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의 코로나19 보도가 과도하게 사건화·정치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직 기자들과 의료계 전문가 등이 국내 백신 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논의한 자리에서다. 자유언론실천재단·새언론포럼이 주최한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열렸다.

한국 언론의 코로나19 보도 특징은 △오락가락 잣대 △방역의 정치화 △사건기사 취재방식 △속보 중심 △기사 쪼개기 △발표 의존 등으로 요약된다. 팩트체크 전문 매체 ‘뉴스톱’ 김준일 대표가 발표한 코로나 백신 기사 분석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 분석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 국내 75개 언론사의 코로나19 백신 기사를 대상으로 지윤성 뉴스톱 팩트체커와 빅데이터 분석 기업 ‘링크브릭스’가 맡았다.

백신 보도 정치화의 단면은 ‘문재인’ 키워드와의 비례성에서 드러났다. ‘백신’ 기사가 늘면 ‘문재인’ 대통령 이름이 언급된 기사도 늘고, ‘문재인’ 기사가 늘어나는 만큼 ‘백신’ 기사가 증가했다. 반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이름을 키워드로 삼은 기사는 ‘문재인’ 키워드 수준의 비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정은경’과 ‘질병관리청’이 동시에 등장한 경우에는 ‘백신’ 보도와 비슷한 상승곡선을 보였지만, 두 키워드 중 하나만 빠져도 그만큼의 상관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뉴스톱∙링크브릭스, 코로나19 백신보도 정량분석 결과 발췌
▲뉴스톱∙링크브릭스, 코로나19 백신보도 정량분석 결과 발췌

백신의 정치화, 나아가 ‘정쟁화’에는 정치권이 미친 영향이 크다. 비과학적 주장에 거리낌 없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백신이 정치권 공방의 중심에 올랐다. 지난 2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폄훼 발언이 검증 없이 전시된 일도 같은 맥락이다. 보건의료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부 기자들이 관련 발언을 평소의 여야 공방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다.

정파적 보도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특성의 정파적 보도를 ‘돈 되는’ 수단으로 만든 환경도 문제다. 한국언론진흥재단·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지난해 설문 조사에서 조사대상 40개국 중 한국이 4번째로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를 선호했다. 40개국 평균 응답률이 28%, 한국 응답자 답변 비율은 44%로 나타났다. 정파성에 기반한 기사 생산과 소비가 지지 정당에 따라 백신 신뢰도가 다른 인식의 간극을 만드는 셈이다.

‘클릭 수’를 위한 ‘이상 반응 속보’도 고질적 문제다. 타사 보도를 그대로 베껴 쓰는(속된 말로 ‘우라까이’) 관행이 때로는 오보 따라 쓰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 3일 포털에 “[속보] 당국 ‘백신 접종 후 사망 현재까지 영국 402명·독일 113명 등’”이라고 깔린 속보가 있다. 연합뉴스가 독일 사망자 수 11명을 113명으로 잘못 표기한 내용이 시시각각 속보로 전해진 것이다. 연합뉴스는 이후 아무런 정정 표기 없이 제목을 수정했고, 여전히 상당수 기사가 오보로 온라인에 남아 있다.

▲4일 자유언론실천재단-새언론포럼 공동 주최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자유언론실천재단
▲4일 자유언론실천재단-새언론포럼 공동 주최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제공=자유언론실천재단

코로나 백신을 다룬 전체 기사량 대비 팩트체크 기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뉴스톱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2월까지 코로나 관련 뉴스는 147만1254건, 백신 관련 뉴스는 9만3254건에 달했다. 그러나 ‘백신’과 ‘팩트체크’ 키워드가 동시에 나타난 기사는 70여개 뿐이다. 김준일 대표는 “백신 보도가 늘어남에 따라 팩트체크 기사도 늘어났으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강양구 TBS 과학전문기자는 언론 보도가 국내 방역정책에 악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했다. 강 기자는 “지난해 12월부터 각종 백신을 계약했느니 들여오느니, 올해 1월부터는 정부가 미리 확보하고 가장 먼저 접종하기로 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둘러싼 논란이 생겼다”며 “일부 언론의 호들갑과 악의적이고 집요한 보도 때문에 아스트라제네카가 문제 있는 백신처럼 되어버렸다. 그렇게 되니 질병관리청과 산하 예방접종전문위 전문가들이 시쳇말로 쫄았던 것”이라며 “우리 손에 쥐고 있는 백신을 언론과 언론 눈치 보는 정부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했다.

현장의 불안감을 무책임하게 보도하는 행태도 지적됐다. 강 기자는 ‘“부작용? 백신 맞느니 사표”…일부 의료진 거부’란 제목의 지난달 SBS 보도를 두고 “백신 접종 불안감을 느끼는 의료진 발언을 쓰려면, 예를 들어 ‘대한의사협회 설문 조사에서 의료진 80% 이상이 불안감을 느꼈다’는 식의 전제가 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백신 접종 대상이었던 요양병원 종사자나 의료진 여론조사를 해보면 90% 이상은 백신을 맞겠다고 했다”며 “앞뒤가 안 맞는 보도였다”고 비판했다.

▲4일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 발췌
▲4일 김준일 뉴스톱 대표가 '코로나19 백신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 발췌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재난 보도와 백신 기사의 톤은 달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속도전에 매몰되어 혼란을 조장하기보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의료계 전문가들을 정파적 입장에 따라 분류하는 접근도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교수는 기자들이 충분히 공부가 된 상태에서 전문가 취재에 나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자신도 몰라서 책 읽고 기사 읽다가 ‘이게 뭐예요’ 물어보면 답해 줄 이유와 가치가 없다. 그런 기자분이 전문가 발언을 기사에 제대로 실을 거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혹시라도 부서 이동을 비슷한 시기에 한 기자들이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의 등을 요청하면 해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안기석 새언론포럼 회장은 “언론이 더 이상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바이러스’ 역할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안전과 안정된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백신’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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