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보도국장은 2019년 11월 취임하며 ‘출입처 개혁’을 목표로 밝혀 화제였다. 당시 엄 국장은 KBS 내부 게시망에 보도국 운영계획을 알리며 “반드시 필요한 영역과 역할을 제외하고 출입처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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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저널리즘 질 향상을 위해 출입처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언론사 내외부에서 나온다. 출입처 개혁을 외쳤던 KBS 상황은 어떨까. 

KBS ‘출입처 개혁’ 선언 직후 터진 코로나19 상황으로 개혁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된 평이다. 다만 출입처 없이 정치 취재를 하는 ‘의정팀’ 신설과 다양한 전문가 집단과 협업을 한 프로젝트 등 성과는 있었다. 

▲KBS.
▲KBS.

지난 18일 KBS 통합뉴스룸 내 스터디가 열리고 출입처 개혁 논의가 화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날 스터디 발제는 출입처 혁신 관련 연구를 했던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전 한겨레 기자)가 맡았다. 여전히 ‘출입처 개혁’ 불씨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출입처 개혁 대안으로 전문가 협업 취재망 구축 시도  

KBS는 2019년 말 출입처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를 무렵 대안 시스템 중 하나로 ‘전문가협업취재망 구축’을 꼽았다. 출입처 중심의 정보와 관점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와 전문가 그룹 목소리와 관점을 뉴스에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엄경철 통합뉴스룸 국장은 이사회를 상대로 2020년 예산설명회에서 이 구상을 밝히고 관련 예산을 5억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지난해 초부터 본격 추진하려 했으나 그해 1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모든 취재력이 코로나19 취재에 집중됐다. 여러 KBS의 기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해 개혁이 제대로 시작되지 못했다”고 공통적으로 말하는 이유다. 

지난해 5~6월에는 부서별로 전문가 협업 취재가 진행됐다. 7월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일하다 죽지 않게’ 시리즈를 협업 취재했다. 산업재해와 관련한 시리즈로, 중대 산재 8057건을 분석한 취재가 대표적이다. 이 시리즈는 언론인권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외 탄소 중립 의제에 ‘그린피스’와 협업 취재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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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하다 죽지 않게' 연속 보도.
▲KBS '일하다 죽지 않게' 연속 보도.

지난해 5월 정치부에 의정팀을 신설해 법안과 정책 중심 취재에 집중하기도 했다. 정치부 기획팀을 중심으로 진행한 ‘국회 감시 프로젝트 K’ 등도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취재였다. 국회 감시 프로젝트 K는 국회의 연구용역 보고서를 분석해 꼼수와 편법을 밝혔고 각 의원실이 용역비 반납을 약속해 총 2000여만원의 세금을 회수하기도 했다. 

KBS 통합뉴스룸 관계자는 “2021년에도 전문가 협업 취재가 다수 있었다. 과학적 접근을 통한 백신 취재, 임금 체불 보고서 관련 취재가 대표적”이라며 “이런 취재 관행 변화가 한 축이라면 뉴스 편집에도 변화가 있다. 9시뉴스 변화다. 중요 의제를 심층 취재한 결과물을 적극 반영하는 패턴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 변화를 통해 출입처 등에서의 단순 정보로 1꼭지를 만드는 관행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또 신설된 이용자 관여팀에서 KBS 뉴스에 대한 시민 태도를 분석해 매일 브리핑하며 뉴스룸에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수찬 교수와 출입처 제도 스터디…“대안 찾으려”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 속에 엄 국장이 선언한 ‘출입처 개혁’은 KBS 통합뉴스룸 내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KBS의 A 기자는 “코로나라는 외부 변수가 너무 강해 엄 국장의 출입처 개혁이 제대로 시행되진 못했다고 본다”며 “의정팀이나 전문가 협업 프로젝트가 있긴 했지만 외부에서 볼 때 정말 출입처 ‘개혁’이라고 볼 만한 변화라고 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A 기자는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외부 변수도 있지만 출입처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구성원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라며 “개인적으로는 공영방송이라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시행착오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먼저 바꿔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출입처 ‘개혁’과 출입처 ‘폐지’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입처 기자를 줄이는 결정에 다른 의견을 가진 기자도 있다. 기자단이 가지는 특권은 문제지만 이는 출입처 제도와 구별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KBS 기자)은 1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연 ‘정부, 언론과 바람직한 관계를 찾다’라는 토론회에서 “출입처와 기자단 제도는 구분해야 한다. 출입 기자단은 소속이 다른 기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정보에 효율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방식”이라며 “다만 문제가 되는 건 기자단이 출입처로부터 특혜를 받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 회장은 “합리적 취재 환경 조성을 위해 기자단에 특혜를 없애는 건 당연하지만 모든 매체에 기자실을 개방하면 공정한 취재 기회 보장으로 이어질까. 상당 부분 그렇지 않다”며 “특혜가 없다는 걸 전제로, 기자단을 유지하거나 해체하는 건 기자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기자단은 취재 대상이 자신에 불리한 취재를 방해하거나 거짓으로 응대할 경우 단체로 대응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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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 언론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찾다’를 주제로 서울 공관에서 35차 목요대화를 열었다. 사진=KTV 생중계 갈무리.
▲18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부, 언론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찾다’를 주제로 서울 공관에서 35차 목요대화를 열었다. 사진=KTV 생중계 갈무리.

KBS 기자들 사이에서는 타 언론사들이 출입처를 그대로 두는 상황에서 KBS만 ‘개혁’ 명분으로 출입처에서 빠져 나올 경우 취재만 뒤처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KBS의 B 기자는 “출입처 개혁 시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다. 당장 출입처에서 나오게 되면 기자들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또 뉴스 질이 떨어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출입처 폐지는 기자 삶 자체 개혁하는 일”

출입처 제도 이견을 좁히고 논의를 모으기 위해 지난 18일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와 KBS 기자들이 스터디를 진행했다. 

B 기자는 “이날 스터디에서 안 교수가 지금까지 출입처 제도에 관해 연구한 부분을 공유했다. 이에 기자들이 화상으로 논의를 펼쳤다”며 “출입처 기자들을 줄인다고 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관행이 혁파될 것이다. 구체적 대안을 고민하려 했고, 앞으로도 스터디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KBS의 C 기자는 “출입처 폐지는 기자 삶 자체를 개혁하는 일이다. 귀찮고 빡빡하더라도 먼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시청자 선택을 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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