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5조원의 4차 재난지원금을 확정해 국회 심의에 들어갔다. 방역대책 4.1조원을 제외하면 약 15.4조원을 피해 계층에 지원한다. 그런데, 재원 중 9.9조원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달하게 돼 국가부채 규모가 연말에 965조9000억원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48.2%로 올라설 전망이다.

재난지원금 등 코로나 대응으로 재정지출이 증가하면서 국가부채비율 상승이나 재정건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보수신문과 경제지 등 재정보수주의, 균형재정론의 입장은 재정건전성에 위협이 될 정도로 현재의 국가부채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빚내서 재정지출을 증가시키지 말라고 주장한다. 물론 과도한 재정지출로 국가부채비율이 증가하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논란이 되는 재정건전성 문제는 국민이 국가가 진 빚을 갚을 수 있나하는 장기전망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금융시장에서 국채 이자율이 올라가는 것이 문제고 재정지출 증가와 그에 따른 국채발행에서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과 일본처럼 기축통화국인인 국가들은 국채를 남발해도 시장에서 큰 반응이 없다.

▲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4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19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정세균 국무총리가 3월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4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19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의 경우 국가부채비율이 250%를 넘나드는데, 1년 GDP(국내총생산)의 2.5배를 정부가 빚지고 있다. 매년 새로운 빚 없이 오직 갚는 걸로만 GDP의 10%씩 갚아나가도 25년이 걸린다. 그런데 일본의 실질 성장률은 0%에 가깝다. 빚을 갚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남는 돈이 없으니 지출을 줄여야 하고 긴축을 GDP의 10%씩 하려면 정부 1년 예산의 절반 이상을 줄여야 한다. 일본 정부의 전체 예산은 GDP 대비 20%가 채 안된다. 결국 일본 국민들이 현재 일본 정부의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전망이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채를 잘 발행하고 있고 계속해서 국가부채비율은 올라가고 있다. 미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재정건전성 문제는 어떤 수치를 들이대던 그것은 가상의 예측이고 이론적 비교일 뿐이다. 국가부채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시장이 반응하지 않으면 재정은 안정적이고, 국가부채비율이 아무리 낮아도 시장에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문제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반응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의 문제이고 특히 재정과 통화와 관련해서는 2008년 미국의 양적완화, 재정지출 증가와 함께 주류의 이론적 틀이 모두 다 깨졌다.

결국 재정건전성과 같은 문제들은 시장반응을 사전 평가하고 신용등급을 매기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입장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우려하면 부채비율이 아무리 낮더라도 재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부채비율이 아무리 높더라도 이들이 우려하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은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재정 주권과 금융시장 종속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에 앞서 재정건전성 논란의 근거부터 확인하고 가자.

앞서도 얘기했듯이 현 구조에서 재정건전성 문제의 가장 명확한 근거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전망이다. 그런데, 최근 계속된 논란에도 국국제신용평가사에서 나온 것을 근거로 한 ‘우려’는 없다. 그렇다보니 국가부채비율이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단순하고도 빈약한 수치상의 문제 외에 현실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을 보니 이게 있더라.

[관련기사 : 조선비즈) 올해 중 국가채무비율 50% 門 열리나… 나라 빚 1000조원 돌파 가능성 (2021년 03월02일)]
[관련기사 : 파이낸셜뉴스) 추경 15조원 중 국채 발행 9.9조… 재정건전성 ‘빨간불’ (2021년 03월02일)]
[관련기사 : 서울경제) 인플레 공포 커지는데… ‘현금지원 쓰나미’에 재정 방파제 무너진다 (2021년 03월02일)]

이 기사들에서는 공통으로 재정건전성 우려의 근거로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의 경고를 들고 있다. 기사 내용에 모두 “피치는 지난해 ‘한국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이 오는 2023년 46%까지 증가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왜곡이며, 가짜 뉴스와 같다.

피치가 지난해 2월 이와 같은 경고를 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이 경고의 시점이 2020년 2월이라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초기이고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재정지출이나 양적완화가 본격화하기 전이다. 이 상태에서 피치는 7개월 후인 2020년 9월 피치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한국의 기존 전망을 철회했다

제러미 주크 피치 이사는 이 콘퍼런스에서 한국 부채비율 46%라는 숫자는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지기 전에 나온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피치가 신용평가를 하는 시각에도 상당한 변화가 생겼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피치는 콘퍼런스에서 한국이 단기적으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할만한 재정 여력이 있다고도 평가했다.

[관련기사 : 연합인포맥스) 피치, 2월 내놨던 한국 국가채무비율 경고 수준 한발 후퇴 (2020년 09월08일)]

2월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고 철회한 것인데, 보수 일간지와 경제지에서는 이 사실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난지원금이 나올 때마다 국가부채비율 상승의 현실적인 ‘우려’의 근거로 이미 철회된 2월의 전망만 돌려막기 하듯이 반복해서 재생산해 왔다. 아래 기사에서도 피치의 경고를 전하고 있다. 

[관련기사 : 조선비즈) 4차 지원금, 최대 700만원… ‘20조 추경’에 국가채무 1000조 돌파 임박 (2021년 02월22일)]

급기야 일부 언론에서는 제러미 주크 피치 이사와 인터뷰까지 했다. 동아일보는 한국에 대한 기존 입장을 철회했던 제러미 주크 피치 이사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하면서 “한국의 재정 정책은 2021년에도 성장을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우리는 향후 2년여에 걸쳐 재정을 통한 경기 부양책이 점진적으로 철회될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제러미 주크는 한국 정부의 재정을 통한 성장 지원 즉, 경기부양이 2021년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런 재정 정책이 2년 동안 점진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했다. 그런데, 이 인터뷰를 전하는 기자는 “정치권에서 전 국민 4차 재난지원금 등 나랏돈 풀기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재정을 무분별하게 풀면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전혀 엉뚱한 설명을 덧붙였다. 

[관련기사 : 동아일보) 피치 “한국, 2년내 재정부양책 철회하길” (2021년 02월03일)]

이처럼 피치가 지난해 2월에 한국의 신용등급하방 압력을 ‘경고’했다는 것만 전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며 가짜뉴스다. 피치뿐만 아니라 무디스와 S&P 등 세계3대 국제신용평가사 중에서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곳은 한 군데도 없고 오히려 양호하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 피치(Fitch) 신용평가회사 홈페이지 갈무리
▲ 피치(Fitch) 신용평가회사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2020년 말 기준 35개 선진국 평균(125.5%)의 38.6% 수준으로, 전체 국가 중 25위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코로나19 대응 재정지출 규모가 적었다. IMF가 최근 발간한 ‘팬데믹에 대응한 재정 정책’을 보면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해 총 560억달러(GDP의 3.4%)를 썼다. 이는 G20 국가 중 15위로, 재정을 가장 많이 쓴 미국(16.7%)의 5분의 1 수준이다. 대신 회사채 악화에 따른 증권사 부도 방지와 금융시장 안정책을 포함한 기업 유동성 공급에 1,660억달러(GDP의 10.2%)를 투입했다. G20 국가 중 7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이처럼 한국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1년간 재정과 금융정책을 더해 총 2220억달러(GDP의 13.6%)를 시장에 풀었다. G20 국가들 중 11번째로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재정보수주의, ‘시장 룰(rule)’ 강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고 균형재정을 사고하는 재정보수주의는 일반적이지 않고 편향적이다. 경기가 위축되고 경기침체가 동반할 때 국가 재정과 중앙은행의 화폐로 대기업 구제와 붕괴직전의 금융시장을 구제하는 데는 아무소리 없이, 아낌없이 쓰고 더 빨리 쓰라고 재촉한다. 반면, 국민 일반의 소득 보전이나 실업자 지원, 중소영세업체의 구제에 대해서만 재정건전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다.

코로나 대응 초기, 정부가 무너지는 증권사를 구제하고 회사채 시장을 안정화 하는 등 금융시장 구제와 대기업 구제에 초점을 둔 200조원에 가까운 경기부양 패키지를 발표했을 때는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대기업 구제기금인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이 책정되고 항공산업의 위기가 확산될 때도 왜 빨리 이 기금을 지출하지 않냐고 연일 재촉하기에 바빴다. 한국은행이 전례없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하던 쓰레기 등급 회사채(정크본드)까지 직접 매입할 수 있다고 발표 했을 때도 누구하나 통화의 안정성을 우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일반 국민과 피해계층에 대한 지원에 특화된 재난지원금에 대해서는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며 이를 막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재정보수주의가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 제한적인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정부 재정이 화폐 발행에 의존하지 않고 금융시장을 통한 국채 조달에 집중하게 하면서 두 가지 룰을 강요했다. 첫 번째는 재정지출은 최소화하고 시장에서 기업 이윤을 잠식할 수 있는 영역에는 투여 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재정지출은 시장 구축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시장이 붕괴될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목적으로 재정이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과 금융시장 구제에 들이는 돈은 정당화 되고, 일반 국민의 소득보전 형태로 지급되는 돈은 일종의 가수요만 만들어 성장에 기여 하지도 못하고 거꾸로 구축효과를 발휘해 기업 이윤을 잠식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재정건전성 운운하면서 국민들 상대로 한 이전지출 식 재정지출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둘째, (초과)재정을 국채발행으로 조달했으니 금융시장의 룰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 금융시장의 룰이 채권금리의 결정구조와 방식인데, 가장 대표적으로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하는 재정건전성과 인플레이션을 따지는 화폐안전성 등이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재정지출이 금융시장에서 국채 이자율에 근본적으로 종속되고 민간회사인 무디스, S&P, 피치와 같은 국제신용평가사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다. 보수 언론이 재정보수주의를 부추기면서 그 근거를 국제신용평가사에 의탁할 수밖에 없는 것도, 신용평가사의 평가를 왜곡해서 전달하는 것도 이 룰에 대한 강요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지출 방식이 더 문제

재정건전성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거시적인 형태로 문제를 보면 정부의 재정지출 대상과 방식이 더 문제다. 어떻게 보면, 재정을 더 써야 하냐 말아야 하냐는 논쟁 때문에 지금까지 정부가 어디다 재정을 풀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GDP의 13.6%에 달하는 260조원이 넘는 돈을 재정과 금융 정책으로 시중에 풀었다. 1차에서 4차 재난지원금까지 일반 국민과 피해계층에 직접 지급한 돈은 모두 45조원 수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국민들과 피해계층의 소득보전으로 들어간 45조원에 대해 보수언론과 재정보수주의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그보다 200여조원 넘는 돈을 어디다 썼냐가 더 중요하고 더 큰 문제다.

▲ 긴급재난지원금 오프라인 신청 접수 첫날인 지난해 5월18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지원금 접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긴급재난지원금 오프라인 신청 접수 첫날인 지난해 5월18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지원금 접수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안정 패키지 135조원,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 및 고용안정, 실물피해지원과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약 50조원 내외를 지출했다. 그런데 주요 재정지출은 기업 지원, 특히 대기업 지원에 집중돼 있었다. 금융안정 패키지 135조원 중 대기업 관련 지원금은 3분의 2 수준에 달하고, 별도로 대기업 직접 자금 지원을 위해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원을 마련했다. 실물피해지원금도 방역과 지역경제 활성화, 세금 절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물주 임대료 감면 지원과 수출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게다가 국가투자와 수요 진작을 위한 K-뉴딜은 수소경제,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 사업 등 기존 재벌의 독점시장 유지나 새로운 시장 개척을 돕는 데 치중해 있다.

게다가 재난지원금 중에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금은 모두 고정비를 보전하는 대로 들어간다. 고정비는 인건비, 임대료, 이자인데 이미 인건비는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였기 때문에 건물주에게 임대료,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이나 사채업자들에게 이자로 지급해야 한다. 피해 자영업자 지원이 아니라 사실상 건물주와 채권자 지원이라는 얘기다.

결국 정부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쥐 꼬리만한 지원을 하면서도 재벌, 대기업, 금융자산가, 건물주를 지원하는 데는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 재정보수주의자들도 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게 보면 지금의 재난지원금은 정부의 ‘재정통화 확대정책’으로 야기된 거대한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희석시키고 다소나마 만회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코로나 시기 정부의 재정통화 확대정책이 초래한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자세히 다룬다. 재정건전성 논란에서 벗어나 정부와 한국은행이 퍼준 돈이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였는지 점검하고 평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45조 대 200조의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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