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물류센터 집단감염과 산업재해 사망 등 쿠팡 노동실태를 보도해온 언론에 잇달아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나섰다. 무리한 주장으로 기사 삭제를 요구하거나 기자 개인을 상대로 제소해, 언론계에선 입막음 성격이 짙다고 지적한다. 쿠팡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 책임의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1일 쿠팡이 대전MBC 기자를 상대로 낸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심리가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렸다. 대전MBC는 충남 천안의 쿠팡 목천물류센터 식당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고 박현경씨가 근무 중 심근경색으로 숨진 사건을 첫 보도했다. 쿠팡은 리포트를 보도한 MBC나 대전MBC가 아닌 김아무개 기자 개인에만 소송을 걸었다.

쿠팡은 이달 초엔 일요신문과 소속 기자를 상대로 기사 삭제와 억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지난 1월엔 프레시안에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을 신정해 기사 삭제를 요구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 방침을 전했다. 쿠팡은 대전MBC 기자와 일요신문을 상대로는 기사 정정이나 반론 게재를 요구하는 언론중재위 조정을 시도하지 않은 채 소송으로 직행했다. 한겨레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해 기사 삭제를 요구했고, 한겨레는 기사 일부 대목을 수정하거나 반론을 추가로 실었다. 

▲쿠팡물류센터. 사진=노컷뉴스
▲쿠팡물류센터. 사진=노컷뉴스

쿠팡의 대응은 방역이나 산재 사고·사망 등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측 대응 태도를 고발해온 언론에 집중됐다. 일요신문은 지난달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가 쿠팡에 핫팩 하나만을 지급 받고 일한 사실을 비롯해 쿠팡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방역 문제를 보도해왔다. 프레시안은 지난해 12월 ‘쿠팡 뉴스룸 검증’ 기획 보도로 쿠팡이 자사 홈페이지에서 펼쳐온 방역과 산재 사망 등 관련 주장을 검증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11월18일 쿠팡 마장물류센터에서 쿠팡풀필먼트와 계약한 화동하이테크에 속해 일하던 컨베이어 벨트 정비노동자가 하루 14시간 넘게 일해오다 심근경색으로 추정되는 요인으로 숨진 사건을 보도했다.

쿠팡의 문제 제기엔 부적절하거나 무리한 주장도 다수 포함됐다. 일례로 프레시안은 쿠팡 측이 각 노동자의 UPH(Units Per hour·시간당 처리 물량)를 실시간 관리하며 직접적으로 업무 압박하고 심한 경우 관리자가 막말을 한다는 복수의 노동자 증언을 전했다. MBC와 한국일보, 노컷뉴스 등 다른 언론이 널리 보도한 내용이다. 

쿠팡은 여기에 “UPH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최 기자는 “압박 자체가 노동환경의 불이익인데 쿠팡이 평가항목으로 쓰지 않는다며 문제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UPH가 재계약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면 그 근거 자료를 제시하고 토론하면 되는데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쿠팡이 기사 삭제를 요구한 프레시안 기획기사 일부
▲쿠팡이 기사 삭제를 요구한 프레시안 기획기사 일부. 프레시안 홈페이지 캡쳐

쿠팡은 또 프레시안이 쿠팡의 방역수칙 미준수가 부천물류센터 집단감염을 불렀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질병관리청 입장을 들어 부인했다. 그러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쿠팡 측 입장에 대해 “인천 확진자가 직업에 대해 지연해(뒤늦게) 말해 역학조사가 늦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방역수칙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아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환경이었고, 휴게실이나 식당의 거리두기나 이런 것들이 미흡해 이런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고 있다”고 반박 격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쿠팡은 일요신문 기사 가운데 동탄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최아무개씨가 쿠팡 지시로 핫팩을 한 개만 착용하고 일했다는 첫 보도나 쿠팡 측이 인천6물류센터 내 두 번째 직원의 확진 사실은 알리면서도 세 번째 확진 판정 사실은 공지하지 않았다는 기사 등에도 삭제를 요구했다. 

박현광 일요신문 기자는 “가장 어이없는 건 보건소 직원에게 확인한 사실을 바탕으로 쓴 기사에 쿠팡의 반론을 반영했는데도 삭제를 요구한 것”이라며 “밀접접촉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집단감염을 막으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인데, 쿠팡은 ‘이미 폐쇄했기에 전 직원에 알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쿠팡이 제소한 일요신문 기사 캡쳐.
▲쿠팡이 제소한 일요신문 보도 캡쳐.

쿠팡은 대전MBC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김 기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해당 사건이 원고들의 책임 범위 내에서 발생한 것 같은 강한 인상을 각인시켰다”고 주장했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청 사업주가 지배하는 장소라면 원청에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대전MBC는 보도에서 고 박현경씨가 쿠팡 물류센터 직원식당 위탁업체 동원홈푸드의 재하청 아림인테크 소속임을 밝히기도 했다.

언론계와 노동·시민단체는 쿠팡이 취재에 제대로 응하지 않다 기사가 나오자 소송에 나서는 언론 대응을 비판한다. 일요신문 기자에 따르면 쿠팡 홍보실 직원들은 해당 기자의 전화 수신을 차단해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 박현광 기자는 “메일로 반론을 요구하거나 질문을 보내면 답을 안 줄 때가 대부분이고, 주는 경우에도 동문서답이거나 원론적 답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반론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그럼에도 반론을 반영하려 노력했는데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소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쿠팡은 자사 ‘뉴스룸’ 홈페이지를 차려 자사 입장을 밝히는 한편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는 이메일을 보내도록 한 뒤 선택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최용락 프레시안 기자는 “이메일을 통해 돌아오는 답변이 기존 뉴스룸에서 밝힌 입장을 원론적으로 반복하는 내용이 많아 제대로 된 반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정이나 반론을 통해 기사에 자사 입장을 밝히기 위한 절차라기보다 언론 재갈 물리기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쿠팡이 설립한 뉴스룸 웹페이지 게시판
▲쿠팡이 설립한 뉴스룸 웹페이지 게시판

대전MBC 기자를 대리하는 이종오 변호사도 “보도 일부에 착오가 있더라도, 언론중재위나 정정을 요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자 개인을 상대로 손배를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쿠팡 측이 문제 삼은 대전MBC 보도 가운데 하나인 지난해 7월8일자 “[단독] 쿠팡서 숨진 조리사…혼합세제에서 ‘유독물질’”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분석 결과를 근거로 “독성물질인 ‘클로로포름’이 29.911 마이크로그램, 국내 허용치의 3배에 달하는 양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다음날인 9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해명자료를 통해 “세 가지 세척제를 혼합·희석해 분석한 결과 클로로폼 29.911마이크로그램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현장의 공기를 채취해 분석한 게 아니라 실험실 환경에서 만들어낸 결과”라고 밝혔다.

기자들은 쿠팡의 대응이 보도를 위축시킨다고 했다. 최 기자는 “나만 해도 쿠팡 측의 주장에 반박문을 쓰고 소송에 대응할 때 스트레스와 심적 부담을 느낀다. 다른 기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박 기자는 “쿠팡 소송은 사실을 바로잡고자 하는 뜻보다는 ‘힘들어 봐라’란 의도로밖에 비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변호사도 “쿠팡 측 제소 이후 기자가 위축감을 느껴 후속취재와 보도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장은 “쿠팡의 산재와 방역 문제야말로 언론의 자유가 필요한 영역이다. 약자 입장과 진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거대자본 또는 권력을 상대로 언론자유가 크게 보장돼야 한다”며 “거대기업은 자문받고 언론에 대응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는데, 자사를 비판하는 언론사를 상대로 줄소송에 나서는 것은 재갈 물리기 형태의 갑질이자 소권 남용이라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및 사망 노동자 유가족들이 ‘쿠팡 규탄 및 유가족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해온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집에서 숨졌다. A씨는 업무강도가 가장 높은 곳에서 근무했고 코로나19 이후 물량이 늘었음에도 인력충원이 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대책위는 과로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0월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및 사망 노동자 유가족들이 ‘쿠팡 규탄 및 유가족 면담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오전 경북 칠곡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근무해온 일용직 노동자 A씨가 집에서 숨졌다. A씨는 업무강도가 가장 높은 곳에서 근무했고 코로나19 이후 물량이 늘었음에도 인력충원이 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대책위는 과로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 연합뉴스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조혜연 김용균재단 상임활동가는 “현재 쿠팡은 산재 피해·사망 노동자와 유족에게 대화를 거부해 노동자들이 소송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쿠팡은 방역 미비로 직원이 코로나19에 걸린 뒤 남편까지 감염돼 의식불명에 빠진 상황에도 그가 ‘고발인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코로나 국면에서 쿠팡은 엄청난 이익과 주가를 올리고 노동자들은 그만큼 급격하게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피해자들에게 도의적 수준으로도 다가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자사를 비판하는 보도에는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쿠팡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명백해 보인다”고 했다.

쿠팡대책위는 22일 성명을 내고 “2020년 한해 매출액이 13조 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렇게 매출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혹독한 노동 결과물이라는 것은 산업재해로 드러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쿠팡과 쿠팡풀필먼트에서 지난 2019년 515건의 산재가 승인됐고 지난해엔 2배에 가까운 982건이 승인됐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1년 새 사람이 5명이나 죽는 동안에도 노동자 고통을 외면하고 책임을 방기하더니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피해 실태를 가감 없이 보도한 언론사에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쿠팡이라는 기업의 기업 윤리이며 경영 방침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대책위는 “언론 틀어막기를 중단하고 산재를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고 밝혔다.

쿠팡 측은 이 같은 언론 대응 이유에 “소송 중인 사안과 관련해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관계과 언론 보도 위축 우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도 “같은 맥락에서 답할 수 없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