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왕이 될 상인가?” 인공지능(AI) 관상 분석 앱에 따르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98%의 확률로 왕이 될 상이다. 개인적 재미로 돌려보고 말았다면 여기까진 괜찮다. 요새 유행하는 심리분석 테스트처럼 한번 즐기고 넘어갈 얘기니까.

문제는 이게 뉴스가 될 때다. 언론사가 보도한 뉴스는 그 자체로 정확하고 근거 있는 정보로 치부된다. 거기다 많은 사람에게 읽힌다. ‘윤석열은 왕이 될 상’이란 AI 관상 결과를 옮긴 헤럴드경제의 ‘누가 왕이 될 상? AI 관상가가 본 윤석열·이재명’ 기사는 네이버 포털 댓글만 2800여 개가 달렸다. 헤럴드경제가 “함량이 떨어지는 기사라 판단”해 이틀 만에 기사를 삭제한 지금도, 타 언론사에서 베껴 쓴 한 건의 기사와 이 기사를 퍼다 나른 블로그·커뮤니티 글 40여 건이 여전히 검색된다. 재미로 넘어갈 근거 없는 정보를 ‘증폭’한 건 언론이었다. 언론이 한번 증폭한 정보는 기사가 사라진 이후에도 유령처럼 남아 떠돈다.

▲ 헤럴드경제는 지난 8일 “누가 왕이 될 상? AI 관상가가 본 윤석열·이재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헤럴드경제는 결국 기사를 삭제했다.
▲ 헤럴드경제는 지난 8일 “누가 왕이 될 상? AI 관상가가 본 윤석열·이재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논란이 커지자 헤럴드경제는 결국 기사를 삭제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8일(왼쪽)과 지난해 10월30일(오른쪽)에 보도한 기사 관련 이미지.
▲헤럴드경제가 지난 8일(왼쪽)과 지난해 10월30일(오른쪽)에 보도한 기사 관련 이미지.

“슬프게도 (과거에는 대개 학문적이고 반 EU적이었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극우의 소굴로 탈바꿈한 것은 언론의 의도치 않은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AfD 구성원들이 하는 말도 안 되고 끔찍한 트윗을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보도해줌으로써 그들의 생각이 퍼질 수 있도록 도왔죠.”

미국 시러큐스대 휘트니 필립스가 집필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번역서로 펴낸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란 책의 일부 내용이다. 극우당 AfD 지지자는 독일 언론을 ‘피노키오 언론(뤼겐프레세)’이라 부른다고 했다.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정보를 그대로 옮겨 쓰는 언론을 극우세력은 ‘조종당하는 인형’이라 비아냥거리며 입안의 혀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증폭된 정보는 때론 끔찍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극우 정당 AfD는 미디어가 결집해준 지지자를 디딤돌 삼아 2018년 8000명이 참여하는 폭력적인 반난민 시위를 펼친다. 이 시위에서 경찰 3명을 포함해 18명이 다쳤다.

영국에서는 ‘차세대 통신 기술인 5G가 코로나를 확산시킨다’는 음모론에 사람들이 대도시 통신장비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통신탑을 방화한 사례만 60건이 넘었다. 영국의 여러 매체는 5G와 관련한 음모론자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해 음모론 확산을 부추겼다.

정부와 전문가가 나서 이 음모론에 정면 반박했지만, 소셜미디어에서 탄생하고 언론을 통해 증폭된 허위정보는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미디어가 증폭한 근거 없는 정보가 사람들의 정상적 사고를 막고, 사회 혼란을 부추긴 것이다.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미디어는 어떻게 허위정보에 속았는가’의 원제는 ‘증폭의 산소(The Oxygen of Amplification)’다. 스러져버릴 수 있었던 허위정보나 근거 없는 정보에 ‘산소’를 공급해 확산시키는 미디어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수 있었던 ‘윤석열 관상론’이 언론사 뉴스로 보도돼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퍼졌던 것처럼 말이다.

언론사가 기사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면, 근거 없는 정보나 허위정보는 생명력을 잃는다. 하지만 언론이 보도하면 이 정보는 널리 널리 확산해 좀비처럼 살아남을 것이다.

그래서 보도하기 전 꼭 해야 할 질문이 있다. “내가 보도하지 않으면 이 근거 없는 정보가 사라질 것인가?” 만약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면, 보도하지 말라. 만약 ‘아니오’라면, 다시 말해 이미 근거 없는 정보가 퍼졌다면, 이 정보를 그대로 전하지 말고 이를 반박하거나 바로 잡는 정보를 꼭 포함하라.

언론은 미디어가 지닌 증폭의 역기능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해야 한다. ‘진실의 수호자’인 언론이 ‘진실의 파괴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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