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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무색해져버린 을지로위원회와 약자와의동행위
이름 무색해져버린 을지로위원회와 약자와의동행위
조선일보 “을지로위 연대활동 집권의 기반돼”, ‘반문’만 외치는 야권 비판…을지로위 여당되자 개혁성 잃어

‘서민과 약자를 위한 정치’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다. 역설적으로 평소 정치권은 그다지 서민과 약자를 챙기지 않는 쪽에 가깝다. 

민중 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난 고 백기완 선생 영결식이 열린 지난 19일 조선일보는 “‘反文’만으로 정권 못 잡는다”란 칼럼에서 야권정치인들을 비판했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서민과 약자를 끌어안아야 하는데 야권 정치인들이 ‘반문재인’에만 골몰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칼럼에선 2017년 대선 패배 이후 제1야당과 2012년 대선 패배 후 민주당을 비교했다. 

조선일보는 “우리사회 을(乙)들을 위해 일하겠다며 만든 을지로위원회는 ‘민주당은 서민과 약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직관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며 “을지로위원회만큼은 두 차례 비대위를 거치면서도 사회 각계와 연대하는 활동을 이어갔고, 집권의 기반이 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2017년 대선 패배 이후 제1야당은 당명만 2차례 변경했지만 국민의 신뢰와 호감을 얻지 못했다”며 “알맹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투표권 확대, 인종차별 철폐, 보험과 연금의 도입 등 진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혁신의 주역이 대체로 유럽과 미국의 보수정권”이라며 국민의힘에게 “탈진영적 어젠다”를 주문했다. 

▲ 19일자 조선일보 칼럼
▲ 19일자 조선일보 칼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든 ‘약자와의 동행위원회’가 과거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보다 못하다는 평가다. 

비슷한 주문은 지난해 11월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의 조선일보 인터뷰에도 등장했다. 지 원장은 “서민들에게 조금만 참으면 ‘다 같이 잘사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했던 약속 못 지키지 않았나”라며 “약자와의 동행을 보수가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런 면에서 ‘경제민주화’를 앞세우는 김종인 위원장 시도에 공감한다”고 했다.

‘약자와의 동행’을 슬로건으로 내건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9일 미혼모(비혼모)·한부모 복지시설 애란원에 방문해 “정상적 엄마가 많지 않다”고 발언해 비판을 받았다. 이날 일정은 국민의힘 ‘약자와의 동행위’ 차원의 방문이었다. 누가 이런 위원회가 약자와 동행할 거라고 기대할까. 

김 위원장 개인의 감수성 문제로 보긴 힘들다. ‘공정경제 3법’에 대한 당내 반발에 지난해 9월22일 한겨레 경제부장은 ‘경제민주화의 추억’에서 “굳이 경제민주화 조항을 부활시켜 놓고 다시 재벌의 편에 기우는 모습을 보면 당내에 새 정강정책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이번에도 실질적 변화없이 ‘혁신’의 이미지만 누리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지난해 11월15일 “‘약자와의 동행’ 외친 김종인, ‘메아리’ 없는 국민의힘 의원들”에서는 같은당 윤희숙 의원의 ‘노동시간 주52시간 유예’ 발언, 택배노동자 보호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무관심 등을 놓고 ‘약자와의 동행’ 기조가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약자와의 동행’에 맞는 입법 활동이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다수의 예상처럼 제1야당이 약자들 옆자리에 서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약자와 함께하겠다”고 한 말만 공중에 떠다니는 상황이다.

▲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 회의모습(위)과 2016년 2월 총선 전 을지로위원회  사진=국민의힘, 을지로위원회
▲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 회의모습(위)과 2016년 2월 총선 전 을지로위원회 손팻말  사진=국민의힘, 을지로위원회

 

조선일보의 지적처럼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사회 각계 연대 활동을 이어갔다. 노동·시민사회계에서는 ‘명백한 반노동권력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정권 때가 낫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나마 옆에 있을 야당’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그 야당이 과거 정권 당시엔 을지로위원회였다. 

2016년 발간한 을지로위원회 백서를 보면 2013년 출범한 을지로위원회는 1000일간 연인원 총 2120명의 소속의원이 각종 활동에 참여했다. 126회의 현장방문, 62건의 당사자간 합의 등 960회의 활동으로 을들 문제에 적극 나섰다. 비정규직 투쟁현장에 을지로위원회가 있었고, 진보정당보다 힘도, 진정성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집권의 기반이 됐다”는 조선일보 분석이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여당의 을지로위원회는 빠르게 관심을 잃어갔다. 현 정부 경제민주화 1호 공약인 ‘범정부 을지로위원회’ 신설 계획은 1년간 끌다가 폐기했고, 지난 2019년 하반기 톨게이트 노동자 투쟁 국면에서 을지로위원회는 민낯을 드러냈다. 

‘요금수납업무를 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한국도로공사(도공)가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을지로위원회는 사측의 요구를 담아 조정안이라며 내밀었다. 여당 제안에 당연히 노동자들의 내분이 벌어졌다. 도공 측보다 더 교묘한 ‘노동자 갈라치기’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해 10월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자 이곳에 방문한 을지로위원회 인사들이 바로 옆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의 농성장을 외면하는 장면이 ‘을도 취사선택한다’는 비판과 함께 전해졌다. 

민주당 사람이었던 도공 사장이나 이스타항공 창업주를 의식했을까. 이제 여당이 돼서 비정규직 옆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을까. 한때 당내에서 홀대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을’의 옆자리를 자처하던 을지로위원회마저 변했다. 지난 연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처리 과정에서 누더기로 만든 국회의 모습에서 ‘을’들은 다시 한번 여당의 변신을 목격했다.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고 백기완 선생의 빈소. 사진=민중의소리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고 백기완 선생의 빈소  사진=민중의소리

 

2021년 2월15일 눈을 감은 고 백기완 선생이 나흘 뒤 전태일 열사 옆에 잠들었다.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은 ‘백기완이 없는 거리에서’에서 “노무현 정권 시절 그야말로 재야가 사라지고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아 ‘철없는’ 투쟁을 할 때(중략)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었다고 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추모기고에서 “함석헌, 장준하, 문익환, 계훈제, 백기완으로 이어지는 ‘재야어른’들 중 마지막”이라며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서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고 썼다. 

‘재야’라는 말이 생소해진지 오래다. 약자와의 연대는 선거에서 패한 정당의 다음 선거운동 정도로 전락했다. 간혹 함께하는 이들도 대부분 그날의 경험을 발판삼아 출세하려는 권력자들이다. 거리의 민중들이 더 외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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