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8월 방정오 TV조선 이사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상의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방 이사는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이다.

시민단체 주장은 방 이사가 대주주로 있는 드라마 제작사 ‘하이그라운드’가 2018년 영·유아 영어 교육기관 ‘컵스빌리지’에 19억원을 빌려준 사실(대여)을 문제 삼았다. 컵스빌리지는 방 이사 등이 출자해 만든 영어유치원이다. 

하이그라운드(대주주 방정오)가 회사자금 19억원을 자금회수가 의심스러운 특수관계 회사인 컵스빌리지(방정오가 설립)에 아무 담보 없이 사업자금을 대여해 배임 혐의가 의심된다는 것이 시민단체 핵심 주장이었다.

그러나 서울남대문경찰서는 지난달 13일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기 전까지 검찰이 혐의에 최종 판단을 내렸지만 올해부터는 경찰이 이처럼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됐다. 민생경제연구소 등은 경찰 수사 종결에 이의를 제기할 예정이다. 이 경우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한다. 

하이그라운드에 200억 투자한 사모펀드

경찰 수사 결과를 살펴보면, 드라마 제작사 하이그라운드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다. 이 회사 전신은 씨스토리로 2014년 방 이사가 지분 100%로 설립했다.  

앞서 민중의소리는 지난해 6월 보도에서 “드라마 제작사 하이그라운드는 최근 3년간 TV조선에서 방영한 드라마 8편 중 6편을 공동제작했다. 회사 매출은 지난해 200억원에 육박했는데, 매출 98% 이상이 특수관계사인 TV조선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TV조선이 하이그라운드에 일감을 몰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뒤따랐다.  

실제 하이그라운드가 몸집이 커진 건 2017년 말이었다. 그해 12월 해외 사모펀드 회사인 블루런벤처스(BRV)가 100억원을 투자했다. 이때 상호를 씨스토리에서 하이그라운드로 변경했다. 방 이사 지분도 50%로 줄었던 시기다.  

BRV는 2019년 하이그라운드에 한 차례 더 100억원을 투자했다. 방 이사 지분은 35%로 더 줄게 됐다. 반면 BRV는 하이그라운드 지분 65%를 보유하게 됐다. 방 이사 측은 드라마 제작에, BRV 측은 하이그라운드 경영과 자금에 대한 결정을 하기로 협의했다. 

▲ 방정오 TV조선 사내이사. 사진=TV조선
▲ 방정오 TV조선 사내이사. 사진=TV조선

컵스빌리지는 왜 파산했나

2014년 개원한 영어유치원 컵스빌리지는 방 이사 등 3명이 출자해 만들었다. 운영비가 필요해 두 번째 증자 때는 방 이사 아내 이주연씨 등도 증자에 참여했다. 세 번째 증자 때는 A사가 16.7% 지분으로 증자에 참여했다. 

개원 후 컵스빌리지는 원아 수와 인지도가 점점 높아가는 추세였다. 하지만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소재의 가정집을 개조한 탓에 장소가 협소했다. 원아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강남 진출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서울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전키로 했다. 

컵스빌리지는 사업장 이전에 19억원의 자본이 필요했다. 하이그라운드가 컵스빌리지에 19억원을 대여한 이유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배임 혐의로 봤지만 경찰은 ‘대여 형식의 투자’라고 봤다. 

경찰이 밝힌 수사 결과에 따르면 하이그라운드에 200억원을 투자했던 큰 손 BRV는 국내 키즈·교육 콘텐츠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컵스빌리지에 미래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신규 수익원 창출이 가능하리라고 봤다. 대주주 BRV로서는 컵스빌리지에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컵스빌리지 지분 70%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하이그라운드가 19억원을 대여해주는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  

방 이사는 컵스빌리지 지분 70%를 하이그라운드에 양도하더라도 컵스빌리지 사업이 확장해 더 큰 수익이 창출된다면 최소한의 원금이라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호 지분의 주주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이그라운드는 컵스빌리지 지분 70%를 인수하지 못했다. 잠정 보류됐다. 

왜 그랬을까. 컵스빌리지에 투자했던 A사 대표가 컵스빌리지 주식 담보로 여러 곳에서 사기를 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실제 A사 대표는 2018년 9월 사기 혐의로 징역 9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하이그라운드가 컵스빌리지 지분 70%를 취득할 경우 대주주 BRV에도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는 것. 이와 같은 상황에 하이그라운드가 컵스빌리지 지분 70%를 인수하게 되면 BRV가 글로벌 회사로서 신뢰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 

컵스빌리지는 지난해 9월 파산했다. MBC와 미디어오늘 등이 2018년 11월 기사를 통해 방 이사 딸이 사택기사를 상대로 폭언을 가하고 인격을 모욕한 내용의 발언과 음성을 보도했고, 이 사건은 컵스빌리지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치원 평판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 

결정적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컵스빌리지는 문을 닫아야 했다. 운영이 중지됐지만 인건비 등의 운영비와 건물 임대료 등은 지속적으로 지출됐다. 확장 이전에 소요된 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됐고 계획됐던 키즈 콘텐츠 개발 등도 언감생심이었다. 파산을 하게 된 이유다. 컵스빌리지 대표인 미국인 변스탠리성진(BYUN STANLEY SUNGJIN)은 지난해 7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접수했고, 그해 9월 서울회생법원은 파산을 선고했다. 

경찰은 이 같은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경찰은 하이그라운드와 컵스빌리지 계좌의 거래내역 등을 확인해 2017년 12월 BRV가 두 차례 걸쳐 100억원을 하이그라운드에 입금한 사실, BRV가 2018년 2월 컵스빌리지에 5억원을 송금하고 그해 3월 14억원을 송금한 사실(대여금 19억원) 등도 확인했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컵스빌리지는 BRV로부터 대여한 19억원 가운데 한남동 소재 건물임대보증금 4억원을 비롯해 총 14억원을 건물 월세, 인테리어 비용 등에 사용했다. 나머지 5억원은 직원들 급여 등 운영비로 사용했다. 

경찰은 “하이그라운드의 컵스빌리지에 대한 대여금 투자 결정은 당초 BRV의 신규 수익원 창출을 위한 투자 목적으로 하이그라운드 투자와 함께 이미 검토됐던 투자의 실행 행위”라며 “BRV가 컵스빌리지 투자에 참여한 것은 하이그라운드의 경제적 이익 등 개인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만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비록 실패한 투자로 결론이 났지만, “합리적 신뢰 하에서 신의성실에 따라 내려진 경영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비록 하이그라운드가 손실을 입게 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도 컵스빌리지 투자 행위에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거나 하이그라운드 임원으로서 그 임무를 위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증거 불충분해 혐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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