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서 처음 한국사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트랜스젠더는 성정체성과 다른 성별의 주민등록번호로 일상과 구직에 제약을 겪는다. 그러나 절대 다수(86%)가 법적 성별정정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성기수술을 강요하는 법원, 정작 트랜지션 의료 접근성은 떨어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 등 벽이 높다. 일부 법원의 진전된 판단은 여전히 소수, 그나마 곳곳의 후퇴가 감지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박한희 변호사를 만나 인권침해 없는 성별정정을 위한 과제들을 들었다. 로스쿨 재학 중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밝힌 박 변호사는 2017년부터 희망법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 희망법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처음 변호사가 됐을 때 언론과 많은 인터뷰를 했다. 한 인터뷰에선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여전히 ‘1’인 신분증을 공개했는데.

“국내에서 성별정정을 하려면 외과수술, 성기수술을 거쳐야 한다. 그 수술을 받을 생각이 없다. 굳이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제 삶이나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 없다보니. 그런데 제 신체조건 상 성별정정 신청을 하면 당연히 기각될 거고, 필요하다면 대법원까지 올라가 다투는 방법도 있겠지만 시기라는 게 있지 않나. 성별정정 기준을 바꾼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변호사. 사진=희망법
▲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변호사. 사진=희망법

- 일부 진전된 부분도 있다. 2017년 성기 수술 없는 성별정정이 인정된 사례도 있지 않았나.

“대부분 1심 법원의 판결들이다. 1심 판결을 법원들이 모두 따를 의무는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거의 모든 법원이 외부 성기수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수술을 하려면 돈과 시간이 들지 않나. 가령 20대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자립해 성별정정을 다짐해도 수술비를 1000만원, 2000만원 모아야 한다. 보험도 적용 안 된다. 그 시간들이 공백으로 돌아와 허무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있다. 몇 년을 바쳤는데 출발점에 다시 선 거다. 예를 들어 작년에 변희수 하사나 숙명여대 입학생 사건으로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성별정체성이 아닌 ‘생물학적으로는 xy’라는 식으로 본다.”

- 성별정정을 위해 부모동의서를 요구했던 예규는 개정됐는데, 긍정적 변화로 이어졌나.

“2019년 인천가정법원이 성별정정을 할 때 부모동의서가 필요 없다고 판단했고, 대법원이 ‘부모동의서가 필수’라는 예규를 삭제했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확고한 구속력이 있지 않다. 각 법원이 가이드라인을 참조는 하겠지만 자의적으로 절차를 강화하고 있다. 부모동의서 역시 지금도 계속 요구하는 곳이 있다. 그간 나온 판결들이 다 1심이었다. 이런 요구가 위법한 상황도 아니다. 인권운동 진영에서는 이와 관련한 법률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법원과 판사의 개별 판사에만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성별정정을 처음 허가한 건 2006년. 15년이 흘렀지만 성별정정에 관한 법적 근거는 없다. 당시 제정된 예규가 인권침해 논란 속에도 일부 개정만 거치며 남아있을 뿐이다. 관련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은 성별정정 요건으로 혼인 중이 아니고 자녀가 없는 성인이어야 하며 정신과 진단, 생식능력 영구 상실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2006년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별법안’의 폐기를 끝으로 입법 시도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중 ‘법적 성별 정정 및 시도 경험’ 조사 결과. 그래픽=안혜나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중 ‘법적 성별 정정 및 시도 경험’ 조사 결과. 그래픽=안혜나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중 ‘법적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 조사 결과. 그래픽=안혜나 기자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중 ‘법적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은 이유’ 조사 결과. 그래픽=안혜나 기자

-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까.

“일단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야 지렛대가 될 것 같다. 차별금지법을 지난해 6월에 정의당이 발의하고 인권위가 입법의견(평등법)을 표명했다. 최근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평등법을 발의하겠다고 한 상황인데 타이밍이 계속 미뤄지는 것 같더라. 국회의원들의 나쁜 버릇이 있다. 항상 선거 앞이면 ‘선거가 있으니까, 뒤로 미루자’. 내년에는 또 대선이 있지 않나. 그걸 겁내지 말아야 하는데 안 하는 상황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이 의원과 소통을 하고 있는 걸로 안다.”

- 이 의원 안은 ‘종교기관 예외조항’으로 논란이 됐다.

“종교계의 경우 불교계에서 (예외조항을 삭제하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종교 관련 차별은 종교계 내부에서도 이뤄진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불교 사찰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거나 불상을 훼손하거나 사회복지시설에 찾아가 개종을 강요한 일들이 심각한 문제로 불거졌다고 한다. 불교쪽에선 종교기관 예외조항이 들어가면 법 제정에 동의를 못한다고 강하게 입장을 전한 걸로 안다. 보수개신교는 그런 조항이 들어가나 안 들어가나 어차피 반대할 거 아닌가.”

- 차별·혐오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결국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란 법으로서의 실효성도 있지만 국가가 다양한 차별의 문제를 개입할 수 없는 사적 문제로 내버려두지 않고 평등을 실현할 의무로 갖는다는 의미다. 특히 여러 차별 받는 사람 중에 쟁점이 됐던 게 성소수자다. 법이 있지만 적용이 안 되는 문제도 있다. 성소수자가 법적으로 보호를 못 받는 건 아니다. 근로기준법도 6조는 근로자를 성(性)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성소수자 차별받았다는 이유로 사건이 진행된 적은 없다. 노동위원회는 심지어 스스로 성소수자 차별을 다루는 부서라고 생각도 안 할 수 있다. 법의 공백 속에 존재하는 거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그로 인해 출발점, 돌파구가 될 거라 생각한다. 또한 보수개신교의 반대가 세보이지만 숫자가 많지는 않다. 한 단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확 바뀔 수 있는 계기들, 변곡점이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 지난해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 숙명여대 합격생 A씨의 입학포기도 그런 변곡점 중 하나일 수 있겠다. 다만 좌절의 경험이 쌓이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둘다 결과가 좋았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아마 당장은 되진 않을 거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게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좌절한 것도 있지만 다음에는 달라질 것이고, 이런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나가는 거 같다. 변희수 하사에 대해서도 인권위에서 차별이라고 나오지 않았나. 이것도 의미가 있는 거다. 이전에는 ‘성정체성을 드러내느니 절벽에서 떨어지는 게 낫지’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물론 변 하사처럼 드러내지 않기가 어려운 상황도 있다. 계속 군 복무를 해야 하니까. 여러 직업을 가진 이들이 드러나는 건 좋은 일이다.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내가 커서 뭘 해야 하는지 롤모델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성인이 되어서 무슨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사람은 만날 수 있는지, 사회생활은 할 수 있는지 등등. 성별정정과 관련해서도 보통은 재판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니까. 최근에는 소송을 진행하고 싶다는 분들,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분들도 있다. 소송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좀 더 할 일이 생길 것 같다.”

- 숙명여대 A씨는 롤모델을 박 변호사로 꼽았다.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차별 논란이 일 때마다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 같은 상징성이 따라다니는데 어떤가.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인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최초’라고 하는 것을 짊어져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고, 제가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냈다는 것도 감사하다. A씨도 변 하사도 어느 정도 제 존재로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감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항상 수식어가 붙고, 모든 정체성과 연관되어서 해석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다.”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변호사들. 사진=희망법
▲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 변호사들. 사진=희망법

박 변호사는 올해 희망법 대표를 맡게 됐다. 소속 변호사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대표직 순번이 돌아온 것이다. 2012년 창립한 희망법은 기업의 인권침해, 집회의 자유, 장애인권,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인권 등 4개 영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인성 질병 장애인의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신청자격 제한 헌법불합치 판결 △공무원 임용 면접에서의 장애 관련 질문 위법 판결 △허위사실 보도로 노조 명예를 훼손한 언론에 손해배상·정정보도청구 △방송제작현장 아동 및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 △2008년 촛불집회 주최자에 대한 경찰의 손해배상 소송 △장애인 사법지원 가이드라인 개정 △삼성중공업 크레인충돌 산재사건 추가조사 결정 △경찰이 자살로 단정한 조선소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산재 인정 △염전노예사건으로 불린 지적장애인 착취 사건 △문화재청의 성별표현 차별적 가이드라인 개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집회·시위법 무죄 확정 판결 등에 참여했다. 낙태죄 폐지를 비롯한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목소리도 이어가고 있다.

- 대표 맡게 된 소감은.

“희망법은 수평적 조직을 가치로 삼고 있어서, 높은 상급자라기보다는 회의를 이끌고 안건 준비나 논의를 촉진하는 것이 대표 역할이다. 저는 2017년부터 희망법과 함께했는데 그렇게 오래 활동한 건 아니지만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올해는 더 많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 희망법의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

“내년이면 희망법이 창립된 지 딱 10주년이다. 기념행사든 뭐든 할 예정이다. 저는 2017년부터 활동했지만 창립했던 분들에게 있어서는 공익 전업 변호단체에서 10년을 일했다는 게 여러 의미가 있을 거 같다. 희망법은 공동법률사무소이기도 해서 수임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전부 다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당장은 내년 10주년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큰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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