습으로 놓아두지 않는다. 전형적이면서도 그 전형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오히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변화가 벌어지는 것에 설득력을 만들기 위해 윤여정은 매우 진지하게 ‘전형성’을 해석하고 연구한다, 때로는 능청맞고, 다시 때로는 인정이 많으면서도, 다시 어느 순간에는 불화하는 다중적인 모습을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윤여정의 연기는 ‘미나리’를 2021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작품으로 만드는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이렇게 ‘미나리’는 사실상 처음으로 온전하게 자리를 잡은 ‘한국인의 이민사’를 그려낸 작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미나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치 한동안은 유럽에서도 빈곤한 국가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이민사를 그린 작품이 나왔고, 그 뒤를 이어서는 타의로 미국에 와서 하나의 조류를 이룬 흑인이나 라틴계 이민자의 삶을 다룬 작품이 미국에 속속 등장했듯 이제는 아시아계 미국 이민자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온 것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는 한국계 캐나다인 가정이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겪는 일상과 좌충우돌 소등을 그린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리’는 이미 정착을 마친 이들의 일상이 아니라, 정착을 하면서 충돌하고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깊은 시선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분명 소중한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나리’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정작 ‘미나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미나리’를 쉽게 한국 영화의 쾌거라 일컫지만, ‘미나리’는 앞서 살펴봤던 것과 같이 쉽게 어느 쪽에 서기를 택하기 보다는 경계를 자처하고, 경계적 위치가 낳는 효과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은 리 아이삭 정이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왔던 주제하고도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서 처음 소개되었던 리 아이삭 정의 2007년 첫 장편 데뷔작 ‘문유랑가보’(Munyurangabo)가 종족 간의 갈등으로 인한 르완다 대학살 이후 복수와 증오를 위해 출발한 여정이 화해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던 것처럼, ‘미나리’ 역시 한국을 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미국인이 될 수도 없는 경계에 놓인 ‘이주민’의 존재를 포착한다. 이들이 지닌 각자의 맥락과 역사는 손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유랑가보’의 주인공들은 물론 ‘미나리’의 주인공들 역시 아직 매듭이 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곧바로 어딘가에 정착을 해야만 한다. 리 아이삭 정은 이 혼란의 과정에 섬세하게 접근하고, 결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가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한다. 마치 영화의 제목 그 자체이자, 작중에서 순자가 모니카를 위해 챙겨온 ‘미나리’가 물만 있으면 어디에서도 쉽게 생명력을 뻗는 존재인 것처럼 리 아이삭 정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들도 그러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아직 ‘미나리’에 담긴 바람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근래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아시아계 미용 노동자에 대한 백인들의 테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혼란을 명분으로, 다른 인종을 쉽게 배제하려는 욕망을 다시금 드러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타인’이나 ‘경계’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는 거 역시 아니다. 쉽게 이주민이나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영화계에서도 2020년에는 제주4.3평화재단이 주최한 ‘제2회 4.3 평화 영상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무덤에서 온 메시지’의 연출자 유수프가 예멘 난민임을 이유로 제대로 이름을 명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상금 지급에서도 온갖 무례한 일이 발생하는 일이 있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전주국제영화제가 한국에서 영화를 배운 감독이 연출하고, 모든 작업 과정이나 구조가 한국 영화 시스템에서 제작되었지만 감독의 국적이 한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단편경쟁에 출품한 작품을 탈락시키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한국은 ‘미나리’가 영어가 아닌 외국어 대사가 많다는 이유로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에 한정한 골든 글로브의 처사에 분노하는 여론을 보였다. 그렇게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어떤 현실들은 ‘미나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과연 양국 모두가 제대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동시에, 다시 ‘미나리’의 메시지를 깊게 고민하면서 새겨 들어야 함을 상기하게끔 한다. 쉽게 사람을 특정한 영역으로 가르거나 구분하지 않고, 같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계급과 계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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