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협회의 부수 조작 의혹을 조사 중인 문화체육관광부의 ‘결론’이 신문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조사가 종이신문의 유료부수 현실화를 넘어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20세기 ‘신문 권력’의 해체를 가리키는 사건이 될 수 있어서다. 

지난해 11월 “일간신문 공사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부수 조작’을 폭로한 ABC협회 내부 진정서가 문체부에 접수됐다. ABC협회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문체부는 지난달 조사단을 꾸려 전국 7개 지역 신문지국을 상대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정부가 신문 부수 문제를 정식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BC협회는 신문사 본사로부터 부수 결과를 보고받고, 20여 곳의 표본지국을 직접 조사해 본사가 주장하는 부수와의 성실률(격차)을 따져 부수를 인증하는 국내 유일 공사기구다. 그런데 2020년(2019년도분) 공사결과 조선일보가 95.94%의 유가율을 기록해 논란이 불거졌다. 100부를 발행하면 96부가 돈을 내고 보고 있다는 ‘현실 불가능한’ 지표였다. 조선일보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같은 해 한겨레 유가율도 93.73%였다.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ABC협회.
▲ABC협회.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문체부의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 모두 9곳의 조선일보 표본지국에서 보고 부수는 15만7730부, 실사 부수는 7만8541부로 평균 성실률 49.8%를 나타냈다. 지난해 ABC협회 공사에서 표본지국이었던 조선일보 ㄱ지국의 성실율은 98.07%, ㄴ지국의 성실율은 98.12%로 매우 높았지만 문체부 조사에서 드러난 ㄱ지국과 ㄴ지국 성실율은 각각 56%와 48%로 ABC협회 결과와 큰 차이를 보였다. 

이와 관련 한국언론진흥재단 ‘2019 전국 신문지국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한 심영섭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2020년부터 최근까지 20여 곳의 신문지국을 직접 인터뷰한 결과 조중동의 잔지(발송은 됐지만 풀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부수) 비율은 가장 보수적으로 봐도 36%(약 100만부 규모)였다”며 “만약 구독료를 100% 받는 곳만 유료부수로 판단하면 유가율이 30%로 떨어지는 일간지도 있다. 경제지는 10%대인 곳도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 현장조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기존 ABC협회 공사는 신문사 담당자들이 일종의 가짜 자료를 만들어 공사원에게 보여줬고, 우리는 확장일지·배포일지·수금내역 등 실제 자료를 봤다”고 설명했다. 앞서 ABC협회는 지난해 조선일보 유료부수가 116만2953부라고 발표했는데, 이번 성실율을 감안하면 실제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공표된 것의 절반 수준인 58만1476부로 추정해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체육관광부는 ABC협회 부수 공사결과가 허위 혹은 조작일 경우 ‘설립허가 취소’를 비롯해 ‘정책적 활용 중단’ 등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체부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의원의 관련 서면 질의에 “부수 공사 절차 전면개선 권고, 협회장에 대한 주의 조치 등에 협회가 불응 시 행정적 지원 중단 또는 부수 공사자료의 정책적 활용 중단, 정부광고법·지역신문법 등 개정”에 나설 수 있다고 답변했다. 정부 부처가 유료부수 공사결과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ABC협회는 사실상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문체부는 또한 “협회의 임직원이 부수 공사과정에 개입해 공사결과에 왜곡이 발생한 경우 문체부가 해당 임직원을 형사고발 또는 수사 의뢰할 수 있다”고 밝혔으며 “불법적인 공익침해상태를 제거하고 정당한 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긴요하게 요청되는 경우 설립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ABC협회에서 정확한 부수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취소까지 고려한다는 대목이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ABC협회의 유료 지표에 따라 언론사마다 광고단가나 신문우송료 지원금이 산정되는데, 만일 이를 속여서 다른 언론사보다 광고단가를 비싸게 받았거나, 지원금을 더 수령했다면 이는 사기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광고단가 자료에 따르면 중앙지의 경우 2020년 발표 유료부수 60만 부 이상 언론사가 A군, 20만 부 이하~5만 부 이상은 B군에 포함되는데, 국내에선 조선·중앙·동아일보가 A군에 해당한다. 

▲조선·중앙·동아일보.
▲조선·중앙·동아일보. 디자인=이우림. 

조선일보는 지난해 782건의 정부 광고를 통해 76억1600여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동아일보는 95억1500여만원(869건), 중앙일보는 83억2000여만원(881건)의 수입을 올렸다. 문체부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를 인용한다면 조중동 모두 A군이 아닌 B군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국회에서 이 사안이 진지하게 논의될 경우 향후 조중동뿐만 아니라 종이신문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 광고단가 변화도 예상된다. 종이신문의 끝없는 하향세 속에서 이번 사건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신문 권력’ 해체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해 보인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ABC협회 정상화를 위해선 신문사 판매국장 중심의 이사회를 바꿔야 한다. 현재 구조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부수 인증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지금 ABC협회는 엄밀히 말해 제3자 인증이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유료부수가 아닌 유통 부수(도달률) 개념으로 접근하고 신문사들은 유가율을 깨끗하게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문체부에 진정서를 내고 내부의 부수 공사 문제를 폭로한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은 지난 1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성준 ABC협회장이 신문사 민원을 받고 담당 공사원을 질책하며 결과를 수정하게 하는 등 협회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무국장은 내부 폭로 이후 대기발령을 받은 뒤 지난달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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