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동기인 윤종화 선수(전직 기자)와 나는 지난해 어느 모임에서 ‘99.9 채널은 경기도내 모든 마을미디어, 공동체라디오의 허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걱정도 있었다.

“마을미디어? 우리나라에 ‘마을’이 있나?” “얼마나 들을까… 광역화된 지역방송도 힘들어하는데…”

일리있는 지적이지만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나는 마을미디어의 정착가능성을 걱정하는 분들께 ‘라디오 영통’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서울에서 살다가 결혼 후 수원 영통구의 아파트 단지로 이사온 채서연씨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온라인 모임은 활발했지만 오프라인 모임은 전혀…삭막했다. 더구나 잠깐 살다 아이들 크면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경기도내 신도시들의 특징이다. 서연씨는 뭔가 하고 싶었다. 그 무렵 ‘고향’같은 개념이 없다며 아쉬워하는 분들을 만났다. 이 분들과 함께 서연씨는 ‘마을미디어’라는 걸 만들었다.

“추억거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기억할 수 있는 고향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마땅한 공간을 찾던 끝에 아파트 지하1층 창고를 빌렸다. 처음에는 이곳을 아이들에게 책읽기나 만들기 수업을 하는 ‘마을수업’ 공간으로 쓰면서 공동체라디오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그러면서 3년 쯤 될 무렵 드디어 내부공사를 통해 작은 라디오녹음실을 만들었다. 절반쯤 남은 공간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다양한 모임 장소로 활용했다. 그렇게 2019년 7월 전국 최초의 아파트 단지 마을미디어인 ‘라디오영통’이 탄생했다.

▲ ‘라디오영통’ 스튜디오. 사진=라디오영통 페이스북
▲ ‘라디오영통’ 스튜디오. 사진=라디오영통 페이스북

“저희 단지 앞에 방송국(경기방송)이 있었어요. 아침에 방송국을 내려다보면서 마을사람들이 함께 듣는 라디오를 꿈꿨죠.”

채서연씨와 동료들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디오를 송출했다. 아이들에게 책읽어주는 프로그램과 아파트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방송했다. 조회수는 얼마 없지만 방송을 시작하며 까르르, 방송 나오는 걸 들으며 또 까르르 웃는 추억이었다. 그러던 지난해 6월 사건이 터졌다. 마을 최대 이슈인 ‘낡은 소각장’ 처리 문제에 대해 같은 아파트 단지 주민 한 명이 소각장 앞 1인시위를 시작한 거다. 서연씨는 그저 같은 주민으로서 1인 시위 현장에 가봤는데, 함께하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코로나19 거리두기 때문에 모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되어가느냐’는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1인 시위가 한달 가까이 이어질무렵 ‘라디오영통’ 사람들은 이 현장을 휴대폰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자 엄청난 반응이 왔다. 궁금하고 걱정되는데 어디에서도 알 길이 없던 마을사람들이 ‘라디오영통’을 구독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껏해야 몇 십건이던 조회수가 몇 백건이 되더니 천건을 돌파했다. 구독자수가 천 명을 훌쩍 넘겼다. 구독자 천 명이 넘으면 ‘실시간 라이브 방송’도 손쉬워진다. 그래서 휴대폰 하나로 소각장 라이브 방송을 했다. 주민들의 댓글참여가 이어지고 시의원들이 움직이며 여론화가 됐다.

“앞으로는 아파트 입주민 회의 내용을 알리고 싶어요.”

영통지역 유력미디어가 된 ‘라디오영통’의 채서연 대표는 앞으로 마을미디어가 아파트 민주주의를 일구는 소통매체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미 주민들 사이의 단톡방도 만들어졌고 아파트 운영상황을 궁금해하는 주민들도 늘고 있다. 아파트 단지 근처 영흥공원이 개발공사되고 있는데, 개발되기 전 공원의 영상도 찍어뒀다. 제보영상도 이어진다. 아이들에게 ‘마을’에 대한 추억을 선사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렇게 물어봐요. 엄마 난 마을에서 태어났어 도시에서 태어났어?”

우리 모두는 마을 주민이다. 그곳이 아파트이든 주택이든 도농복합이든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마을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이슈가 있기에, ‘마을미디어’는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부동의 청취율 1위’ 매체가 될 것이다.

많은 지역방송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마을미디어를 밀어주고 상생하는 ‘달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1인미디어시대 지역방송의 로드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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