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은 내부 격차 문제를 두고 최근 홍역을 두 번 치렀다. ‘사내 인력 공모’를 추진했던 지난해 11월과 인사 개편이 이뤄진 지난 1월이다. 회사에선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반발이 커지고 있었다. ‘직분’ 격차가 신분제처럼 위계화됐다는 불만은 오래 누적됐다. 회사 인사 정책이 이를 자극하며 ‘비(非) 호봉직’들이 크게 울분을 터트렸다. 

사내 인력 공모는 신입 채용과 동시에 추진한 기존 직원의 전환 채용 시험이었다. 전형은 서류, 필기, 실기, 면접 등으로 이뤄졌다. 통과하면 직무와 직분이 함께 전환됐다. 가령 제작AD가 시험을 거쳐 기자가 되면서, 처우가 낮은 연봉직에서 높은 호봉직이 될 수 있었다. 직원들 불만은 여기서 터져 나왔다. 회사가 직분 전환에 무관심하다는 불신이 퍼진 상황이었다. 회사의 해명에도 “공채를 통과하면 진짜 정규직이 될 기회를 준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팀별로 직분을 분리한 인사는 분노까지 자아냈다. 호봉직과 비호봉직이 섞여 있던 부서는 개편 후 호봉직만 남거나 비호봉직만 남았다. 회사는 차별 임금 소송 등 법적 리스크에 대응하고 차별을 해소하는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분리된 직원들에겐 설득력이 없었다. 연봉직원 A씨는 “왜 소송이 제기됐는지 과정과 회사 책임은 보지 않고 차별을 참아온 직원을 리스크로만 봤다”고 말했다. 

YTN엔 3개 직분이 있다. 처우 순대로 호봉직, 일반직, 연봉직이다. 모두 고용기간에 정함이 없는 직분이지만 사규상 처우는 다르다. 호봉직은 통상의 정규직으로 임금, 복리후생, 승진 등의 인사·처우가 가장 체계적으로 규정됐고 수준도 가장 높다. 일반직, 연봉직은 무기계약직에 가깝다. 처우는 일반직 연봉이 같은 연차 호봉직의 70% 수준으로, 50~70% 정도인 연봉직보다 높다. 

▲YTN 내 직분 간 급여로 지급되는 수당, 상여금이 다르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YTN 내 직분 간 급여로 지급되는 수당, 상여금이 다르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미디어오늘과 만난 비호봉직원 10여명은 최근 갈등 이유를 “시스템에 대한 합의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비호봉직은 지금 구조가 옳은가, 지속 가능한가란 근본 질문을 오래 전부터 계속 했다. 결국 임금 차별을 넘어 내가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지 않는다는 모순까지 느꼈다. 그러나 회사 의사결정 시스템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이들의 말을 종합한 진단이다. 

법원 “고용 형태는 사회적 신분, 차별 안돼” 

때문에 3월 구성될 사내 직분 간 격차 문제를 논의하는 협의체(TF)에 관심이 쏠린다. 구체적으로는 TF가 견지할 방향성이다. YTN 노사는 지난 1월 2020년 임금협약을 체결하며 3월 내 TF를 구성해 상반기 중 반드시 대안을 도출하자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언론노조 YTN 지부는 현재 직무별, 직군별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며 여론을 수렴하고 있다. 

MBC 본사와 대전MBC의 무기계약직 차별 임금 청구 소송은 선례다. MBC 업무직·연봉직 97명은 2014년 소송을 제기하며 일반직에만 주택·가족수당, 식대 등을 지급하는 건 고용형태라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법은 2016년 이들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고용형태는 사회적 신분으로 볼 수 있고, 업무직·연봉직이 일반직과 동종·유사 업무를 한다고 봤다. 업무가 달라도 이들이 과거 일반직 업무를 맡고 있거나 업무의 양과 질, 난이도, 기여도 등이 다른 부서 직원보다 과소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전MBC 무기계약직 12명이 2013년 제기한 소송은 대법원 판례를 남겼다. 대법원은 2019년 12월 무기계약직에게도 동종·유사 업무의 정규직이 적용받는 취업규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이 '입직 경로와 업무 책임이 달라 본질적으로 유사 집단이 아니다'라는 2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2017년 11월 27일 설치한 ‘사장 후보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 붙은 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 포스트들. 위 사진의 '중규직'은 무기계약직을 뜻한다.사진=김도연 기자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2017년 11월 27일 설치한 ‘사장 후보자에게, 질문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게시판에 붙은 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요구 포스트들. 위 사진의 '중규직'은 무기계약직을 뜻한다.사진=김도연 기자

KBS 오랜 투쟁 끝 무기계약직 해소 

두 방송사 모두 구조 개선을 거쳤다. 대전MBC에는 현재 무기계약직이 없다. 소송에 참여한 계약직 모두 소정의 경력 심사를 거쳐 일반직으로 편입됐다. 

MBC는 2018년 노사 협약으로 업무직, 연봉직, 일부 프리랜서 등을 ‘전문직’으로 통합했다. 직종, 처우, 고용형태가 각양각색이어서 일반직으로 일괄 전환하지 못했고 전문직에 적용될 취업규칙을 따로 마련했다. 동시에 업무 유사성이 강한 전문직 최소 35명은 3년 안에 일반직으로 전환키로 해 지난해 말 이행했다. 남은 전문직들의 일반직 전환은 숙제로 여전히 남았다. 

KBS도 2019년 3월 무기계약직군을 없앴다. 무기계약직 125명, 방송음향 디자인직 30명, 자원관리직 32명, 관현악단원 38명 등이 정규직과 같은 처우를 받는 '일반직'으로 다시 채용됐다. 양승동 사장이 ‘비정규직과 상생’을 공약해 취임하면서 언론노조 KBS본부와 10개월 간 협의했다. 

당사자 노조의 끈질긴 싸움이 원동력이었다. 대전MBC와 KBS 모두 비정규직의 차별 폐지 투쟁이 있었던 방송사다. 모두 2009년께 크게 벌어졌다. 고용 기간 2년을 넘긴 기간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된 해였다. 달리 말하면 법 제정 때 고용된 기간제 노동자가 대거 해고된 해였다. KBS 해고 기간제 노동자 100여명이 언론노조 KBS계약직지부를 결성해 2015년까지 복직 투쟁과 소송을 진행했다. 

2010~2015년 동안 복직을 원하는 해고노동자 전원이 무기계약직으로 복직됐다. 이들은 일반직과 동종 업무나 협업을 하면서 일반직의 60% 수준의 임금을 받았다. 초기 연봉이 낮은 데다 일반직과 다르게 근속에 따른 호봉상승도 없어 임금 상승률이 매우 낮았다. 이들은 복직 후에도 ‘KBS계약직협회’를 만들어 차별 시정과 고용 구조 개선을 꾸준히 주장했다. 

마침내 일반직으로 전환됐지만 이들에겐 아쉬운 결과였다. ‘퇴사 후 재입사’로 합의되면서 근속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입사했다. 기존 연봉에 맞춘 ‘7직급’의 호봉 체계에 편입됐다. 계약직들은 “업무와 경력의 정당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 적정 직급 및 호봉 산정”을 요구했으나 회사의 완고함을 이기지 못했다. ‘입직 경로’를 중시하는 일부 일반직의 반대 여론도 영향을 줬다. 

▲2018년 KBS 무기계약직등의 일반직 전환 협상 과정에서 계약직 당사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윤해숙 KBS본부 노사국장 제공.
▲2018년 KBS 무기계약직등의 일반직 전환 협상 과정에서 계약직 당사자들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윤해숙 KBS본부 노사국장 제공.

“원칙 세우고 똘똘 뭉쳐라”

10년간 투쟁했던 윤해숙 KBS본부 노사국장(전 KBS계약직지부 부지부장)은 당시 계약직협회가 ‘모두 함께 전환’, ‘저임금자 처우 우선 개선’을 원칙으로 두고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KBS가 필요한 인력을 일관성 없이 채용하면서 무기계약직 120여명의 직무만 60여개에 달했다. 이 경우 회사는 일부 직원만 전환 대상자로 두는 분리 전략을 쓰기 쉽다. 계약직협회는 직무, 임금, 평가 등을 따지지 않고 모든 계약직이 전환 대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관철시켰다. 

윤해숙 노사국장은 또다른 원칙으로 ‘직무 인식의 전환’을 들었다. 일부 직무는 핵심 업무로, 일부는 비핵심 업무로 두고 고용 형태나 처우에 차등을 두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방송사를 기계에 비유하면 볼트 1개만 빠져도 망가질 수 있다. 그런데 볼트나 너트 크기가 작다며 ‘비핵심’으로 배제한 게 기존 고용 구조였다는 설명이다. 윤 노사국장은 “직무 가치는 방송사 운영에 필수 업무이냐 아니냐로 판단해야 한다”며 “그런 모든 직무들이 모여 KBS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대전MBC 소송을 주도했던 길홍동 미술감독은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원칙 준수를 강조했다. 또 기간에 정함이 없다는 이유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간주할 수도 없다고 했다. 길 감독은 “똑같은 일을 하는데 처우를 달리해 계약직과 정규직으로 나눠서 뽑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단순 차별 시정 아닌, 공적 기관의 전망 수립 문제”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이 문제는 당장의 차별을 어떻게 개선할지 혹은 현재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 관점이 아니라, 사업장 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라는 장기 전망을 가지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YTN 경우도 “비호봉직을 호봉직으로 맞추는 문제가 아니라 분할된 직무체계를 어떻게 통일시킨 것인지”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활동가는 “YTN이 방송사로서, 공적 기관으로서의 자기 전망을 세우고 그 속에서 노동자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분리된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서로가 충분히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규직에겐 문제가 없고, 비정규직만 개선 대상이라 여기기 쉬우나 절대 그렇지 않다. 사내 의사 소통 구조 민주화라던가 각자의 요구가 있고 이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들이 충분히 논의하고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수적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대체로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노동조건에 계속 격차가 발생하기 쉽다”고 말했다. 핵심·비핵심 업무 구분이 한 예다. 김 활동가는 “일방으로 결정되는 업무 분석에선 반드시 핵심 업무 범위가 점점 줄어든다. 철도 정비 경우 경정비와 중정비로 나눠 경정비는 비핵심 업무라며 외주화한 게 예”라며 “기자, PD 등도 지금은 핵심 업무라 하겠지만 이 업무가 쪼개지기 시작해 어떻게 일반화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pixabay.
▲ⓒpixabay.

TF 전 불신 해소돼야… YTN “장기·지속 격차 해소해왔다” 

YTN은 비호봉직 사이에 깔린 불신을 완화할 과제도 안고 있다. 한 비호봉직 직원은 올해 초의 직분 분리 인사에 대해 사내게시판에 “회사 선택지 중엔, 사람을 잘못 쓴 건 회사인데 쓰임을 받은 노동자만 수습에 대한 혼란과 업무 가중을 뒤집어 쓰는 방법밖에 없느냐”며 “마음이 다친 사람이 열정을 갖고 동기부여를 얻기 어렵다”고 썼다.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잘못 쓰인 사람을 위로하며 문제 해결 방식에 당사자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도 적었다.  

한 비호봉직원 B씨는 “법적 대응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TF가 올해 발족했을까”라며 “처우만 조금 더 올려주지 구조 개선을 과연 고민했을까”라고도 물었다. 사내 직분을 둘러싼 법적 대응은 지난해 7월 한 연봉직 그래픽 디자이너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을 신청하며 시작됐다. 11월엔 연봉직 디자이너 4명이 서울서부지법에 차별 임금 청구 소송도 넣었다. B씨는 이들의 법적 문제제기가 TF 구성을 이끌어냈다고 봤다. 

YTN 680여명 직원은 호봉직 480명, 일반직 65명, 연봉직 130여명으로 나뉜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70여개 팀·부서 중 직분이 섞인 부서는 30개가 넘는다. 호봉직의 ‘CG’ 직종 17명은 연봉직 ‘디자인’ 직종 14명과 유사 업무를 한다. 전산 업무는 호봉직 8명과 일반직 2명이 맡고 있다. 동일한 자료 관리 업무를 맡지만 호봉직 직종 명칭은 ‘자료’, 연봉직 명칭은 ‘자료입력’이다. 스튜디오 촬영 업무도 일반직 ‘스튜디오 카메라’ 16명과 호봉직 ‘선임카메라’ 3명이 함께 맡았다. 연봉직 ‘제작AD’ 대부분 PD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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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사옥. 

YTN 사측은 직분제와 관련 “차별이 아닌 차이는 직무에 따라 당연히 존재하지만 이 차이가 합리적인지는 다양한 판단이 가능하다. 회사는 정규직분 내에서도, 정규직-비정규직을 포괄해 어떠한 직무에서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한다”며 “직무를 불문하고 차이를 없애라는 주장은 회사로서도, 구성원들도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이해당사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차이를 찾아가는 노력은 어느 회사에 비해 성실히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YTN은 또한 “회사는 기존 직분 전환 절차가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으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찾기 위해 오래 정책 검토를 했다”며 “결국 기존 절차보다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는 ‘승진 연계형 특별승호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이런 일련의 노력은 소송 등이 제기된 뒤 임시방편으로 도입한 게 아니라 오랜 논의와 노사 협의 등을 거친 결과물이었다”고 밝혔다. 

YTN은 무엇보다 “노조와 더불어 직분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어느 회사를 막론하고 직분 갈등 해소는 사내 모든 구성원의 이해와 연관돼 있어 현실 적용 가능한 정책을 만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당사자에게 이런 과정이 더디게 보일 수 있지만 회사 그리고 함께 노력해온 노조와 구성원들이 일방으로 매도 당할 일은 아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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