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은 사퇴하면서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의와 상식이 무너졌다는 주장은 여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법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이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이 이 문제로 당장 사표를 내는 행위와는 다르다. 당장 물러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스스로 임기를 지키겠다는 뜻을 밝힌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임기를 남긴 채 지금 사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선뜻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런데 윤 총장은 4일 사직의 변 말미에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가족에 드리는 글에서도 총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검찰의 권한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와 상식,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 전날 대구고검에 방문했을 때 기자가 ‘정치할 의향 있느냐’고 묻자 윤 총장은 “이 자리에 드릴 말씀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하룻만에 사퇴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정계진출, 나아가 대선출마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검찰은 남의 잘못을 밝혀내 합당한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국가로부터 부여받았다. 이런 일을 집행하려면 신뢰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직제에 검찰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다. 신뢰를 받으려면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다. 산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재벌권력이든 권력을 수사하는데 권력의 압력과 간섭을 받지 않고 실체를 규명하는 데엔 무엇보다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독립성이 확보됐다 해도 정치적 중립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신뢰를 얻지 못한다. 특정 정파에 유리한 결론을 내거나 검사의 사적인 정치성향에 따라 수사결과가 왜곡될 수 있어서다. 검찰은 늘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주는 이유는 수사한 결과를 이용해 자신의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현직에 있을 때 뿐 아니라 그만두고 나간 다음에도 수사결과로 이익을 본 집단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서는 안된다. 금전적인 것 뿐 아니라 정치권력의 형태로 받는 보상도 마찬가지다. 검찰 재직중의 수사나 행위로 퇴직후 특정정당의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검찰청법 제43조2에 검사는 재직중 “정치운동에 관여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퇴직후 조항은 없다. 공직선거법상 공직후보자 출마는 퇴직후 90일(3개월) 후에 가능하게 돼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검찰청법 일부 개정안’에서는 검사의 퇴직후 1년 동안 공직후보자 출마를 제한하도록 했다. 최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 “퇴직 후 조속하게 공직후보자 출마가 가능함에 따라 현직의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인 동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우려가 있고, 수사·기소에 대한 정치성 문제가 제기되어 수사·기소의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장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지난달 22일 내놓은 검토의견서에서 “검사가 수사ㆍ기소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그 지위와 권한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할 소지를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고 검사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그 직무에만 전념하는 것을 보장하려는 취지로 입법취지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른 공직자와 언론인 등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법익의 균형성)이나 검사의 공무담임권을 과도하게 제한해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벗어난다는 판례도 제시돼 있다. 박 전문위원은 “개정안에 의해 실현되는 공익과 적용 대상자가 받게 되는 기본권 침해 사이에 적정한 비례관계가 성립하는지 여부를 기존 판례 등을 고려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윤 총장이 사퇴한 지난 4일을 기산하면 내년 대통령 선거 당일(2022년 3월9일)로부터 1년 전이어서 이 법이 통과돼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해도 윤 총장에는 해당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윤 총장이 이 같은 시점까지 계산해 그만두고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법까지 제‧개정해 정치 진출을 제한하고자 하는 이유를 명심해야 한다. 수사 기소권 분리 반대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든 그런 목소리를 내다가 정계로 나가는 순간 그동안 행적에 대한 평가는 순수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검사는 국가공무원법이나 검찰청법, 공직선거법과 같은 법을 뛰어넘는 고도의 직업윤리를 가져야 한다. 검찰총장의 직위를 대선 출마로 이용하는 건 검찰 집단 전체의 신뢰를 잃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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