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5일자 1면 빌 게이츠 인터뷰가 ‘엠바고 파기’ 논란에 휘말렸다. 엠바고는 취재원과 기자가 보도 시점을 특정 시일로 미루기로 한 약속을 뜻한다. 국내 언론사 요청을 받아 중간에서 빌 게이츠 인터뷰에 다리를 놨던 출판사 ‘김영사’가 조선일보에 엠바고 파기를 항의하면서다. 김영사는 16일 출간한 빌 게이츠의 새 책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국내 출판을 맡았다.

조선일보 기자는 빌 게이츠 측이 직접 정한 엠바고를 준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빌 게이츠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화상 인터뷰로 진행됐다. 게이츠와 한⋅중⋅일 등 아시아 지역 6국 기자 11명이 참여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5일자 지면에 게이츠 인터뷰를 실었다. 두 매체 보도 제목은 각각 “빌게이츠 ‘한국, 탄소 제로 하려면 원전 필요하다’”(조선), “신재생 에너지 ‘기적’ 있기 전까지 온난화 억제 위해 원전 늘려야”(중앙)로 빌 게이츠가 원전 필요성을 피력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3면에 서평도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엠바고 파기’를 주장하는 김영사 측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게이츠의 신간 출판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언론사들은 김영사에 저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영사는 에이전시를 통해 미국 출판사 크놉(Knopf)으로부터 “아시아 기자들을 대상으로 1월29일 60분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며 김영사에서 2명의 한국 기자를 추천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단, 인터뷰는 뉴욕 시간으로 2월15일 오전 8시30분 전에 온오프라인에 게재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었다.

▲ 조선일보 15일자 1면.
▲ 조선일보 15일자 1면.

7개 언론사가 김영사에 게이츠 인터뷰를 요구한 상황에서 가장 요청이 빨랐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인터뷰 참여 매체로 결정됐다.

김영사 설명에 따르면, 김영사는 두 매체에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온라인 인터뷰에 참여하되 통상 출판 관련 기사가 나가는 시점 주말, 즉 20일 토요일 0시에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는 데 동의하는 매체에 인터뷰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 통상 주요 일간지들은 책 소개와 서평 기사를 주말판 출판면에 싣는다. 김영사는 두 매체가 이 조건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영사는 16일 전 세계 동시 출판에 맞춰 설 연휴 전인 지난 10일 게이츠의 신간을 언론사 52곳에 미리 보냈다. 단 서평 기사 엠바고는 15일 0시 이후였다. 김영사 설명을 종합하면, 김영사가 내건 신간 서평 기사의 엠바고는 15일 0시 이후였고 조선·중앙일보의 게이츠 인터뷰 기사 엠바고는 이보다 5일 늦은 20일 0시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두 매체 입장에선 타사 서평 보도가 쏟아질 때 게이츠 인터뷰 기사는 노출할 수 없는 상황인 것. 반면 김영사 입장에선 기존 약속과 달리 15일 오전 두 매체가 지면과 온라인에 인터뷰 기사를 출고한 건 약속 위반, 즉 엠바고 파기와 다르지 않다. 김영사는 15일 오후 조선일보에 항의 의견을 전달했다. 김영사 측은 중앙일보는 출판사와 약속을 지키려 했으나 조선일보가 이를 파기해 별 수 없이 뒤따라갔다고 보고 있다. 두 매체의 게이츠 인터뷰 보도로 김영사는 타 언론사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 중앙일보 15일자 2면.
▲ 중앙일보 15일자 2면.

조선일보는 ‘엠바고를 파기한 적 없다’는 입장이다. 양지호 조선일보 기자는 16일 통화에서 “책과 인터뷰 모두에 대한 빌 게이츠의 공식 엠바고는 15일 오전 10시30분이었다”며 “김영사가 (서평 기사의 경우) 15일 0시부터 보도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면 김영사는 빌 게이츠 엠바고를 먼저 깨뜨린 셈”이라고 반박했다.

양 기자는 “인터뷰는 김영사가 잡은 것이 아니다. 인터뷰는 빌 게이츠가 잡은 것이고 김영사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연락처를 그쪽에 전해준 것”이라며 “우리는 ‘게이츠 벤처스’(Gates Ventures)와 소통했다. 그쪽으로부터 인터뷰 전에 전달받은 메일에 따르면, 책과 인터뷰 보도 엠바고는 15일 오전 10시30분이었다. 게이츠가 정한 엠바고”라고 설명했다. 게이츠 측과 직접 소통해 잡은 엠바고를 준수했기 때문에 보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조선일보의 빌 게이츠 보도가 지나치게 원전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사 측은 “책에서 원전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데 그 부분만 집중 확대해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김영사는 16일 미디어오늘에 보낸 입장과 설명 자료에서 담당 편집자 의견을 인용해 “빌 게이츠는 깨끗한 전기를 얻기 위한 여러 혁신을 꼽는다. 그 가운데 하나로 원자력발전이 제시된다”며 “원전 이외에 해상풍력, 지열, 배터리 등 다양한 길을 설명한다. 저자가 원자력발전을 통한 무탄소 전기 생산을 지지하지만 깨끗한 전기 생산 방법이 원전만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조선일보의 해당 기사는 이 책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저자의 연구와 비전을 담은 책이 아니라 원전 홍보 책으로 여긴 것으로 오해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양 기자는 이 역시 반박했다. 그는 중앙일보의 빌 게이츠 인터뷰 보도도 원전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게이츠 책을 읽어보면 (조선일보 보도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면서 김영사 측 주장을 반박했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 등에서도 알 수 있듯 빌 게이츠는 지구온난화에 맞서 미래형 원전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안전한 원자로 개발을 통한 전력공급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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