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는 소문이 빠르기로 유명합니다. 내가 뱉어낸 말이 서너 시간 후에 내 귀에 다시 들려올 정도니 말입니다. 그만큼 정보욕구가 왕성하고 정보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죠. 신문과 방송 보도의 가장 기본이 첩보, 조금 더 가공된다면 정보에서 출발합니다.

A사가 정부 모 고위관계자의 아들의 비리를 덮어 주는 대가로 정부 부처의 임대를 요구했다더라. B사가 윤전기를 들여놓으면서 모 은행과 거래가 있다더라 등 언론계에는 확인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카더라´ 통신이 생산·유통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말이 있듯이 사실관계의 차이는 있어도 상당수의 소문은 그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고, 부분 혹은 전체가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소문을 주의깊게 들으셨다면, A↔B의 논리구조가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비속어 표현으로는 ´A와 B를 엿바꿔 먹었다´는 거죠. 기자사회에서는 이 말을 ´빠터´고 표현합니다. 어느 한 일방에게 정보를 주는 것을 ´모찌준다´고 한다면 디지털시대 쌍방향 정보통신(?)은 ´빠터한다´고 표현할 수 있죠.

기자들의 정보거래, ´빠터´

기자들은 더 큰 정보를 얻기 위해서 부득이 하게 정보거래를 합니다. 취재원의 비중과 영역에 따라 작게는 ´누가 어떤 연예인과 친하더라´에서부터 ´차기 내각 구성´까지 정보의 ´빠터´ 는 종종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기자들이 ´빠터´를 하는 데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습니다. 타사 기자들에게 계속 물을 먹으면 기자들은 독이 오릅니다. 하지만 마음은 급한데 어떻게든 만회는 해야 하고, 하지만 기삿거리는 없고 이럴 때 기자들은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갑니다. 또 데스크가 기획아이템 내라고 쪼는 데 특별한 아이템이 없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빠터´의 유혹에 빠지는 순간이죠. 아무도 몰래….

기자들은 그렇지만 자사에 손해보는 ´빠터´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정보인척 하면서 타사 기자나 취재원이 솔깃한 얘기를 해주지만 사실은 별것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아! 이 순간 조심해야 합니다. 모두들 선수니까요. 중요한 취재원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발가벗는´ 심정으로 접근해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잊으면 졸지에 비중있는 취재원에게 양치기 소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앞의 경우처럼 보도의 영역을 벗어나 특정 언론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과 거래를 한다던가, 기자가 정보거래를 통해 취재원과 밀약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빠터´라는 말이 일본어인지 헤깔리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처음 들었을 때는 ´뻐터(?)´인줄, 아부한다는 비속어 표현으로 뭔가 잘 돌아가도록 버터를 바른다, 알았습니다.

한 기자가 어떤 소문과 그 배경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하는 데,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해서 한참 눈만 씀벅거리고 있자니, 그 분이 "빠터∼, 맞바꿨다고∼"라면서 빙그레 웃으시더군요. 이거 참, 상대방의 말도 제대로 못 알아먹으니 어떻게 깊이 있는 대화가 되겠습니까. 그 후 창피한 마음에 은어에 이 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중급 이상의 영어실력을 갖춘 분들이라면 ´빠터´라는 말의 의미를 대충 짐작하셨을 겁니다. ´빠터´는 ´바트´를 센 발음으로 한 것 같습니다. 영어의 Barter 즉, 물물교환이라는 뜻이죠. 간단하죠?.

80년대 들어 기사사회에 본격 유입

´바터´는 일본인들에 의해 우리 나라에 처음 소개된 말입니다. 일본은 근대화가 한창일 무렵 1878년에 처음 이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바터 시스템, 일본인은 이 말을 직환(直換)이라고 번역해 사용했죠. 이후 1883년에는 실물교환, 1935년에는 물물교환의 의미로 구상무역, 바터주의, 바터제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국내에는 1930년대에 이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일본에서도 ´바터제´를 구상무역으로 불렀다고 하니까요. 한 때 ´맞물림 무역´이라는 국어순화용어를 쓰기도 했지만. 이 말은 두 나라 사이에 협정을 맺어 일정 기간 동안의 거래를 같게 하여 결제 자금이 필요하지 않게 조정하는 무역, 교환무역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너무 사족이 길었나요. ´바터´가 일제시대 국내에 수입된 반면, 기자사회에서는 80년대 들어와서야 이 말을 쓰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교열기자협회 민기 고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그는 60∼70년대 신문 판매는 사회면 특종이 결정했다고 합니다. 사회부 기자들은 특종이 자기 출세와 사회적인 위치를 결정짓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다고 합니다. 민고문은 작은 정보는 기자 혹은 취재원과 주고받기보다는 기자실에서 풀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기자들 사이의 정보거래는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80년대 전두환 신군사정권 등장은 신문의 역할을 바꿔 놓았다고 합니다. 군사정권에서 사사건건 지면에 간섭을 하는 통에 사회면 지면의 위상도 대폭 낮아졌고, 단독기사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민고문은 말합니다. 또 경제 발전으로 정보의 량이 증가하고 국민의 관심 폭이 넓어진 것도 ´빠터´ 관행을 만든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오늘도 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이전 연재에서 약속드린 ´조처´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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