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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만의 경제 매뉴얼] ‘내돈내쓴’이 아니라 ‘그돈니돈’이냐는 물음이 필요하다
[홍석만의 경제 매뉴얼] ‘내돈내쓴’이 아니라 ‘그돈니돈’이냐는 물음이 필요하다
자선 자본주의의 민낯

지난 2월8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10조원에 달하는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18일에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의장도 5억달러(약 5500억원) 이상을 기부하겠다며 부자들의 기부 클럽으로 알려진 미국의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가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언론은 척박한 한국의 기부 환경 속에서 부자들의 기부행렬이 문화로 자리잡히길 기원하며, 기존 재벌과는 다른 벤처 재벌의 통 큰 기부 행위에 대해 찬양하기에 바빴다.

[관련기사 : 연합뉴스) 자수성가 창업주 잇단 대규모 기부… ‘富 대물림’ 재벌과 다르다 (2021년 2월18일)]
[관련기사 : 조선비즈) 김범수 5조·김봉진 5500억원 기부하는데… 시총 20대 기업은 매년 감소 (2021년 2월20일)]

그러나, 5조원 기부 의사를 밝히기 전에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최근 두 자녀를 포함한 친인척에게 1400억원대 주식을 증여했다. 게다가 김 의장의 두 자녀가 사실상 카카오의 지주회사로 알려진 비상장회사 케이큐브홀딩스에 취업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큐브홀딩스는 카카오의 2대 주주이자 김 의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곳으로, 두 자녀에 대한 지분 증여가 승계작업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김범수 의장의 기부가 기존 재벌의 부의 대물림과 다르다는 기사와 달리 경영권 승계와도 연결될 수 있다.

[관련기사 : 한겨레) 김범수 아들·딸, 케이큐브홀딩스 근무 중… 승계작업 앞둔 ‘경영수업’? (2021년 1월25일)]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자선자본주의, 대기업 중심의 자본주의적 해법 모색

통상 기업의 기부나 사회책임(CSR)에 대해 기업 활동의 결함에 대한 사회적 보충의 일환으로 사고 되기도 하지만 일종의 ‘사회적 세탁’으로 보거나, 기업 산하 재단설립으로 주식 상속을 우회해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보아왔다. 대표적으로 삼성문화재단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대물림의 주요 수단이었다. 또한 최근 초과이윤 분배 문제로 논란이 벌어진 SK그룹의 ‘사회적 가치경영’도 일종의 양심세탁이거나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투자 확대를 위한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사고 된다.

[관련기사 : 미디어오늘) SK그룹 성과급 논란과 사회적 가치의 허상 (2021년 2월14일)]

김범수, 김봉진 의장의 기부와 같이 미국의 벤처 재벌의 기부에 대해서 ‘자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라는 논란이 일었다. 앞서 기업의 일반적인 기부나 사회적 책임경영과는 다르게 재벌이 통 크게 개인 재산의 거의 전부 또는 절반 이상을 기부하면서도 기업 시스템과 유사한 효율성에 기반해 목적의식적으로 기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부인이 세운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비영리 재단이나 자선 단체를 설립하지 않고 유한책임회사(LLC)를 만들어 기부하겠다고 했을 때 ‘자선자본주의’에 대한 논란은 최고조에 달했다. 저커버그는 2015년 말 딸 출산을 기념해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챈-저커버그 이니셔티브(Chan Zuckerberg Initiative)’라는 유한책임회사(LLC)를 만들어 자신의 회사 지분 99%를 기부했다.

저커버그는 자선 사업에도 ‘효율’과 ‘경영’이 필요하다며 LLC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영리기관보다 일반 회사에 기부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우리의 사명을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LLC는 투자 활동을 할 수 있고 정치 논쟁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이익을 창출해 자선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세금 회피용(Zero Tax)’이 아니냐는 댓글에 대해선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키지 말라”고 댓글로 저격하기도 했다.

오늘날 벤처 자선 또는 자선자본주의로 알려진 자선 활동은 단순히 기업 활동의 문제와 결함에 대한 보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문제 된 영역에서의 해법이 자신의 기업과 동일한 시스템의 철학적 전환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사회문제의 자본주의적 해법과 기업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다. 이들은 이를 조건으로 기부를 하며, 피해자나 국민이 문제해결의 주체가 아니라 기업이 주체가 되는 해결 방식을 찾으며 기업 이윤창출 시스템의 효율성과 지배구조에 결합한다.

자선자본주의와 코로나 백신

자선자본주의의 가장 최근 사례로 코로나19 백신 개발과 보급 과정을 들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빌 게이츠와 게이츠 재단이 한 핵심적 역할 중 하나가 초국적 제약회사의 위상을 격상시켜 팬데믹 해결 주체로 세운 점이다.(세계 보건의료 운동영역에서는 이 문제에서 빌 게이츠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기 전에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전 세계 질병 및 바이러스 백신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별로 수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18개 미국 최대 제약 회사 중 15개가 이 분야를 완전히 포기했다. 이들 제약회사는 병원 감염, 응급 질병 및 전통적인 열대성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아니라 혈압약, 중독성 진통제, 남성 발기 부전 치료제 같은 것으로 수익을 벌어들였다. 인플루엔자에 대한 보편적인 백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개발 가능성이 있었지만, 개발 우선순위가 될 만큼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면역 효과가 50%밖에 되지 않는 독감 백신을 이제까지 쓰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제약사들은 태도를 바꾸었다. 팬데믹을 종식하려면 140억회 분량의 백신이 필요하고 각국 정부가 모두 나서서 어떻게든 이 백신을 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정부 또는 공공연구소들과 손잡고 백신개발에 나섰다. 그런데, 여기서 빌 게이츠와 게이츠 재단은 서구의 초국적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의 주체가 될 뿐만 아니라 백신의 독점적 권리를 갖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한다.

빌 게이츠는 옥스퍼드대를 상대로 세계에서 가장 진전됐던 연구 중 하나인 코로나19 백신 플랫폼을 대형제약회사에 넘겨주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 결과 탄생한 아스트라제네카와의 파트너십은 옥스퍼드대의 플랫폼을 완전히 바꿔 놨다. 옥스퍼드대의 백신 배포 모델은 모든 제조업체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개 라이선스 플랫폼에서 아스트라제네카가 관리하는 독점 라이선스로 바뀐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옥스퍼드는 감염병혁신연합(CEPI)으로부터 백신 개발을 위한 4천억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받았는데, 이 단체의 창립자이자 가장 큰 지원자가 게이츠 재단이기 때문에 빌 게이츠가 그런 압력을 가할 힘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게이츠 재단은 각종 프로젝트로 옥스퍼드대에 직접 수억 달러를 직접 줬는데,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던 옥스퍼드대의 제너 연구소도 기부금을 받았다.

백신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효과적 배분을 위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감염병혁신연합(CEPI), 세계보건기구(WHO)를 공동 주관기구로 하는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형성했다. 코로나 대응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백신 분배 기구에 UN 산하 국제기구인 WHO와 동급으로 민간기구인 GAVI와 CEPI가 참여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는 2000년에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파트너로 수립된 민-관 협력 기관이며, 감염병혁신연합(CEPI)는 2017년 게이츠 재단 등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설립됐고 게이츠 재단이 창립자다. 다시 말하면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는 세계보건기구(WHO)보다 빌 게이츠의 영향력이 더 컸다.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는 나라별 백신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효과적인 배분을 한다며 ‘입도선매’ 방식으로 각국 정부가 선구매 자금을 제약회사에 제공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애초에 코백스 퍼실리티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개별국가와 입도선매 방식으로 똑같이 자금을 받았다. 각국 정부가 백신 개발에 투자했으면 백신의 특허권을 정부가 갖거나 최소한 공동으로 보유해도 되는데, 입도선매로 자금을 댔기 때문에 투자가 아니라 개발된 백신을 구매할 권리를 확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즉, 투자 자금이 아니라, 거래 대금을 미리 지불한 것이다.

[관련기사 : 참세상) 코로나 백신, ‘공공개발’ 했지만 분배는 불평등 (2020년 12월5일)]

결국 코백스 퍼실리티와 입도선매 방식은 전체 인구 20%에 대한 백신 제공을 대가로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 국가와 공공기관의 기술적 지원 아래 백신 개발에 뒤처졌던 초국적 제약자본을 앞세우며 자본의 이윤과 지식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국제적으로 팬데믹을 종식하기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이렇게 코로나19 백신은 서방의 주요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정부 자금과 공공기관과의 기술적 협력 속에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지만, 백신의 지적재산권은 사회화되지 못하고 대부분 제약회사에 넘어가게 됐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게이츠 재단은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제약회사 감시기구인 ‘부코 파머 캠페인(BUKO Pharma-Kampagne)’의 외르크 샤버는 게이츠 재단의 글로벌 보건 담당자를 포함해 수많은 간부가 제약업계 출신이라며, 게이츠 재단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라이선스 독점 쪽으로 가게 할 경우 재단 측이 지금까지의 ‘기부’를 통해 이익을 보게 된다고 지적한다. 인도에 기반을 둔 제3세계네트워크의 법률고문 고파쿠마르에 따르면 “산업을 규제하는 방식이나 의약품 및 백신의 생산 및 배포 방식을 바꿀 경우 제약회사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물론 게이츠 재단의 투자 수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게이츠 재단이 현상 유지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빌 게이츠의 발언 어디에도 자기 재단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제약회사에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는 없다. 게이츠 재단은 현재의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세부 정보를 밝히기를 거부했다.

[관련기사 : 민중의소리) 코로나19 : 가난한 자들이 아플 때 빌 게이츠는 더욱 부자가 된다 (2020년 10월27일)]

▲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 로이터/연합뉴스
▲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 로이터/연합뉴스

자선자본주의, 기존 불평등 구조는 무시

이처럼 자선자본주의는 세계의 문제에 대한 시장 기반, 대기업 기반의 해결책에 대한 깊은 이념적, 이데올로기적인 헌신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이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경영방식, 기술, 가치 체계를 세계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제3자 주도로 자금을 대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자선자본가들은 세상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을 만들고(자금을 대고) 관리한다. 이것은 기부라기보다 투자하는 것이고 자선자본가들은 이 투자에 대한 수익률도 충분히 기대하고 있다.

자선자본주의는 많은 비판을 불러왔는데,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우려 외에도 애당초 문제를 일으킨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에 의문이 제기됐다. 또한 현재의 '자선산업단지'는 초 부자에게 '양심세탁'을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의 <엘리트 독식 사회 -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들의 열망과 위선>에서 자선자본주의자들이 “세계의 부와 권력을 독점한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문제와 싸우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통해 재단이 불공정한 경제의 증상에 대처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쓰면서도 부자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과 정책에는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평화와 인권, 보건과 생태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어떤 정부도 해내지 못한 가난과 빈곤의 해결사를 자임한다. 세상이 바뀔 가능성이 쉽게 보이지 않으니, 이들의 부와 권력이 유지되어야 그나마 세상이 아름다워질 거라는 환상은 널리 퍼져나간다. 그렇지만 바뀌는 건 하나도 없고 그들의 재산만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도 사회·인권운동가이자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에서 재단·문화사업·연구소·장학사업 등 대기업이 펼치는 각종 ‘선행’이 신자유주의 민영화에 기여하고 풀뿌리 운동에 침투해 어떻게 물을 흐리는지 비판한다. 록펠러·카네기·포드재단이 후원하는 외교협회는 ‘전 지구적 기업 지배’ 전략을 짜는 기관과 다름없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념적 지지대로서 세계화의 첨병 구실을 한다. 인도의 대기업들은 록펠러나 카네기재단의 ‘자선사업’을 배워 병원을 지어주고, 예술을 지원하며 야만적 탐욕을 가린다. 기업출연재단들은 사회과학·예술 부문의 자금줄로서 각종 강좌와 장학금을 미끼로 인도와 제3세계 엘리트들을 유혹해 친기업 성향으로 만들어 간다.

소리 없는 ‘글로벌 쿠데타’

방대한 자본과 네트워킹 능력을 갖추고, 자선자본가들은 종종 그들이 선택한 문제들에 대해 정책 결정에서 특출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정부들과 국제기관들은 이들의 ‘정책 참여’를 수용했다. 이에 따른 ‘거버넌스(민관협력)’는 자금 투입뿐만 아니라 국가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웃소싱 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자선자본가들은 일반 국민이나 심지어 자산들의 기부자들에게조차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국가나 공공기관과는 달리 어떤 사회적 견제, 감시, 통제, 조정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사후적인 책임도 지지 않았다. 앞서 봤듯이 국가 간 연합체인 세계보건기구(WHO)와 동렬 또는 우위에 서서 민간 자선단체인 게이츠 재단이 주도하는 민관협력기구들이 전염병 예방, 치료, 백신 개발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결정력을 행사해 왔다.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국가 차원의 규제 완화가 확대됐고 그 속에서 기업의 역할과 비중이 증대되었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유엔의 글로벌 컴팩트(UN Global Compact)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글로벌 컴팩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관장하는 국제사무소이지만 국제적, 국가적 사업에 각국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을 참여 주체로 격상시킨 역할을 했다. 부분적으로는 세계기구에서 각국 정부의 이탈이 발생하면서 재정이 악화한 측면이 있고, 세계 시장이 금융화된 상황에서 국가별 재정지원이나 차관보다도 민간 금융을 끌어와야 했기 때문에 글로벌 컴팩트는 더 절실했다. 이를 통해 초국적 자본의 후원을 받는 세계적인 규모의 민간기관, 세계 독점자본가들의 연례 협의체인 다보스 포럼, 게이츠 재단과 같이 재벌들이 만든 재단과 거대 투자은행 등 민간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기관들이 각국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참여 주체로서 올라설 수 있었다.

무역협정에서 악명높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ISDS)가 가능하게 된 이유도 기업이 주권기관과 동렬의 주체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자에 대해 국가가 투자협정상 의무를 위반하여 투자자가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의 국내법원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직접 국제기관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해당 국가의 영토와 주권행사 지역 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국가 주권의 우위성이 부정당하고 해외 투자자인 초국적 자본 또는 기업이 해당 국가의 주권기관과 같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해진 제도다.

이처럼 초국적 기업과 이 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재단 등 민간기관들, 또 이 재단의 후원을 받는 시민단체와 연구소들도 각국의 주권기관과 같은 위치로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실질적 주체로 부상해 국가를 대신해 국제기구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에 통합되기 시작했다. 이는 아무런 권한도, 책임도, 통제도 받지 않는 초국적 기업 또는 초 부자인 재벌이 각국의 주권 영역을 침범하고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글로벌 수준에서 벌어지는 ‘쿠데타’ 또는 ‘국정농단’이다.

▲ 2016년 5월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총장 취임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초대 총장으로 선임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비전 및 운영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016년 5월2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총장 취임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초대 총장으로 선임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비전 및 운영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부가 아니라 사회적 환수를

보도에 따르면 5조원 이상 기부한다고 밝힌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통상 기업인들이 기부금을 기탁하는 자선단체를 통한 기부는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특히 사회문제 해결 주체자로서 카카오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는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 기업일 수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다고 한다. 전형적인 자선자본주의 방식의 기부다.

재벌기업의 연합체인 전국경제인연합 등은 국가의 경제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익단체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김범수 의장 등 한국사회의 자선자본가들이 만들어 내는 기업주도, 기업적 효율성으로 빚어낸 사회문제 해결 기구는 단순한 이익단체 이상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선자본주의 이전에, 1년 사이에 재산이 5천억에서 1조원으로 두 배가 늘고, 몇 년 사이에 어떤 개인이 10조원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들의 재산은 독점기업의 독점이윤이며, 금융시장에서 유동성 장세의 폭발로 얻은 초과이윤의 일부일 뿐이다. 2000년대 이후 기술 플랫폼 자본들은 플랫폼 이용자들의 자발적 정보 제공을 기반으로 광고 수입을 독점하며 떼돈을 벌어들였고, 플랫폼에 들어온 중소영세 상인들을 쥐어짜고, 적은 수의 직접 고용 노동자에 비해 다수의 간접고용, 특수고용 형태의 플랫폼 노동자를 양산하면서 중간착취 형태로 수익을 벌어들였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는 사람들의 대면접촉이 제한되고 금지되면서 온라인 언택트의 활성화라는 ‘외부경제’ 효과로 독점적 이윤을 수취했고, 정부와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로 유동성이 폭발한 주식시장에서 재산을 불렸다.

그 때문에 이들의 부와 재산 형성 및 기부는 ‘선행’ 문제가 아니라 SK그룹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과 같이 초과이윤, 독점이윤에 대한 사회적 환수와 분배 문제와 닿아 있다. 이들의 기부에 대해 ‘내돈내쓴(내 돈 내가 쓴다)’이 아니라 ‘그돈니돈(그 돈이 네 돈?)’이냐는 물음을 던져야 할 때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기부가 아니라, 더구나 대기업 중심의 기업 효율성 및 이윤 창출 메커니즘을 사회문제 해결 과정에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 등 공적 방법으로 사회가 환수하고 사회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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