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언론 개혁하면 떠오르는 ‘언론 보도 징벌 배상’. 핵심은 언론개혁의 출발이 될지, 아님 뒷걸음이 될지 여부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법학회가 지난 24일 공동 주최한 ‘언론중재법 개정법률안 쟁점 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언론중재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에 포함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점이 쏟아졌다. 토론자들은 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언론개혁을 한다면서 왜 하필 징벌적 손해배상제만 갖고 소모적으로 논쟁하나”라고 반문한 뒤 “빈대 몇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법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언론노조와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징벌적 손배 도입 법안에) 우려 성명을 냈다. 정부 여당은 민감한 법안을 추진하며 여론 수렴 작업이 거의 없었다”며 “참여정부 시절 취재지원선진화방안이라는 아주 좋은 제도를 일방 추진하다 실패한 게 되풀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훈 회장은 이어 “현장 기자들은 징벌적 손배제만 이야기하면 허탈해한다. 징벌적 손배제가 언론개혁의 전부가 아니다. 언론개혁의 끝판왕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뒤 “정부 여당은 미디어개혁위원회부터 만들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제대로 된 언론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보도를 구분해보면 의견 보도가 많다. 아무리 배상액을 올려도 이런 보도는 막지 못한다. 이 법안이 문제적 보도를 걸러 내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나”라고 되물으며 “언론의 책임성을 좀 더 부여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은지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밑도 끝도 없이 (법안에 대한) 찬반으로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이 논의는 시간을 가지고 힘들더라도 반대쪽 의견을 들어가며 법리적인 부분에서의 약점들을 보완하면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석태 교수는 또한 “법은 일반적 효력으로 언론 보도 관행에 큰 영향을 준다. 과거 하나의 판결을 시작으로 이후 한국 사회는 익명 보도가 원칙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으며 “아동학대처벌법은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가 누군지 보도하지 말게 했고 그 결과 손석희 JTBC 사장이 이 법으로 약식 기소됐다. 선의로 만들었던 법안이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다”고 강조하며 “4년 전 국정농단 국면에서 징벌적 손배제가 있었다면 실제 보도에서 큰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번 법을 만들면 쉽게 바꿀 수 없다. 문제적인 보도가 발길에 많이 차인다고 속도전으로 갈 일이 아니다”라고 주문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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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취재 보도 위축 우려는 과도하다. 설령 (정치인과 대기업의) 봉쇄소송이 있더라도 비판 보도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다면 그다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채 교수는 “현행법에서도 이미 허위사실을 보도하면 손해배상을 하는데 법 정신의 실효성이 약하다는 지적의 대안으로 (징벌적 손배가) 제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언론의 자유는 최종 목적이 아니다. (언론자유라는) 기본권이 지향하는 것은 시민의 자유다. 그리고 대다수 시민은 법안에 대한 지지여론을 통해 지금 언론의 자유로 인해 자신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채 교수는 “현재 언론자유의 성격을 보자. 부동산 뉴스를 예로 들면 언론은 100% 보도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부동산 자산가와 업자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언론사의 상업적이고 정치적 이익을 축적할 자유만 향유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모든 언론사들이 출입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출입처를 시민에게 두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 언론사는 정치 권력과 대기업 홍보실에만 출입처를 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내부 자성의 목소리 없이 (법안을 두고) 법리적 문제만 주장하는 것은 매우 논리가 약하다”고 주장했다.

김준현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장(변호사)은 “언론보도 피해구제 현실화와 언론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 징벌적 손배제 도입에 찬성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정보통신망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추진하며 여기에 언론을 포함시킨다는 방향은 체계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김준현 본부장은 “언론사는 정보통신망법상 이용자가 아니다. 민주당은 표현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배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하며 “민주당이 언론보도 피해구제보다는 표현행위 규제법안을 찾다 상법에서 정보통신망법으로 간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김준현 본부장은 “정청래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있는 ‘악의적’이란 표현은 징벌적 손배에 따른 언론자유 침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조건이다. 이 경우 봉쇄소송으로 법원이 징벌 배상을 인정하는 사례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으며 “설령 법이 도입돼도 허위사실 명예훼손 입증을 피해자가 해야 해서 판례가 나오기 쉽지 않다”며 “일반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할 부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고위공직자나 대기업은 일반 피해자보다 명예훼손 입증 책임을 엄격하게 하는 방안으로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준현 본부장은 “배상 금액에 대해서는 현재의 배수제 개념보다 정액제나 정률제가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배수의 기준이 되는 손해액이 위자료인데 인격권 침해는 비재산권 침해라 기준액이 없다. 배상 액수 산정을 언론사 매출액의 몇 퍼센트와 같은 방식으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어 “징벌적 손배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이게 완벽한 대안이고 곧바로 언론개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구제를 위한 첫걸음 정도다”라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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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발제를 맡았던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각종 오보나 왜곡 보도가 법이 생긴다고 해서 규제의 대상으로 포섭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가능해 보인다”며 “문제가 되는 보도 다수가 의견 보도일 수 있고, 이 법이 도입된다고 해서 걸러지지 않을 문제적 요소가 다분한 보도들이 있다. 구체적 사례를 보면 도입해야 할 것 같지만, 또 일반 원칙으로 확립됐을 때 과연 원하는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라는 점에서 신중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민정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처럼) 진실한 사실을 적시했는데 처벌의 위험이 있는 국가가 많지 않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한 국회의 충분히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6월부터 미디어와 언론 관련 법안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논의 중인 개정안은 모두 미디어와 언론에 더욱 엄중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개정안이 정직한 목격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의 목소리를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는 목소리도 거세다”며 “법안을 둘러싼 촘촘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언론보도 징벌적 손배제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 16일 징벌적 손배제를 다룬 KBS ‘열린 토론’에서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민주당이 내놓은) 정보통신망법에 의한 언론보도 징벌 배상은 잘못된 치료법이다. 폐병이 있다고 부작용이 심한 약을 먹이려는 것과 같다. 언론노조는 지금보다 높은 수준의 배상과 피해구제에 대해선 찬성이지만 이번 법안은 오용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면 같은 방송에서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악의를 품고 내보내는 기사가 너무 많다. 공정하게 보도하면 법에 겁날 이유가 없다”며 “언론노조·기자협회가 신문협회와 동조해 악법으로 규탄하고 과격하게 나선 점이 실망스럽다”고 주장했다. 또 “언론의 왜곡 보도로 망한 기업이 몇이고 자살한 사람이 몇인가”라고 되물으며 “유해언론이 너무 많다. 우리 언론의 신뢰도를 보면 다른 나라에 없는 법도 만들어야 한다”며 빠른 입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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