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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19)] 빨대
[언론계 은어(19)] 빨대

요즘처럼 더운 여름철에 가장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는 청량음료입니다. 저마다의 취향은 달라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한 뒤나, 외출을 하고 돌아와서 마시는 음료수 맛은 일품이죠. 싸한 느낌이 가슴을 통해 전해오면,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갑자기 더위가 사라지는 느낌이죠.

한때 이쑤시개가 산림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몰린 적이 있습니다. 고작 바늘크기 만한 이쑤시개를 만들기 위해서 몇 십년된 아름드리 나무를 마구 베어내자, 요즘은 아예 녹말로 만든 것을 사용하죠. 하지만 아직은 그 수효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여름철 음료수를 마실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빨대´입니다. 빨대도 이쑤시개와 마찬가지로 한해 국내에서 소비되는 개수를 어림잡는다면 수천만 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자사회에서도 ´빨대´라는 말을 씁니다. 기자들이 새로운 출입처를 배분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일컬어 ´빨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도 언론사에 입사했을 때,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멍하니 선배들의 얼굴만 바라보기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기자생활을 ´글쓰는 직업´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이 말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기사를 쓰는 시간은 12시간에 가까운 근무시간 중 겨우 한두 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사람장사´를 해야만 합니다.

특종기사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는 격으로 취재를 해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평상시 취재원들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쌓아야만 가능합니다. 특히, 취재원 중 밀월관계라고 표현할 만한 사람, 중요한 정보를 잘 흘려주는 사람을 기자사회에서는 ´빨대´라고 부릅니다. 기자사회는 기자에게 호의적인 취재원을 왜 빨대라고 부를까요. 출입처와 관련된 정보가 우유팩에 들어있다고 가정합시다. 기자는 이 우유(기삿거리)를 마시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빨대가 필요하겠죠.

여러분들 대부분은 시중에 판매되는 사각형의 방수팩에 든 살균우유를 샀다가 빨대가 없어서 고생하신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이럴 경우 ´빨대´를 꽂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은박 부분을 뾰족한 기구를 이용해 구멍을 내거나, 성질급한 분들은 접착 부분을 이빨로 뜯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하지요. 기자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대가 없으면 그만큼 취재가 어렵고, 출입처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죠. 기자들은 이런 기자사회의 특성을 음료수와 ´빨대´의 관계로 비유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생각해 보세요. 한 출입처에서 이른바 특별한 빨대를 만들기가 어디 말처럼 쉽겠습니까.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입처를 배정 받았을 때 기자들 사이에서는 ´빨리 빨대 하나 만들어야지´ ´빨대를 꽂아야지´라고 말한답니다.

이때부터 각 사 기자들은 빨대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출입처 직원들이 아무도 모르도록 하면서 말이죠.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어쩌다 소개로 만난 사람이 자신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빨대로 착각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취재를 하기 위해서 접근하다가 역으로 취재를 당하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들보다 선수인 취재원에게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오히려 가진 것을 몽땅 털리고 팬티 바람으로 나오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기자가 빨대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기자는 취재원이 접하기 어려운 정보를 이용해서 취재원을 유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상황도 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사람은 좋지만 겁이 많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말문을 트지 않는 취재원을 두고 ´빨대가 신통치않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빨대는 빨대지만, 부러지기 쉽거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너무 강해 기자를 이용하려고 드는 취재원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경험이 부족한 기자들은 정작 빨아야 할 곳은 못 빨고 엉뚱한 곳을 빨다가 마는 실수를 종종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정작 얻어야 할 정보는 못 얻고 시간만 허비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간장 통에 빨대를 꼽고서 콜라가 나오길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죠. 하지만 기자가 빨대를 만들고도 공력이 부족해서 기사가 안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취재원이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자동펌프 돌아가듯 한번에 ´쫘∼악´ 빨아야지 여러번 부실하게 빨아버리면, 취재원의 신뢰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아까운 취재원만 날리는 거죠.

신문을 유심히 보는 분들은 알겠지만, 특종기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자기만의 빨대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싶습니다. 이런 취재원은 편집국장 할아버지가 와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자들은 출입처를 떠나도 후임기자를 물먹여 기자의 자손심에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기자사회에서 취재원을 ´빨대´로 비하하는 것은 바람직한 언어사용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신문을 보면서 빨대라는 말에 얽힌 기자사회의 고충과 해학,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취재 뒷이야기를 상상한다면 기사읽는 재미를 두배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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