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씨가 인턴으로 근무하는 한일병원을 찾아갈 기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국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명 ‘조민 의사면허 박탈법’까지 만들어놓은 마당이다. 조씨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 기자들은 이 법안에 대한 입장을 묻거나, 또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병원을 찾은 시민들을 상대로는 ‘조민이 여기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혹은 ‘조민이 당신을 진료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냐’ 따위를 물을 것이다. 

이 같은 ‘취재’를 위한 ‘알리바이’도 이미 준비되어 있다.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는 ‘조민 추적은 스토킹이 아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제목의 지난달 27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1심 판결 결과 조민씨의 의전원 부정 입학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물론이고 조국 전 장관 부부의 적극적 개입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음에도, 조 전 장관 가족, 그리고 조민을 옹호했던 수많은 친문 중 그 누구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조민의 의사 생활을 계속 추적하되, 이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이유”라고 적었다. 

서 교수의 지적대로 ‘반성’은 중요하다. 스스로가 ‘내로남불’이라 비판받는 당사자라면 특히 그렇다. 마찬가지로 언론의 반성도 중요하다. ‘조민,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일방적으로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 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는 제목의 2020년 8월28일자 조선일보 지면 기사는 조선일보가 하루 만에 사과할 만큼 부실했다. 조국 전 장관 측은 해당 기사를 두고 “공적 대상에 관한 것도 아니고 공적 관심사의 내용도 아니다. 오로지 조국 전 장관과 딸에 대한 혐오와 모욕을 부추기기 위해 사실관계를 완전하게 날조한 기사”라고 주장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공적 대상과 공적 관심사가 점점 흐릿해지는 시대다. ‘공인=유명인’을 넘어 ‘조회수 나오는 사람=공인’이란 인식이 만연하고 있다. 조민씨를 향한 비판은 누구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씨가 공인일까. 공인이라면 비자발적 공인인가, 제한적 공인인가, 아님 조두순 같은 사악한 공인인가. 언론은 ‘공인’에 대한 기준을 갖고 조씨 취재에 임하고 있을까. 조씨가 공인이라 해도, 공인에겐 보호받아야 할 사적 영역과 인격권이 있는데 조씨의 일터를 취재하는 행위는 정당할까. 조씨의 인턴 지원과 탈락 사실을 ‘속보’ ‘단독’으로 보도했던 것은 공적 관심사였을까. 

조민씨의 한일병원 인턴 생활이 힘들어질까 걱정하는 게 아니다. 공적 대상과 공적 관심사가 흐릿해질수록 저널리즘의 수준은 떨어지고,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뉴스이용자들이다. 앞서 조선일보는 2019년 10월28일 “정유라 남편은 누구?…셋째 출산 소식에 누리꾼들 설왕설래”란 제목의 기사를 출고했다. 정씨의 셋째 출산 소식이, 남편이 누구인지가 공적 관심사인가. 이런 기사도 있으니 조민씨도 자신을 향한 관심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과거 검찰총장의 혼외자식도 단독 보도하는 세상이니 문제 될 것 없는 건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2017년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 유승민 전 의원의 딸 유담씨가 공인이라는 응답은 각각 33.7%와 25.6%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기자가 ‘공인’이라는 응답(55.7%)보다 낮았다. 공인과 공적 관심사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는 취재는 기자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조씨를 따라다녔던 아무개 기자의 일터와 일상도 누군가의 취재대상이 되어 낱낱이 발가벗겨질 수 있다. 

조씨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가 ‘아빠 찬스’ 때문이라면, 언론은 왜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의 딸이 지난해 공채를 통해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한 것에 대해서는 ‘아빠 찬스’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 것일까. 유력일간지 사주는 공인이 아닌가. 아니면 유력일간지 사주의 딸은 공인이 아닌가. 공적 사안에 대한 ‘선택적 문제의식’의 토대는 무엇인가. 언론계가 우려하는 ‘군중검열’이란 비이성적 행동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고민이 없다면 파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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