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가입 분담금이 수조원에 이르고 이민자 수용으로 인한 교육비가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보도는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관련 보도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확산된 ‘가짜뉴스’로 판명났지만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된 브렉시트를 돌이키긴 어려웠다. 지난 2016년 브렉시트 국면은 가짜뉴스가 전 세계적 용어로 부상하게 된 계기로 평가받는다.

영어권에서 지칭하는 가짜뉴스(Fake news)는 “뉴스 보도를 가장해 유포된 허위의 선정적 정보”(콜린스 사전)로 정의된다. 하지만 현재 가짜뉴스라는 말은 ‘진영의 무기’로 활용되면서 오염된 지 오래다. ‘허위조작정보’(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가짜뉴스 용례를 설명하는 비교적 정확한 풀이에 해당하지만, 트럼프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향해 가짜뉴스라고 비난했듯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 즉 자기 진영에 ‘나쁜뉴스’를 가짜뉴스로 폄훼해 부르는 게 일상이다. 사실관계를 부정확하게 보도하거나 틀린 보도는 ‘오보’이고, 그게 정보에 해당한다면 ‘오류 정보’로 볼 수 있는데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라는 단어와 혼용되며 가짜뉴스 개념은 대중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MBC가 “뉴스라는 표현이 오히려 거짓 정보에 가치를 더해줄 수도 있다”며 ‘가짜뉴스’ 표현 대신 ‘가짜정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눈여겨볼 지점이다. 허위조작정보 문제가 심각할수록 기성 언론의 검증 역할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기성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언론이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주체로 의심 받기 때문일 것이다. MBC 선언은 가짜뉴스라는 단어가 신뢰 회복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진짜뉴스’를 보도하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 지난 3월3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 지난 3월3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관련기사 : MBC “‘가짜뉴스’라는 표현 안 쓰겠다”]

기성 언론이 가짜뉴스 진원지로 의심을 받는 이유는 미디어 환경변화와도 맞닿아있다. 1인 미디어를 포함해 소셜미디어에서 가짜뉴스를 검증하는 현상이 일반화했고, 특히 기성 언론의 왜곡된 정파 보도를 바로잡는 일도 적지 않다.

언론이 사실을 좇더라도 오보는 언제나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가짜뉴스로 매도당하는 현실이 억울할 수도 있다. 진영논리에 갇힌 미디어 수용자가 가짜뉴스를 정치적 수사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 가짜뉴스를 규제한다는 명분 아래 추진되고 있는 법안이 혹여 여론 형성을 제한하거나 표현의 자유 침해를 정당화해 ‘무분별한 언론 길들이기’ 결과로 나타날지 감시하는 것도 언론의 검증 역할이다.

하지만 저널리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언론에 대한 규제’라는 판을 뒤집기 위해선 언론이 규제 일색의 가짜뉴스 담론을 진지하게 공론화시키며 ‘진짜뉴스’를 확산시켜야 한다. 허윤철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강사는 “허위조작정보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유포되는 출처 불명의 메시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전파되는 미확인 소문,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포털 댓글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퍼져나가는 특성이 있다. 인터넷에서 매일 같이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정보 속에서 진위를 일일이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허위조작정보 규제 정책은) 제한적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모든 가짜뉴스를 일일이 가리는 게 불가능하다면 역시 ‘믿을 수밖에 없는 곳은 언론’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기성 언론이 ‘진실의 수호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언론은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백신에 식염수를 희석해 사용하는 건 필수인데도 이를 정부 비난하는 소재로 삼아 SNS 글을 올린 언론인이 ‘가짜뉴스’라고 비난받는 것에 대중을 탓할 수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후 ‘윤석열 사주풀이’ 글이 주목받고 있다는 보도에 “이게 한국언론의 수준”이라는 비아냥 댓글이 달리는 것도 스스로 자처한 일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