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건설 하청 노동자 정순규씨 추락 사망사건 재판이 3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열렸다. 검사는 경동건설 측이 제출한 정순규씨 서명자료 위조와 관련해 하청업체인 JM건설 측 현장소장(피고인)을 증인 신청했다. 재판부는 정씨의 추락 경위를 두고 질문을 이어갔다.

아파트 신축현장 안전관리 업무에 소홀해 하청업체 노동자 정씨를 숨지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산업안전보건법 위반)로 지난해 3월 재판에 넘겨진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J업체 관리자에 대한 3차 공판이 이날 오후 열렸다.

2019년 10월30일 경동건설이 시공하는 부산 문현동 경동건설 리인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도급 건설업체 J업체 소속 25년차 노동자 정순규씨가 비계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J업체 대표를 산안법 위반으로, 두 업체 소속 안전관리자 3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지난해 말 재판에서 이들에 대한 구형을 마쳤으나 재판부가 선고 직전 피고인들에게 보충자료를 요구하는 석명준비명령을 내리고 변론 재개를 결정했다.

▲ 2019년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산재로 추락사한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가 3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정씨 사망에 대한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정석채씨 제공
▲ 2019년 부산 경동건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산재로 추락사한 정순규씨 아들 석채씨가 3일 부산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정씨 사망에 대한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정석채씨 제공

이날 공판은 경동건설 측의 문서 위조가 드러난 뒤 열린 첫 재판이기도 하다. 경동건설과 하청업체 측 변호인단은 지난해 10월 재판에서 정씨 이름과 서명이 담긴 ‘관리감독자 지정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정씨가 현장의 안전·관리 감독자로 사측은 정씨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취지였으나, 유족이 문건을 입수해 필적감정을 맡긴 결과 위조임이 밝혀졌다.

검찰 측은 이날 경동건설이 제출한 증거자료 위조와 관련해 정씨 사고 당시 현장소장이었던 하청업체 J건설 권아무개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다른 사람(피고인)도 다함께 나와야 하느냐, 아니면 종결할까”라고 확인했고, 검찰 측은 추가 신청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재판부는 정씨 추락 위치와 경위 관련한 질문도 이어갔다. 재판부는 “전임 재판장님이 사고 장소가 정확하게 어느 쪽 사다리인지에 관해 특정할 것(을 언급했다)”며 “공소사실에 대해 발언기회를 주겠다. 정확히 어디에서 어떤 경위로 추락했는지 피고인들은 알고 있느냐. 목격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피고인 측 대리인은 “목격자는 없다”고 했다. 또 판사는 “사다리를 이동하다가 미끄러져 추락한 것인지, 아니면 사다리를 정상적으로 보행하지 않다가 추락했는지 알 수 없겠다”고도 했다.

▲ 사측 변호인단이 지난해 재판에서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 이 문서에 적힌 정씨 서명은 필적감정전문기관에 의해 위조로 확인됐다. 사진=정석채씨 제공
▲ 사측 변호인단이 지난해 재판에서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 이 문서에 적힌 정씨 서명은 필적감정전문기관에 의해 위조로 확인됐다. 사진=정석채씨 제공

판사는 이어 “사다리가 정상적이라도 누구라도 이동하다 미끄러져 추락할 수 있는데, 공소사실 보면 안전대를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안전대가 뭔지 혹시 아시나”라며 “검찰 공소장에서도 추락을 직접 막는 방법은 안전대 안전고리밖에 없는데, 그걸 사다리의 어느 부분에 설치하고 작업자들도 그에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거나 이동한다는 것인지”라며 추후 공소장에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주문했다.

정씨 추락 위치는 그의 추락 경위와 회사 책임 정도를 판단하는 주요 쟁점이다. 수사기관마다 추락 위치를 다르게 추정해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사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3.8m에서 안전난간 바깥쪽 사다리를 이용하다 떨어졌다고 봤고, 부산지방경찰청은 4.2미터 높이의 비계에서 그라인더 철심 작업 제거 중 안전난간 안쪽으로 떨어졌다고 추정했다. 이들을 기소한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경동건설 의견을 따라 정씨가 약 2m 높이의 수직 사다리에서 떨어져 숨졌다고 밝혔다.

산재 유족인 정석채씨는 심리가 끝난 뒤 재판이 원청인 경동건설의 안전관리 책임을 규명하는 방식으로 재판이 진행될지에 우려를 표했다. 정씨는 “새로 배정된 판사는 ‘사다리’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하고, 위조된 ‘관리감독자 지정서’는 경동건설 이름으로 제출했는데 검찰은 하청업체 현장소장만 심문한다고 한다. 재판의 모든 부분이 경동건설 비호하는 방향으로 비친다”고 말했다.

부산해운대경찰서 정보관을 비롯한 경찰 2명이 이날 재판을 방청해, 유족이 배경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오는 4월7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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