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에게 "우리 벽치기 하러 가자"고 한다면 어떤 장면을 떠올리시겠습니까. 혹시…. 당황, 황당, 무안함 혹은 분노가 치미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하. 그렇지만 너무 성급하게 감정을 드러내시면 안됩니다. 기자사회의 벽치기는 전혀 다른 뜻이니까요. 다만 이런 비속어 ´벽치기´가 나온 이유는 비슷합니다. 벽에다 대고 무언가 한다는 뜻이니 말입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저는 약간의 흥분과 설램, 마치 애로영화 보는 느낌으로 벽치기의 의미를 쫓았습니다. 하지만 한글사전을 보는 순간, 실망감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한글사전에는 ´벽치다´의 의미를 "욋가지를 얽고 그 위에 이긴 흙을 발라서 벽을 만든다"(동아 새국어 사전)라고 설명합니다. 저보다 손위세대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오래된 초가집의 벽이 기운다거나 조금씩 허물어지게 되면 ´벽치기´ 공사를 합니다. 초가집의 기운 벽을 헐고 다시 얼기설기 그물처럼 골격을 세우고 벽치기용 흙을 바르는 공정입니다. 벽치기용 흙은 콘크리트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자갈을 놓는 것처럼 흙에 볏짚을 썰어서 넣곤 했습니다.

그러나 기자사회의 벽치기 취재는 벽이라는 소재는 같지만 그 뜻은 전혀 다릅니다. 기자사회에서 벽치기 취재는 정당팀과 법조팀에서 주로 합니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민주당 윤철상 사무부총장의 발언´은 문화·조선·연합뉴스 기자가 벽치기 취재를 통해서 얻어낸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총회가 열리는 장소 바로 옆방에 위치한 기자실에서 열린 문틈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엿들은 것이죠. 법조팀의 경우도 중요한 인사를 취조하는 방을 밖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얘기를 듣고 기사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기자사회에서는 이런 취재관행은 보편적입니다. 의원총회 장소 문틈에 발을 끼워놓고 보이지 않게 문 뒤에 일렬로 늘어선 기자들. 어깨를 한껏 젖힌 의원들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중급기자가 대화 내용을 맨 처음 받아 적으면 바통 터치하듯 늘어선 기자들이 연이어 따라 적는 거죠. 이 정도는 약과입니다.

정당의 비밀스런 총무회담 장소를 미리 입수하고 회담장 테이블 밑에 들어가서 취재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멀쩡한 마루를 뜯고 그 밑에 들어가서 들은 정치인의 말을 기사로 써서 특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0년 전, 살인·방화 등 사건사고 기사가 신문의 1면을 주로 장식하던 시절에 사회부는 훨씬 더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사독재 정권에서 무슨 정치활동이 있었겠습니까. 사회부는 살인사건이 터졌다 하면 해당지역에 특별수사본부로 급파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기자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했겠죠.

수사본부에서 나오는 쓰레기통을 뒤지는가 하면, 파출소와 담 사이의 1미터 채 안 되는 공간에서 하루종일 수사본부의 형사들이 나누는 대화내용을 듣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담벼락 사이에 끼어서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발은 저리고 화장실은 가야겠고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그 고생이 말도 못했겠죠.

취재가 이렇게 되다 보니 오보도 많았다고 합니다. 수사본부에서 소문을 듣고 보고용으로 작성하던 문건을 입수해 기정사실화 해 살인범을 뒤바꾸는가 하면 사건을 오히려 미궁 속으로 빠지게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민들과 정권·언론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 망정이지 지금 같았으면 큰 일이 났겠죠. 그러나 기자들은 오히려 당당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 책임을 ´경찰수사 왜 이러나´ ´수사 갈팡질팡´ 등의 기사로 경찰에 넘겨버리는 것이죠. 기자들의 꼬인 심사가 죄없는 경찰을 때려잡는 데 사용된 거죠.

기자들의 이런 취재관행은 특종욕 때문이기도 하지만, 밀실정치의 영향이 더 커 보입니다. 정치권 등이 쉬∼쉬하면서 국민들을 속이기를 밥먹듯 한다면 이런 취재관행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잠깐. 벽치기란 말은 기자사회 일부에서만 쓰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눈치 주면 의례 그러는 줄 알았던 거지 벽치기 하러 가자는 말은 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혹시 제가 이 말을 유포시키는 역할을 할까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은어보다는 기자들의 취재 이면을 중심으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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