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국민일보 인터뷰가 공개된 지난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0여명이 경기도 일대 신도시 지구 발표 전 토지를 사들였다는 투기 의혹을 참여연대 등이 제기했다. 당시 윤 총장의 인터뷰와 LH 직원들 투기 의혹은 별개의 사안이었다. 

윤 총장이 이례적으로 기자를 집무실로 불러 인터뷰를 진행해 정권을 비판한 배경 중 하나로 미디어오늘은 ‘보수언론의 여론조성’을 꼽았다. 윤 총장은 4월 재보선을 ‘정권심판론’ 분위기로 만들고 싶어하는 보수야권 기대에 부응했고, 이는 재보선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 바람대로 입연 윤석열, 재보선 변수되나]

▲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 연합뉴스

다만 2일자 인터뷰만으로 윤 총장의 사퇴를 단정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국민일보 인터뷰를 자세히 보자. ‘직을 걸고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막으라’는 조선일보 등 세간의 요구에 대해 기자가 물었더니 윤 총장은 “직을 걸고 막을 수 있다면야 100번이라도 걸겠다.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고 답했다. 검찰총장이 직을 걸더라도 물리적으로 여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을 막을 수 없고, 국민여론으로 정치권을 움직여야 한다는 발언이다. 

윤 총장의 인터뷰 전후 발언을 봐도 총장직을 걸어서 될 일이 아니니 국민여론이 중요하다는 맥락이 답변이 이어졌다. 윤 총장은 “검찰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가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국회와 접촉면을 넓힌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라거나 “졸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학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의 심도 깊은 논의, 올바른 여론의 형성만을 기다릴 뿐” 등의 표현도 덧붙였다. 

해당 인터뷰는 다수 언론이 인용보도했다. 다음날인 3일 조선일보 1면 기사 제목은 ‘윤석열 “직 걸겠다” 靑 “국회 존중해야”’였다. ‘총장직을 걸어도 검수완박을 막기 힘들다’는 인터뷰 내용은 “직을 걸어서라도 막겠다”는 배수진으로 둔갑했다. 대다수 매체가 조선일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인터뷰를 인용했다. 

3일 중앙일보는 윤 총장과 단독인터뷰를 보도했다. 핵심 내용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반부패수사청·금융수사청·안보수사청을 만들어 검찰이 소위 ‘거악’ 수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전날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나온 “비대한 검찰권이 문제라면 오히려 검찰을 쪼개라”고 한 발언에 대한 부연설명 격이다. 

윤 총장은 이날 아침 중앙일보 인터뷰에 대해 지인부탁을 받고 한 보충설명일 뿐이지 정식 인터뷰가 아니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중앙일보 인터뷰 내용은 특수통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온 윤 총장 개인입장일 수 있지만 특수부 출신이 아닌 검사들 입장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주장이다. 즉 ‘검찰주의자’가 아닌 ‘특수부주의자’로 오해받을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아직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관련 검사들의 입장을 듣고 있다던 윤 총장은 다음날인 4일 전격 사의를 표했다. 보수매체들은 현직 검찰총장의 정치행보를 우려하기 보단 이런 선택을 정부·여당이 강요한 꼴이라며 여권을 비판했다. 

▲ 8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 8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윤 전 총장이 정치인으로서 내놓은 첫 메시지는 지난 6일 조선일보와 통화에서 지적한 ‘LH 직원 투기 의혹’ 수사 관련 내용이다. 요약하면 정부 합동조사단의 ‘셀프조사’로는 진실을 밝히기 부족하고 검찰이 나서서 강제수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검경수사권조정 결과 6대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이번 사건을 수사할 수 없어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이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다. 

윤 전 총장 발언을 바탕으로 조선일보가 법조계 우려를 추가 취재해 만든 해당 기사는 이후 이 사안 관련한 언론보도 방향이 됐다. 일부 매체와 여권에선 ‘이미 검찰이 수사할 수 없는 사안임을 아는 윤 전 총장이 검찰수사 필요성을 무리하게 주장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투기 관련해 경찰도 수사성과를 올린 적 있다는 내용으로 반박했다. 그러나 다수 보도는 검찰수사가 필요하다는 방향이다. 

▲ 9일자 중앙일보 사회면 기사
▲ 9일자 중앙일보 사회면 기사

중앙일보는 9일 사회면 ‘6대 범죄 아니라고 검찰 배제… “LH 증거인멸 기회 주는꼴”’이란 기사에서 의혹 1주일째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며 검찰 직접수사를 주장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검찰이 수사방향에 관해 수사팀에 조언하는 건 현 수사권 조정안 아래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국수본 단일 지휘 수사체계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고, 중앙일보는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처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일보도 이날 1면 “‘LH 투기 수사’ 검경 수사권 조정 시험대”란 기사에서 “합조단은 1차 조사대상인 국토교통부·LH 전 직원으로부터 개인정보 이용동의서를 받아 토지거래전산망으로 명단을 대조해 이번주 내 발표를 준비중”이라며 “부동산 거래 여부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직원 배우자·직계존비속 등 민간인을 상대로 토지매입 경위를 묻기 위한 대면조사는 벌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문재인’을 키워드로 화력을 모으는 윤 전 총장과 조선일보 입장에서 LH 투기 의혹 사건은 의도치 않은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 정권의 취약점으로 지적받고 있는 부동산 문제 비위 의혹이면서 윤 전 총장이 강점을 보여온 거침없는 수사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 소지나 다소 매끄럽지 않았던 사퇴 과정에도 조선일보 등 언론의 지원사격으로 ‘정치인 윤석열’은 대선을 정확히 1년 앞두고 주목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 9일 조선일보 사설
▲ 9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9일 사설 “LH 사건 ‘내 편끼리’ 수사 이어 난데없는 생중계 쇼, 어김없는 前 정부 탓”에서 지난 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해당 의혹 관련해 대국민 메시지를 내보내자 KBS·MBC 등 공영방송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특보를 내보낸 일, 정부 합동조사단에게 강제수사권이 없어서 차명거래 등은 조사하기 어렵다는 지적, 현 정권과 각을 세웠던 검찰과 감사원이 합조단에서 빠진 것, 전 정권을 탓하면 물타기하려는 시도 등을 비판했다. 

여의도에선 윤 전 총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대설, 제3지대 창당 혹은 윤석열발 야권재편설 등이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윤 전 총장은 대선 지지도 1위를 기록했고 안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를 다소 앞서고 있다. 한동안 정치인 윤석열에겐 순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바람의 방향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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