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사측 지시에 따라 일하고 사실상 전일노동에 노동자성이 뚜렷한데도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해온 ‘막내 작가’ 즉 수습작가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태조사에서 막내 작가 ‘전속성’과 ‘종속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데 비해 노동자성엔 유보적 결론을 내렸다. 무엇보다 원청인 방송사가 참여를 거부하며 허울에 그쳤다는 평가다.

노동부는 지난달 중순 ‘2020 막내 작가 업종 자율점검 지원사업’을 진행한 최종보고서를 발행했다. 막내 작가들이 업무지시에 따라 출퇴근하고 장시간 노동하는 한편 프리랜서 또는 무계약 상태로 저임금 구조에서 일하는 현실을 파악해 대책을 내놓는다는 취지의 사업이다. 현직 ‘막내 작가’와 제작사를 대상으로 심층면접과 현장점검을 진행하고 개선과제를 내놨다.

앞서 2019년 10월 이정미 당시 정의당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동부에 막내 작가 근로계약 체결과 방송사·제작사 근로감독을 요구했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은 “노동관계법 위반 여부에 대한 근로감독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당시 이정미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해 봄 근로감독 의사를 밝혔지만 일정이 미뤄진 뒤 ‘자율개선’ 사업으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방송사가 불참하며 제작사와 막내 작가만 조사에 참여했다.

근로감독에서 자율개선사업으로 전환하며 방송사 불참


보고서는 방송사와 제작사, 메인작가 아래 일하는 드라마·예능·교양 부문 막내 작가 196명의 근무실태를 설문·심층면접하고 27개의 제작사를 설문·현장 자율점검한 결과를 정리했다.

작가들이 사측의 지휘·감독에 따라(종속성), 해당 사업장에서만(전속성) 일하는 현실은 설문과 심층 면접 모두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업무지시 주체와 최종결정권자 소속을 묻는 설문에 ‘지시 없이 자유롭게 근무한다’는 의견은 1명에 그쳤다. 107명이 ‘메인작가’, 44명이 ‘방송사’, 33명이 ‘제작사’라고 답했다. ‘업무지시 내용을 (막내 작가가)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단 1명이 ‘독자적으로 변경 가능하다’고 답했다. ‘사실상’ 또는 ‘아예’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이 128명이었다.

대다수 작가는 최소 주 5~6일 일하고, 날마다 초과근무했다. 73명이 평균 주 5일, 69명이 주 6일 일한다고 했다. 141명이 ‘1일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을 넘어간다고 답했다. 이 중평균 12시간 넘게 일한다는 답이 30명이나 됐다. 78명은 한 달에 4회 주 52시간 넘게 근무한다고 답했다. 매주 법정 근로시간을 넘긴단 얘기다. 그러나 수당은 없다. 절대다수인 188명이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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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부문 막내 작가는 심층면접에서 “항상 대기 상태여서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미리 정해진 업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대기 상태에서 메인작가가 지시하는 업무에 투입된다”고 증언했다. 교양 부문 막내 작가도 “(근무 일정을) 메인작가의 스케줄에 따른다, 그런데 메인작가는 방송사나 제작사 스케줄에 따른다”고 했다. 막내 작가 업무일정과 내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제작사와 방송사에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도 “고정된 근로시간이 없고 매일매일 메인 작가의 스케줄에 의해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결정된다”고 했다.

주 6일, 매일 초과근무하며 수당은 없어… 제작사, 엇갈리는 답변


그런데 제작사는 설문에서 달리 답변했다. 대다수 막내 작가가 1일 평균 8시간 넘게 일한다고 한 데 비해 제작사는 ‘8시간 이하’라고 했다. 월 3~4회 이상 주 52시간 넘게 일한다는 대답도 제작사의 경우 ‘0’이었다. 제작사 100%가 업무부여와 지시보고 요구 주체를 메인작가로 꼽았고, 85%는 역할 결정과 근무 배치자도 메인작가라고 했으며, 70%는 업무시간과 휴가 결정자도 메인작가라고 답했다. 막내 작가와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답한 제작사는 5곳이었고, 17곳은 ‘근로계약 외 서면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보고서의 현장점검 결과도 막내 작가 당사자들의 증언과 크게 모순됐다. 27곳의 사업장(제작사)을 현장 자율점검한 결과, 이곳에서 일하는 102명의 막내 작가 가운데 단 12명만이 ‘근로자로서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기타계약체결자’라고 결론 내렸다. 현장점검이 종합적으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이는 대목이다. 담당부처인 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는 “2인 1조로 1곳의 사업장마다 1회 혹은 그 이상 방문해 점검했다”며 “한 회당 몇 시간 점검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보고서는 설문 결과를 종합해 “막내 작가의 노동환경은 ‘저임금’이고 ‘예측할 수 없는 근로시간 및 장시간 근로’에 취약하다. 장르구별 없이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이며, 유급휴일·휴가도 거의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며 법정 휴게시간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특히 예능 부문은 1일 평균 10~12시간과 주 6~7일 근로 응답이 더 높다”고 했다.

▲지난해 11월13일 방송사·제작사들이 모여있는 서울 상암동 거리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김순미 방송작가유니온 사무국장.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해 11월13일 방송사·제작사들이 모여있는 서울 상암동 거리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는 김순미 방송작가유니온 사무국장. 사진=손가영 기자

보고서는 결론에선 막내 작가의 노동자성에 대한 판단을 미뤘다. 보고서는 앞부분에서 “막내 작가의 근로환경 실태를 들여다보면 근로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방송업계 종사자”라고 했으나 정작 근로계약 체결 또는 정규직 전환 필요성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대책으로 △제작용역비 산정 시 현 막내 작가 근로시간 특정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시 △근로환경을 위한 정부 가이드라인 마련 △근로기준법 등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제작사에 대한 교육과 감독을 내놨다.

대책으로 ‘교육과 감독’ 제시, 고용형태 판단은 미뤄


언론노조(방송작가지부)는 검토의견에서 “막내 작가들이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과 노동관계법에 의한 보호가 너무도 절실한 근로자라는 점이 명백히 확인된다”고 했다. 표면상 메인작가가 지시를 하는 구조를 두고도 “방송사·제작사들은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위와 같은 인사와 업무지시권한 등을 스스로 행사”한다며 “메인작가에게 이것이 위임된다는 이유로 막내 작가와 제작사·방송사간 (종속적) 계약관계를 부정하고 메인작가를 실질적인 사업주로 규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또 “일반 근로자들의 해고사유 상당수가 근로자 귀책인 것과 달리 막내 작가들은 방송프로그램상 예산개편이나 방송 관계자의 교체 요구가 주된 사유”라며 “부당해고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커 보인다”고 덧붙였다.

방송제작에서 실질적 ‘갑’으로 통하는 원청 방송사가 자율개선사업에 불참한 점에도 비판이 불가피하다. 방송사들은 방송작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산별노사가 2019년 구성해 운영 중인 ‘방송작가특별협의체’가 운영 중이라는 이유로 사업에 불참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당 협의체에서도 방송사들이 막내 작가 노동자 인정을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수개월째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 방송사의 내부 노동환경 개선 의지에 대한 지적과 함께 근로감독 필요성에도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KBS는 이번 자율개선사업 불참 이유에 “지금도 방송작가협의체가 운영 중이다. 특히 KBS와는 지속적으로 협의가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MBC 관계자는 “의견 파악 중으로 답변이 어렵다”고 했다. 방송작가특별협의체에 참여하지 않는 SBS 관계자는 “사내 자율개선사업에 대해 아는 이가 없다”고 했다.

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관계자는 제작사 자율점검과 설문 조사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결과 미온적인 권고에 그쳤다는 지적에 “근로자성은 각 사례를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실태조사 대상이 적어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막내 작가 설문이나 면접 결과와 현장점검 결과가 다른 건 조사 대상이 일치하기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방송사가 불참한 데에는 “우리도 아쉽게 생각하지만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다. 방송사과 제작사 등 근로감독 계획을 놓고는 “단정하기 어려우나 올해 사업장 근로감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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