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영화, 출판, 공연, 음악, 게임, 웹툰, 타투 등 문화예술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요구안을 9일 발표했다. 이들의 요구는 그간 특수고용과 플랫폼, 프리랜서 계약으로 분류돼온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조할 권리와 적정임금, 안전한 노동환경 등을 보장할 의무를 정부와 사용자에 묻는 내용으로 모였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단체는 “예술인의 가난과 고통은 예술인의 숙명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노동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결과”라며 “고용형태, 노동시간의 길이, 사업장의 규모 등과 상관없이 근로기준법을 온전히 적용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범위를 ‘계약형식과 관계없이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로 넓히고, 사용자 범위도 원청과 플랫폼 기업으로 확대하도록 요구했다. 또한 정부가 현장 실태조사와 노·사·정 협의 등 임금 결정구조에 적극 개입해 임금 기준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문화예술노동연대는 9일 서울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방송작가들은 올해 요구안으로 방송작가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고 방송 현장 근로감독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방송작가들은 개인 유튜브를 만들지 않는다. 이들의 업무는 명백히 방송사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야만 일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매일 같은 시각 방영되는 고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 출퇴근 시간과 장소마저 고정적”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방송사에서 일하는 취재작가(막내작가)의 근로자성이 인정될 여지가 높다’는 합동조사 결과를 내놨다. 노동청은 JTBC 프리랜서 작가가 낸 퇴직금 체불 진정을 인용하며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판정했으나, 지노위는 MBC 보도국 작가 2명의 부당해고 진정에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방송작가지부는 “방송사는 방송계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방송작가유니온과 교섭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언론노조와 KBS·EBS·MBC가 지난해 취재작가와 지역방송 작가들의 권익 보호 등을 위한 ‘방송작가특별협의체’를 구성했지만 방송사가 취재작가 근로계약 체결을 거부하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이들은 정부에 촬영 세팅과 편집구성, 자막, 취재 등 방송작가 노동을 포괄할 새 표준계약서를 도입하고 적용을 보장할 제도도 요구했다.

김 지부장은 “방송작가들은 MBC 보도국 작가들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인정을 요구하며 상암사옥 앞 1인시위 중이다. MBC는 앞으로는 방송작가 처우개선을 위한 협의체에 참여하지만, 뒤에선 부당해고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지부장이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김한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지부장이 9일 2021년 문화예술노동자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웹툰 작가들은 웹툰 작가가 고용주로 분류돼 예술인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현실 개선을 요구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주간 컬러 연재’가 보편화 된 웹툰 시장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려 글·그림은 물론 각색·채색·배경 작가들이 협업한다. 이들을 메인과 보조로 구분해 그림작가에게 고용주로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며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에도 불구하고 피보험자격취득률은 저조한 현실”이라고 했다.

하 사무국장은 “문체부는 기업에 대해 각종 대규모 지원사업을 집행하면서도 표준계약서 적용 의무는 기준으로 걸지 않는다”며 ”지원사업 선정 시 표준계약서 기준 도입, 성폭력방지 확약서 의무화, 선정 기준 및 심사위원 인력 풀의 투명성 제고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기존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를 유료웹툰 시장 현실을 반영해 개정하는 한편, 불법 웹툰 사이트에 대한 단속·처벌 강화와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도 촉구했다.

영화산업노동조합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해 △방송·콘텐츠 제작현장 주 52시간제 이행 △근로계약서 작성 △산업안전보건교육 의무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을 요구로 내놨다. 안병호 영화산업노조 위원장은 “방송사 드라마, 넷플릭스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유통의 경우 여전히 주 52시간은 먼 이야기”고 했다. 또 “상시 근로자수 판단만으로 영화와 방송 현장에서 산업안전법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산업안전법상 50인 이상 사업장 적용 내용을 50인 미만에도 부과하고 예산 규모에 따라 의무조치들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안병호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안병호 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9일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문화예술노동연대 제공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사전검열’ 철회 △예술강사지원사업 등 문화예술교육 예산 확충 △4대보험 전면 적용 △예술교육을 예술인복지법상 예술 활동으로 인정 등을 요구로 내놨다. 전국 보조출연자노동조합은 “보조출연자 고용 관계는 기획사 소속으로 도급계약이지만, 실질은 감독·PD의 명령을 받는 파견 노동”이라며 “보조출연자가 파견노동자 지위임을 확인하고 고용안정, 인권유린과 차별 등 부당대우에 대한 근절 대책을 마련하라”고 밝혔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은 △공연예술현장의 기준·최저 보수 산정 테이블 마련 △공연장 거리두기에 따른 손실금 보전 △전면 고용보험으로 시행령 개정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뮤지션 유니온은 음악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음악계 공정보수 기준을 마련해 공공기관 사업에 적용하라고 요구했다. 

게임개발자연대는 게임 개발자도 예술인 권리 보장 대상에 포함되도록 게임을 문화예술산업으로 인정하고, 게임산업의 거대 자본 독점 구조를 개선할 규제를 도입하라고 했다. 타투유니온은 타투산업 노동자들에게 전면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타투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질환에 산업재해를 인정하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