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왜 한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했을까.’ 쿠팡의 뉴욕 증시 상장 추진 소식에 다수 언론은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선 ‘차등의결권’이 미국엔 있고 한국엔 없기 때문이라는 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는 근거가 취약하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언론 보도는 공세적이었고, 동시에 단정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사설 “쿠팡이 국내 아닌 美 증시로 가는 이유를 생각해보라”를 통해 “(미국은) 창업자가 지분 2%만 있어도 58%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 확실한 경영권 방어 수단을 준 것이다. 반면 국내 상법은 이런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는 기명 칼럼에서  “쿠팡이 고민 끝에 뉴욕 증시로 방향을 튼 것은 차등의결권 때문”이라며 쿠팡의 이번 상장 추진을 “뉴욕 증시로 탈출”이라고 표현했다.

‘차등의결권’에 주목한 언론은 정부에 비판과 경고를 이어갔다. 조선일보는 “기업 활동과 경영권을 제약하는 규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유망 기업들이 한국 증시를 떠나 해외 상장하는 사례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쿠팡의 뉴욕行 부른 ‘차등의결권’, 국내선 왜 안 되나”(한국경제)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대책 즉각 만들어라”(서울경제) “뉴욕으로 간 쿠팡, 차등의결권이 갈랐다”(파이낸셜뉴스) 등 경제 신문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차등의결권’ 도입을 요구했다.

▲ 쿠팡 자료 사진.  사진=쿠팡 제공.
▲ 쿠팡 자료 사진. 사진=쿠팡 제공.

‘차등의결권’은 표현 그대로 주식 의결권에 ‘차등’을 두는 제도다. 1주당 1의결권을 갖는 기본 구조를 벗어나 1주를 갖고도 보다 많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한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주당 29표를 갖는 차등의결권을 부여한다고 신고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쿠팡은 단 한번도 차등의결권을 위해 미국에 상장했다고 밝힌 적 없다. 이는 오로지 언론이 현상을 해석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이 해석은 적절했을까.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쿠팡이 한국과 미국 중 한 곳을 선택하려는 상황이었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우선, 이번에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은 한국 회사가 아니다. 상장 추진의 주체는 국내 기업 쿠팡이 아닌 미국 회사인 CoupangLLC(쿠팡유한회사)라는 미국 회사다. 한국의 쿠팡은 미국의 모기업이 국내 지분을 100% 소유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김범석 의장의 국적 역시 미국이다.

미국 기업이 미국에 상장한 것을 두고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전한 사안처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와 관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논평을 내고 언론 보도를 ‘대국민 호도’라고 지적한 뒤 “미국 쿠팡 유한회사의 상장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데뷔할 선수가 국내 리그에서 뛰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고 빗댔다.

기업의 ‘국적’ 여부를 떠나 차등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미 증시 상장을 추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볼만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로 쿠팡이 미국 진출을 위해 설계된 회사라는 정황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 쿠팡 미 증시 상장 소식을 차등의결권과 연결지은 언론 사설.
▲ 쿠팡 미 증시 상장 소식을 차등의결권과 연결지은 언론 사설.

박상인 교수는 “처음부터 미국에 상장할 계획을 갖고 회사 구조를 만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모회사는 주로 국내가 아닌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모았다. 미 델라웨어 주에 본사를 마련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투자자와 분쟁시 기업에 유리한 제도를 갖추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이 곳에 페이퍼컴퍼니처럼 본사를 차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스닥에 하느냐 뉴욕증권거래소에 하느냐는 선택이 있었을 뿐이다. 코스피는 선택지에 없었다”고 했다. 

김범석 의장 본인이 미국 상장 추진을 일찌감치 밝혀오기도 했다. 금융투자 등을 다루는 ‘돈테크무비’ 페이스북 채널은 2011년 쿠팡 설립 1년 기자간담회 기사를 공유하며 ‘기승전 차등의결권’을 강조한 언론에 반박했다. 당시 김범석 의장은 “2년 내 나스닥에 직접 상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상장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언론의 지적은 ‘팩트’가 틀린 것이다.

실제 초기 투자자인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차등의결권) 그것 때문에 어떤 증시에 상장하는 결정은 하지 않는다”며 “(차등의결권이) 도움 되는 이유는 될 수 있지만 많은 중국 회사들 또 다른 외국회사들이 미국 시장에 상장하는 이유는 가장 다양한 그리고 똑똑한 기관투자가들을 만날 수 있고 또 투자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언론이 ‘결정타’라고 보기 힘든 차등의결권에 ‘과몰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수언론의 ‘차등의결권’ 도입 요구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재벌 대기업’이 ‘차등의결권’ 도입을 원한다는 점이다.

▲ 쿠팡물류센터. 사진=노컷뉴스.
▲ 쿠팡물류센터. 사진=노컷뉴스.

‘차등의결권’은 지분에 비해 많은 의결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려는 한국 재벌 대기업에게 매력적인 제도다.

차등의결권의 남용 가능성은 일찌감치 제기돼왔다. 2015년 11월10일 ‘의결권 시장 선진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김순석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차등의결권 도입’ 입장을 내면서도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순환출자나 재벌의 소유구조상 문제로 인한 의사결정 왜곡 등 문제에 있어 한국과 같지 않다”며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박상인 교수는 “차등의결권은 ‘소유’와 ‘통제’의 괴리를 만드는 것인데 한국은 차등의결권이 없어도 미국보다 평균적으로 소유지배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이 괴리를 더욱 키울 수 있다”며 “한국 재벌 체제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보수정권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인데 단순 논리로 재벌 숙원 사업을 들어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현재 국회에는 벤처 기업에 한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한번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면 대기업까지 확대 적용될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는 성명을 통해 “처음에는 여러 가지 규제를 두고 제한된 범위에서 도입한다 해도 일단 도입되면 되돌릴 수 없으며, 규제 완화와 적용범위의 확대를 두고 추가 개정 시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국회 스스로 1주 1의결권 원칙을 허물게 되면 재계의 추가 개정 요구에 반대할 명분조자 변변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경제언론이 쿠팡 이슈 통해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향은 이 뿐이 아니다. 세계일보는 “쿠팡의 미국행.. 혁신 막힌 기업의 ‘탈한국’ 전조 아닌가” 사설에서 “‘기업규제 3법’ 등으로 기업에 족쇄를 채우더니 연초엔 기업·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집단소송제법, 징벌적 손해배상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안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기업이 싫어하는’ 제도 전반을 쿠팡 미 증시 상장 소식에 연결지었다. 쿠팡은 ‘사안의 본질’이라기보단 ‘지렛대’로 쓰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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