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판 ´쫄병´, 수습기자

군대에서 고참이 있고 신병 이른바 ´쫄병´이 있는 것처럼 기자 사회에서도 갓 입사한 기자들을 부르는 다양한 말들이 있습니다. 선배들은 이들을 "야! 신참" "수습"이라고 호칭하죠. 2차 이산가족 상봉단 취재를 하면서 몇몇 언론사 수습기자를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대는 변했어도 수습생활은 역시 변하지 않았더군요.

한 석간신문 기자는 밤12시 넘어서 퇴근해서 새벽 6시경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또 다른 조간신문 수습기자는 출근은 이보다 조금 늦지만 퇴근시간은 비슷했습니다. 이 기자는 집에서 기다리는 분(?)이 있어서 12시 넘어서도 퇴근을 하지만 동기들은 경찰서를 자취방 삼아 생활을 한다고 말해주더군요.

취재경험이 많은 선배들은 ´영양가´가 없는 취재임을 직감하고 수습기자들을 보낸 것 같았습니다. 고참 기자가 될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탓입니다. 발품만 팔고 취재거리는 나오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교육 삼아 수습을 보낸 것이죠. 이 때가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으니, 선배들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수습이 남북측 인사들의 근사한 만찬장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취재를 하고 있는 사이에...

기자사회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기에 특별난 얘깃거리도 아니겠지만, 언론사에서 신참 기자들은 선배들의 잔심부름에서부터 궂은 취재를 도맡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요. 수습딱지를 떼고 자신의 출입처를 배정 받아도 언론사의 위계질서는 여전합니다.

쓰레기통 뒤지는 기자들

법조기자, 특히 검찰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잔바리´라고 불리는 기자들이 있습니다. 수습은 아니지만 서울지검이나 대검 기자실에서 가장 연조가 어린 기자들을 이렇게 부르는 거죠. ´하리꼬미´를 설명하면서 잠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법조팀은 언론사에서 노동강도가 가장 높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기사거리만 있다 하면 어디든지 무슨 일이든지 하는 거죠. 지금까지 ´은어´ 연재에서 거론했던 다종다기한 취재방법이 모두 동원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법조팀 생활을 오래한 선배들은 모두 ´잔바리´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쓰레기통 뒤지기입니다. 지금은 검사실의 파쇄기가 워낙 성능이 좋아서 별 소득이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허점은 있게 마련 아닙니까. 예를 들어 선배들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대검에서 묘한 냄새를 맡았다면 ´잔바리´들은 여지없이 ´쓰레기통 뒤지기´에 들어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어느 부서에서 나온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무조건 쓰레기통만 뒤진다고 기사거리가 나오겠습니까. 거기엔 별의별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겠죠. 응가 닦은 것, 코푼 것, 담배꽁초, 파쇄한 서류 등등. 하지만 더욱 재미있는 것은 기자들 사이에서는 쓰레기 쟁탈전까지 벌인다는 사실입니다.

기자들의 이런 취재관행을 익히 아는 쓰레기장 담당 직원은 쓰레기 분실을 철저히 막는다고 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거저 가져가도 시원치 않을 쓰레기 분실을 막는 자와 서로 빼앗으려하고 하는 자와의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는 거죠. 참 기자생활도 못해먹을 짓입니다.

그런데 쓰레기 쟁탈전에서 승리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에서 쓰레기를 풀어보겠습니까. 집에 가져갈 것도 아니고. 그래서 잔바리들에게 가장 애용되는 공간이 바로 자신의 차안입니다. 희미한 실내등에 의존해 차의 뒷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쓰레기를 뒤지는 기자. 가관이겠죠.

냄새나는 쓰레기와 몇 시간 사투를 벌인 끝에 중요한 단서가 담긴 서류를 찾아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무 소득이 없을 때 기자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조금 엽기적으로 말한다면 구슬을 삼킨 아이의 응가를 뒤지던 엄마가 끝내 그 속에서 구슬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걱정, 불안, 초조감과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잔바리´ 생활도 잠시, 어느새 선배의 위치에 오르고 나면 다른 후배에게 또 ´쓰레기 뒤지기´를 시킨답니다. 이것도 엽기죠. 이런 취재관행이 만들어진 이유는 물론 특종경쟁이겠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선배들이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수습과 잔바리, 기자교육

법조기자 생활을 오래한 기자들에게 ´잔바리´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궂은 일을 하는 신참기자를 부르는 말"이라는 답변밖에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의 본래 뜻과 만들어진 기원은 모르는 것이죠.

어쩔 수 없죠. 저의 든든한 고문이신 교열기자협회 민기 선배님에게 해석을 부탁드렸습니다. ´잔바리´에서 ´바리´는 ´쪽바리´에서의 ´바리´와 비슷할 거라고 하더군요. 쪽바리의 ´바리´는 한문 족(足)의 일본식 표현이랍니다. 쪽은 ´쪽을 가르다´는 의미구요. 지금의 샌들처럼 일본의 게다가 다섯 개의 발가락을 두 쪽으로 나눈다는 의미에서 쪽·바리가 만들어진 단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잔´은 무슨 뜻일까요. ´잔심부름´의 ´잔´이 소소한 일상의 일을 의미하는 것처럼 ´잔바´의 ´잔´은 걸음을 잘게 걷는 것을 말한다는 해석입니다. 즉 ´잔바리´는 "시중을 들기 위해 뛰어다니는 기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기 선배님의 해석에 따르면 ´잔바리´는 궂은 일을 하는 신참기자를 ´비하´하는 말이 되겠죠. 법조기자 생활과 말의 해석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아주 훌륭한 해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습기자와 ´잔바리´, 그리고 언론사의 기자 교육시스템. 이 세 가지를 생각해 볼 때 조금은 씁쓸함도 느낍니다. 취재 시스템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하는 회의인 거죠. 전문기자제, 기자 재교육 등 언론사들은 툭하면 기자재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곤 하지만, 실천이 잘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언론계에서 기자들의 취재관행 개선과 교육시스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더욱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