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자사 콘텐츠 영화∙시리즈 306건(2018년~2019년)을 분석한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콘텐츠 등장인물 및 제작진 구성을 젠더, 인종∙민족, 인종∙민족과 젠더 교차성, 특정 인종∙민족 편중, LGBTQ(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등 성소수자), 장애인 등 기준으로 분석한 내용이다. ‘대중 영화 속의 불평등’ 연구 등으로 다양성 분야 권위를 인정받은 USC 애넌버그 포용정책연구소의 스테이시 L. 스미스 박사가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넷플릭스는 전반적으로 미국 업계 평균보다 높은 다양성을 보였다. 22개 평가 항목 가운데 19개 항목에서 전년 대비 다양성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주연배우는 영화 48.4%, 시리즈 54.5%로 미국 여성 인구 대비 많은 비율로 등장했다. 대상을 대사가 있는 배역으로 넓힌 경우에는 영화 36.1%, 시리즈 40.5% 수준이다.

다만 카메라 뒤의 성별은 여전히 특정 그룹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제작진 가운데 남성은 감독 76.9%, 작가 74.8%, 프로듀서 71% 등이다. 총 남성 73%, 여성 27% 비율이다. 시리즈물 성비도 남성 66.2%, 여성 33.8%로 나타났다. 직군별로는 제작자 70.2%, 프로듀서 63.3%, 작가 63.6%, 감독 72.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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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제작 종사자 가운데 여성 비율. 윗줄은 넷플릭스, 아래는 관련 업계 평균이다. 출처=넷플릭스 (Inclusion in Netflix Original U.S. Scripted Series & Films)

인종∙민족별 편중은 더욱 심하다. 넷플릭스 콘텐츠 주연을 인종∙민족별로 구분하자 백인이 71.8%로 압도적인 가운데, 흑인∙아프리칸아메리칸 13%, 히스패닉∙라틴 4.7%, 중동∙북아프리카 1.3% 순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다인종∙다민족은 3.3%, 하와이원주민∙태평양섬주민은 1% 미만이었으며 아메리칸인디언∙알래스카원주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 미국 인구 대비 주연 비율이 높은 인종∙민족은 백인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과소대표됐다는 의미다.

LGBTQ와 장애인을 찾아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연은 2018년보다 2019년에 늘었음에도 한자리 수를 넘지 못하고 있다. LGBTQ 주연은 영화의 경우 2018년 2.9%에서 2019년 5.3%, 시리즈물은 0%에서 2.1%로 소폭 증가했다. 장애인 주연은 영화가 8.7%에서 15.8%, 시리즈물이 0%에서 1%로 역시 근소하게 늘었다. 두 해를 합하면 LGBTQ 2.3%, 장애인 5.3%다.

보고서는 한편 제작자의 정체성이 콘텐츠 다양성과 직결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 영화 속 여성 인물은 여성작가 작품에서 70.7%, 비여성작가 작품에선 37.6%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시리즈물의 여성 주연급은 여성이 1명 이상 참여한 작품에서 74.6%, 여성이 없는 작품에선 41% 등장했다. 주요 배역, 대사가 있는 배역도 비슷한 경향이 드러났다. 보고서는 “카메라 뒤에서의 여성 참여는 더 많은 여성이 화면에서 역할을 이끌어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남성이 캐스팅 결정권을 쥐는 것이 여성인 경우에 비해 젠더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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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콘텐츠에 등장하는 주연급 배역의 인종∙민족별 비율. 출처=넷플릭스 (Inclusion in Netflix Original U.S. Scripted Series & Films)

테드 사란도스(Ted Sarandos)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 겸 최고콘텐츠책임자는 “제작진에 대한 포용이 향상되면 출연진에 대한 포용도 크게 향상된다”며 “넷플릭스가 발전하려면 그간 소외됐던 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는 2026년까지 2년마다 다양성 조사를 지속하고, 미국 외의 전 세계 국가에서도 관련 연구를 확대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선언한 넷플릭스에 국내 방송사와 OTT를 비롯한 콘텐츠업계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관심이다.

넷플릭스 글로벌시리즈 부사장이 박나래 언급한 이유

이런 가운데 넷플릭스는 다양성 강화를 위한 창작발전기금으로 세계 여성인재 발굴에 나선다. 벨라 바자리아(Bela Bajaria) 넷플릭스 글로벌시리즈 부사장은 4일 차세대 여성 스토리텔러를 육성하기 위한 넷플릭스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넷플릭스는 인종∙문화 다양성 등을 증진하기 위한 창작발전기금을 향후 5년간 매년 2000만 달러씩 투자할 방침이다. 그 첫 활동으로 전 세계 여성 인재들을 발굴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대표적으로 △콜렉티프50/50 (Collectif, 프랑스어로 ‘집단’/다양한 연령대∙배경의 프랑스 여성 창작인 대상) △인투더와일드(독일 전역 영화 학교 출신의 젊은 여성 제작자 대상) △위민 인 포스트(캐나다 전역의 여성 창작인 대상)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내러티브 단편영화 인큐베이터(라틴계 및 유색인종 여성 대상) 등이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등에 등장한 여성 인물들. 사진=넷플릭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등에 등장한 여성 인물들. 사진=넷플릭스

바자리아는 넷플릭스가 ‘여성 최초’를 써왔다고 강조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멕시코 선주민 여성 배우, 한국 여성 최초로 단독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을 진행한 코미디언, 슈퍼히어로 영화의 연출을 맡은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 그리고 제작사와 연출∙집필 등의 일괄 계약을 체결한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모두 넷플릭스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한국 여성 최초의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은 박나래씨가 출연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를 말한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다양성을 확장하기 위해 시도한 사례로 이 프로그램을 언급한 바 있다. 정세랑 작가 원작소설을 이경미 감독이 연출한 ‘보건교사 안은영’, 다국적 출연진이 등장하는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공개 예정) 등도 관련 사례로 함께 거론됐다.

바자리아는 “넷플릭스는 창작발전기금을 통해 ‘여성 최초’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실현해나갈 것을 기대하고, 올해 세계 여성의 날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기틀을 마련하며 다양한 시도를 지속해온 여성들을 조명하고자 한다”며 “여성을 비롯해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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