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저널리즘토크쇼J’(저리톡)는 오랜 외압에 사라졌던 지상파 매체비평의 부활을 알렸다. ‘공영방송 정상화’ 상징성을 가지면서도 노골적으로 ‘재미’와 ‘때깔’을 강조했고, 엄중함보다 유연한 토크쇼 방식을 확립했다. 기계적 중립을 타파한 방향성은 호평과 동시에 언론 혐오나 정파성에 기댔다는 양가적 평가로 이어졌다. 저리톡 시즌2가 마무리된 지 약 3개월, 후속 프로그램에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저리톡의 명암을 다룬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8일 ‘매체비평의 역할과 명암을 다면적으로 진단하기-KBS 저널리즘토크쇼J의 특성과 성취 그리고 한계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공개했다. 경희대 미디어학과 이기형 교수와 황경아 강사가 방문진 방송연구지원사업에 선정돼 텍스트 분석과 함께 26명의 언론·미디어학자 서면 인터뷰를 기반으로 진행한 연구다.

보고서는 저리톡을 “KBS 내 매체비평의 전통을 계승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공영방송의 의제 설정 역량을 새롭게 시도한 콘텐츠”라 정의했다. 저리톡은 정권교체와 공영방송 경영진 재편 속 ‘정상화’ 상징처럼 등장했다. ‘기자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신랄한 토크’ 설정은 취재·보도 중심의 비평 프로그램과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언론학자, 팟캐스트 진행자 등의 패널을 꾸리고 기계적 중립보다는 선명한 방향성을 드러냈다. ‘기레기(기자+쓰레기) 가짜뉴스 퇴치 프로젝트’라는 슬로건이 단적인 예다.

▲2019년 2월 '5·18 망언, 조선의 이유 있는 침묵'편 갈무리
▲2019년 2월 '5·18 망언, 조선의 이유 있는 침묵'편 갈무리

가려운 곳 긁어준 ‘기레기 퇴치’…보수신문 비평 많아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들은 저리톡을 “역동적이고 적극적 비평양식”으로 평가했다. “저널리즘 비평이라는 쉽지 않은 활동을 대중화시킨 작업”으로서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 측면을 높이 샀다. 미디어 문화연구자 D는 “라이브로 유튜브를 하는 점이나, 기본적으로 팬덤 형성에 가까운 미디어 스타를 활용하는 방식 등에서 형식적 차이가 분명히 있다”며 과거 비평 프로그램과 차별점을 짚었다.

비평 대상은 보수 성향 일간지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100회를 기준으로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신문 위주가 40차례, 신문·방송 전반 37차례, 인터넷 5차례, 종편과 지상파 각각 2차례라 밝혔다. KBS 자사 비평은 ‘1박2일’ 출연진 내기 골프 보도, 산불 재난방송, 문재인 대통령과 기자의 대담,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의혹 보도 등 9차례다. 사안에 따라 구성원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으나 꾸준한 시도 자체로는 의미있다는 평가다. 다만 지난해 5월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인턴증명서를 발급한 의혹 관련해 재판 중인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를 ‘언론개혁’ 편에 출연시킨 일은 두고두고 안팎의 비판을 샀다.

보고서는 저리톡이 “대기업과 언론의 유착 관계나, 검찰 등의 공적 조직의 문제점에 관한 조명과 비판을 제시했다”며 “한국 사회 내 정치권과 연대하는 ‘유사 정치권력’으로서의 제도 언론에 대한 비평 및 비판과 함께 과거 비평프로그램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자사 비평’이나 내부의 비판적 시선도 일정하게 제기했다”고 봤다. 저널리즘 전공자 J는 “오랫동안 미디어 영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미디어 상호비평이 되살아나서 보수 미디어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비평한 것은 의미 있는 모습”이라 했다.

▲KBS '저널리즘토크쇼J' 유튜브 채널
▲KBS '저널리즘토크쇼J' 유튜브 채널

‘팬덤’ 형성 양면성…장기적 비평, 좋은뉴스 발굴해야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저널리즘 전공자 N은 “방송 분량이 많다 보니 ‘자극적’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청자의 고정 관념’에 잘 어울리는 주제가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것 같다”며 “‘조중동 때리기’, ‘정치뉴스’, ‘명백해 보이는 가짜뉴스’” 사례를 들었다.

미디어 문화연구자 D는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결국 팬덤 형성 프로그램이 되면서 팬덤의 시각을 제작진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단적으로 ‘기레기를 밟아주기’를 바라는 팬덤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수는 있어도 목적이 되지는 않아야 할 것 같은데 팬덤이 원하는 기사와 기자를 평가해주는 이를 구분하기가 현장에서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Q는 “친정부적 관점에서 100%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위안부·정의·기억 그리고 진흙탕 언론’ 편에서 언급된 윤미향 고문의 ‘배후’에 대한 (패널의) 반박에 대한 거친 반응과 조선일보의 관련 보도는 (양자 모두) 팬덤 정치에서 기인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저널리즘 전공자 U는 ‘인정기능’ 구축을 제안했다. “잘 쓴 기사, 특히 보수매체의 잘 쓴 기사, 중소 인터넷매체의 좋은 기사를 발굴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기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좋은 기사는 노출이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라 밝혔다.

▲2020년 12월 KBS 저널리즘토크쇼J 시즌2 마지막 회차로 방영된 'J가 했어야 할 그러나 하지 못한'편 갈무리
▲2020년 12월 KBS 저널리즘토크쇼J 시즌2 마지막 회차로 방영된 'J가 했어야 할 그러나 하지 못한'편 갈무리

시즌2 종영 앞두고 불거진 ‘비정규직 계약해지 통보’ 논란

저널리즘 전공자 Z는 이런 질문들을 했다. “조중동이나 종편이 퇴출이 되면 언론적폐와 ‘기레기’는 사라지고 사회적 신뢰는 회복될 것인가? 오히려 기레기 담론과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거나, 혹은 우리 언론과 미디어의 평가 기준과 척도가 조중동이나 종편이 되어 전체 미디어와 언론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이런 가운데 시즌2 종영 즈음에 불거진 KBS 내부의 비정규직 문제가 또 하나의 과제로 남았다. 지난해 11월, 2018년부터 저리톡 제작진으로 일했던 프리랜서 PD가 “저를 포함한 20여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한달 후면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당시 KBS는 ‘방송사에서는 프로그램 개폐 또는 개편이 수시로 발생하며 급작스럽게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밝혀, 공급자·사용자의 일방적 입장이라 비판 받기도 했다.

보고서는 “비평의 주체들이 저널리즘 관계자를 포함한 다른 집단의 행태를 비판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관여된 고용과 노동인권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사려 깊은 대응의 노력을 주체적으로 도모할 필요가 크다”고 강조했다.

▲ⓒKBS
▲ⓒKBS

KBS ‘저리톡’ 시즌 1, 2 다음은…어떻게 돌아와야 할까

KBS는 저리톡 시즌2의 후속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제작진은 시청자, 미디어 전문가들의 평가·자문을 기반으로 새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 편성될 비평 프로그램이 지금까지의 저리톡과 다른 방향성을 가질 가능성도 열려 있다.

KBS 보도국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예능성을 가미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버려야 할 때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KBS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프로그램이 ‘미디어 비평’이라는 본연 역할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강적들’(TV조선 토크쇼) 같은 정치시사 프로그램으로 역할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보도된 사실이 맞는지 적나라하게 취재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기레기 프레임’이 비판 받아온 것과 관련해 좋은 보도나 기사 등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론의 신뢰회복을 위해 기여하는 것도 비판적 미디어비평의 역할 만큼이나 상당 부분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는 취지다.

한편 시즌 1에 참여했던 송수진 기자는 ‘정파성’ 지적에 “뭔가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언어라 생각한다. 정파성의 눈으로 보면 다 정파적이다.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안 정파적인 비평을 좀 보여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공정하려고 애썼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제작 여건에 쫓겨 취재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없었던 때도 있고, 취재를 거부 당할 때도 있었다”며 “‘정파적이지 않은 비평’을 찾으려고 애쓰기 보다 ‘어떻게 더 공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정하다는 건 기계적 중립을 말하는 게 아니라 취재를 충실히 하고, 관련된 이들의 해명을 충실히 듣고 취재 결과에 반영하는 걸 뜻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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