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15일자 1면 상단 기사는 11살 아이가 기자에게 건넨 말로 시작한다.

“기자 아저씨, 배가 너무 고파요.”

이태권 기자가 취재차 편의점에 갔다가 만난 형빈이 목소리다. 편의점에서 자기와 친구가 먹을 냉동 스파게티와 포장 햄버거를 사려고 서울시 아동급식카드를 내밀었다가 한도 초과가 나오자 머쓱한 표정을 짓던 아이다. 이틀 뒤 편집국 사무실 자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 대목에서 보도는 지난해 아동급식카드 이용 건수가 전년에 비해 5배 폭증했다는 데이터와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을 못 먹는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간식으로 배 채우는 장면을 함께 내놓는다.

같은 날 보도는 한 지역아동센터 현장을 속속들이 비춘다. 고혜지 기자가 ‘혜지쌤’으로 2주 일하며 취재했다. 센터에서 만난 아이들 8명을 가명과 일러스트로 소개했다. 어머니가 암에 걸린 민우는 코로나19로 집에서 지내며 정서 불안이 심해졌다. 어머니는 새벽에 출근, 아버지는 도박으로 집을 찾지 않는 12살 현서는 재택 중 디지털 중독 증세가 악화하고 있다. 먹는 걸 멈추지 못하는 유빈이는 코로나19로 바깥 생활이 어려워지며 한 달에 3kg 넘게 쪘다. 지역아동센터에 오지도 못하는 아이들은 더 열악한 처지다.

▲15일 서울신문 1면  ‘격차가 재난이다’ 보도
▲15일 서울신문 1면 ‘격차가 재난이다’ 보도

서울신문은 지난 15일부터 ‘격차가 재난이다’ 탐사기획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 취약계층 아동이 겪는 현실을 다룬 첫 꼭지 ‘성장이 멈춘 아이들’ 편은 기자들의 체험과 현장 취재, 통계로 꾸려졌다. 25일 ‘코로나 청년 잔혹사’ 편에서는 비정규직 또는 실업 상태에 놓인 청년들의 신용대출이 폭증한 현실과 스스로 죽음을 택한 청년 4명의 사례, 임차 자영업자 청·장년이 겪는 생계위협을 취재했다. 현재 노인 편을 남겨두고 있다.

안동환 탐사기획부장은 기획 의도를 소개하며 “코로나 재난은 우리 시야에서 예진이와 같은 아이들을 감춘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코로나는 끝나지 않는다”며 “코로나 이후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자산 양극화와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 기회는 부유층에, 위험은 하층민에 쌓이는 불평등한 재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허약한 사회안전망 틈에서 새로운 격차가 시작되고 있다”고 했다. 보도에 참여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원 5명 중 고혜지·이태권 기자를 23일 서울 프레스센터 인근에서 만났다.

[ 관련 기사 : 격차가 재난이다 / 서울신문 인터랙티브 ]

- 유소년 관련 보도로 지역아동센터와 꿈나무카드 사용 실태 두 가지에 집중했다. 이유가 있나?
고혜지·이태권=
코로나19 국면에 아동 복지와 관련해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보도는 많이 나왔다. 그 가운데 고소득이나 중산층 가정의 반대편에 놓인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 교육을 받는지에 집중했다. 지역아동센터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먹고 입는 ‘의식주’ 실태를 어떻게 파악할지 생각하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아동급식카드인 꿈나무 카드 사용 실태를 들여다보게 됐다.

- 기획 의도는?
고혜지= ‘세대’와 ‘격차’에 주목했다. 아이템 기획 단계에서부터 정해놓은 건 아니다. 부원이 관심 있는 주제를 취재하다보니 자연스레 의견이 모였다. 이태권 기자는 청년 쪽에, 나는 교육 쪽에 관심이 있었다. 송수연 기자도 아동이 코로나19 시기에 겪는 격차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코로나19 1년이 지난 시점에 이 주제를 깊게 다뤄보기로 의견이 모였다. 3주 정도 사전취재 기간을 거친 뒤 12월께 아이템을 확정해 1월 본격 취재에 들어갔다.

▲15일 서울신문 4·5면.
▲15일 서울신문 4·5면  ‘격차가 재난이다’ 보도

- 지역아동센터 취재는 어땠나?
고혜지= 아이들이 말을 첫날부터 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저도 편견 없이 볼 수 있기 바라서 2주 동안 적응기를 가졌다. 문제는 아이들이 코로나19에 대해 단답형으로 말한다는 거였다. “코로나 싫어요, 코로나 힘들어요, 학교 가고 싶어요” 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센터장과 복지사들에게 묻고, 가정방문도 했다. 지역아동센터는 의무로 출석해야 하는 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이 중간에 학원을 다녀오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집에 가 버리기도 한다. 학교가 문을 닫은 시기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교를 대신하는 공간으로 이곳에서 생활하는데, 배움을 강제할 수 없다보니 단순히 맡아 돌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 일일 선생님 체험하며 돌봄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복지도 생각했을 듯하다.
고혜지= 지역아동센터 복지사 처우는 기존에도 열악하다. 나라에선 최저임금만 주고, 호봉에서 부족분은 지자체가 지원하는 등 쪼개기 지원이 나간다. 제대로 아이 돌보기 힘든 환경이기도 하다. 내가 간 센터에 다니는 아동 총 37명 중 24명을 만났다. 복지사는 센터장 포함해서 3명뿐이었다. 공익요원은 4명이 있지만 밥을 떠먹여주는 등 간단한 일을 했다. 선생님은 “여유가 없어 화장실 앉을 때만 쉰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방역이 운에 맡겨져 있다’고 볼 만한 상황이다. 실제 한 복지사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게 신기하다고 했다. 아무리 식탁을 띄어 놓고 밥 먹고, 마스크를 쓰도록 하지만 방역 면에선 취약해 보였다. 내가 갔을 땐 수도가 동파돼 손을 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전반적 방역과 위생에 대한 지원이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 코로나19 국면 1년이 지나며 아이들이 배움 기회를 잃고 건강이나 정서발달이 악화하는 사례가 많다.
이태권= 아이가 편의점에서 꿈나무카드 잔액이 부족해 결제를 못하는 일이 있었다. 먹고 싶은 걸 고르면 사주겠다고 했더니 불닭발을 집더라. 딱 봐도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걸 찾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가 밥 사달라고 연락해왔을 땐 주변에 식당이 있냐고 물으니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어른의 돌봄과 관리가 필요한 존재이고, 꿈나무 카드만 쥐여주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맡기는 건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고혜지(오른쪽), 이태권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가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혜지(오른쪽), 이태권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가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실제 취재해보니 아동지원과 관련해 언론에 홍보된 내용과 동떨어진 부분도 있었나?
이태권= 꿈나무 카드를 쓰는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에 가서 밥을 먹지 못한다. 취재하며 처음 안 사실이다. 중복지원을 막자는 의도라고 한다. 실제 현장에선 아이들이 홀로 식사라고 보기 어려운 단 음식이나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사 먹는다. 부모님만 결제하도록 하면 아이의 꿈나무 카드로 커피만 몇 만원씩 사 가는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아이들을 위해 두 정책을 준비했다고 말하지만 행정 사각지대가 있다.

고혜지= 조희연 교육감이 어제 우리 기사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울시교육청은 기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섞은 ‘블렌디드 러닝’과 ‘쌍방향 교육’을 확대하겠다며 홍보 링크를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가 지적하는 건 온라인 교육이 아니다. 지성, 감성, 의지 등 전인교육이 이뤄지는 학교란 공간이 문을 닫으면서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이 배움이나 발달 기회를 잃고 있다. 더 이상 ‘방역 탓에 여유가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단계다. 교육당국이 학교를 다시 열거나, 교육이나 학습, 돌봄 문제를 어떻게 보장할지 대책을 내놨으면 좋겠다.

- 취재하면서 생각했던 대안이 있나. 
이태권= 노인층의 경우 도시락배달이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 아이들에게는 단지 꿈나무 카드만 쥐여주는 식으로 끝내려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도시락배달을 아동에게 적용하는 등 사소한 것을 하나하나 바꿔나갈 때에 탁상행정에 그치지 않고 정책 효과가 나지 않을까.

고혜지= 지역아동센터나 집안의 고립된 아이들을 보다 보니 학교를 여는 것이 최우선이 아닌가 생각했다. 있는 집 아이들은 보호자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방치된다. 정은경 청장 보고서에 나오든 아이들의 감염 비율은 높지 않다면 학교 내 전문가와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서울신문 ‘격차가 재난이다’ 인터랙티브 보도의 한 장면.
▲서울신문 ‘격차가 재난이다’ 인터랙티브 보도 갈무리

-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공을 들였다. 수익보다는 저널리즘 차원의 시도였나?
고혜지= 그렇다. 인터랙티브는 광고가 붙을 수 없는 페이지이다. 어떻게 독자들에게 우리 기사를 읽게 만들고 편리하게 접근하도록 할지 철저히 집중했다. 특히 탐사보도는 기사가 길어 인터넷 기사에 아무리 사진을 많이 넣어도 독자가 지겨워하는 경향이 있다. 좀더 공감을 얻기 위해 인터랙티브를 택했다.

- 인터랙티브 제작 과정은 어땠나?
고혜지=
사내 웹 관리를 맡는 제작부에서 설 연휴에도 야근하며 준비했다. 기사가 나갈 때까지 수정이 거듭되다보니 막바지까지 고생하셨다. 기사를 인터랙티브 틀 위에 올려놓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에 걸맞은 문체가 있어 지면용 기사를 두세 번 고쳐 쓰는 게 다반사였다. ‘블로그처럼 써달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기사 분량을 반으로 줄이고 아이들 처지를 말풍선 형태로 정리했다.

이태권=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면용과 웹페이지용 기사를 각각 따로 쓰기로 했다. 인터랙티브 결식아동 기사는 지면과 달리 구어체로 쓰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이 쓰고, 외신과 다른 자료를 붙였다. 인터렉티브도 하나의 기사이기에 일기 쓰듯 쓸 수 없다. 독자에게 강력하게 다가갈 만한 꼭 필요한 내용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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