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신문에 ‘레임덕’이란 말이 등장하고 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의파동’이 일단락되자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을 레임덕과 연관지었다. 지난 24일 국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개혁 속도조절을 요구했는지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고,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론’에도 여당 강경파가 이를 거부하며 검찰개혁을 강하게 추진한다며 비판했다. 

▲ 25일 9개 종합일간지 1면
▲ 25일 9개 종합일간지 1면

 

거슬러 올라가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두 가지를 말했다고 전했다. 수사권 개혁의 안착과 범죄 수사 대응능력·반부패 대응 수사 역량 후퇴 불가 등이었다.  

박 장관의 전언 형태로 알려진 ‘수사권 개혁 안착’ 발언을 언론에선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으로 봤다. 정부여당에서 지난해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겪은 뒤 검찰개혁 속도전이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에 오는 4월 재보선을 앞두고 검찰개혁 속도조절론을 바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여당에선 진화에 나섰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4일 “당정 간, 또는 당청 간 이견이 있는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2월말이나 3월초에 검찰개혁 특위 차원에서 법안 발의가 예정돼 있고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그게 과연 속도 조절이냐. 아닌 것으로 보인다”,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말씀은 일상적 당부로, 속도 조절에 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들었다”고 각각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특히 황 의원은 “검찰이나 보수 언론의 희망사항이 반영된 해석 같다”고 덧붙였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중앙일보는 25일 1면 기사 제목을 “당청 국회 설전까지 커지는 레임덕 논란”이라고 뽑았다. 야당은 꾸준히 레임덕을 주장해왔다. 최형두 국민의힘 대변인은 “대통령의 속도조절론까지 거부하는 여권 인사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걱정스럽다”고 했다. 

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속도조절론 관련해 회의 마지막에 “정회했을 때 확인했다. (대통령이) 속도 조절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중앙일보는 “논란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며 “‘청와대 장악력이 확연히 떨어졌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해석했다. 

▲ 25일 중앙일보 1면 기사
▲ 25일 중앙일보 1면 기사

 

이번 사건 이전에 레임덕과 연결한 사건은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파동이었다. 지난 7일 법무부의 검찰장급 인사 발표 이후 신 수석이 수차례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고, 대통령이 만류한 사건이다. 민정수석과 협의 없이 박 장관이 검찰인사를 강행했다는 주장과 문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았다는 주장, 신 수석이 박 장관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는 주장 등 해석이 난무했다. 

이에 유영민 비서실장은 24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인사안 승인은 발표 전에 했다”며 “전자결재는 통상 (발표) 다음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또한 사의파동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 실장은 “(신 수석 사표 관련)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수리될 수도 있다”며 “조만간 결론을 내리겠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신 수석의 ‘항명’이라는 말이 나왔고, 정권 후반기라는 상황과 맞물려 레임덕이란 주장이 나왔다. 

24일 국회에서도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6년 전 당시 문재인 의원이 ‘김영한 민정수석 항명 파동’에 콩가루 집안이라 위아래도 없고 국가기강을 쑥대밭 만들었다고 비판했다”며 “신현수 항명이야말로 콩가루 집안 위아래도 없고 국가기강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앞서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도 “(신 수석) 사퇴 파동으로 문 정권의 ‘레임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한 바 있다. 유 비서실장은 “항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중앙일보는 사설 “중대범죄수사청 밀어붙이기, 레임덕 자초하는 꼴”에서 “결국 대통령 임기 마지막 1년을 남긴 시점에 대통령 영(令)이 안 통하는 모양새여서 임기말 당청 갈등이 이미 시작한 것이란 해석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레임덕임을 단정하기엔 두 가지 점이 걸린다. 첫째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다. 최근 여론조사들의 추이를 보면 대체로 대통령 지지율이 40%대를 유지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다. 국정수행 부정평가 역시 줄어든 모양새다. 26일부터 진행하는 백신접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등의 요인이 있어서라는 해석이다. 

둘째는 신 수석 항명 논란과 속도조절론 모두 검찰개혁 이슈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와 검찰 간 갈등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극심했던 추-윤 갈등, 그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사실 일부 공무원들의 ‘항명 논란’은 정권 초부터 존재했다. 

조선일보는 최근 논란인 이슈들을 모아 제시하며 ‘레임덕’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 25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 25일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조선일보 사회면 ‘“법 어기면 처벌된다”며 반발…관료發 레임덕 징후 뚜렷’이란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로 접어들면서 최근 정책 주요 현안마다 당정 간 이견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법무부 등 3개 부처가 일제히 우려를 표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추진,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갈등한 4차 재난지원금 문제 등이 대표적”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들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 법적 문제로 사후 처벌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난색을 표하는 등 ‘레임덕’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며 “반면 민주당은 4월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임기 말 정책 추진은 당이 주도하겠다’며 군기 잡기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경제는 레임덕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신문은 사설 “여당 강경파가 文정권 레임덕을 재촉하고 있다”에서 “문 대통령이 검찰 인사 패싱 논란의 진상을 직접 해명하고 폭주 정치에 대해 사과해야 국정이 정상화될 수 있다”며 “강경파들에 휘둘려 법과 상식에서 벗어난 국정 운영을 계속한다면 레임덕은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추진하는 가덕도 신공항법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사설 “정부 부처 다 반대 가덕도法 文은 강행, 선거에 미친 정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가덕도를 정부 부처들이 반대하는 희한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이 선거용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들이 반대한다는 이유에서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중앙일보는 사설 “담당 부처도 반대한 가덕도 신공항법, 대통령이 막아야”에서 “여야가 지금이라도 멈춰 다시 생각하길 바라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작다”며 “관련 부처 대부분이 반대하거나 부정적이었던 만큼 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선거 때문에 추진하지만 여러 문제점이 있는 만큼 대통령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네이버가 25일부터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 서비스를 중단한다. 16년 만이다. 한겨레는 “네이버 ‘실검’ 폐지, 이제 언론이 답할 때다”란 사설에서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지난해 2월 실검 서비스를 폐지했다. 그동안 언론계에서는 실검이 저널리즘을 망치고 조회수 위주의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하는 공범이라고 비판해왔다. 

▲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논란의 역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논란의 역사. 디자인=이우림 기자

 

한겨레는 “사회적 이슈를 확산하고 여론을 조성하는 순기능이 사라지고 역기능만 남게 돼 정치적 목적이나 장삿속에서 의도적으로 관심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변질됐다”며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이 실검 상위에 오른 검색어를 이용해 제목만 다른 유사기사를 수십개에서 많게는 수백개씩 만들어 내는 ‘어뷰징’을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뉴스가 포털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한국 상황에서 이는 저널리즘의 신뢰를 추락시켰다”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네이버와 다음은 실검 폐지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검 못지않게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는 댓글 관리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포털 댓글이 근거 없는 비방과 욕설로 도배되고 있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진리(설리)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자 다음과 네이버는 연예, 스포츠 분야 댓글을 폐지했는데 정치와 사회 등 다른 분야 기사에 대한 댓글 관리도 한층 엄격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변화도 주문했다. 한겨레는 “어뷰징과 낚시성 제목 같은 꼼수가 아니라 이젠 기사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며 “실검 폐지가 국내 인터넷 생태계를 건강하게 바꾸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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