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며 동성 간 키스 장면을 삭제하거나 가린 채 내보냈다. SBS는 입장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동성애 반대’ 의도는 없었다”면서도 “가족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 있다”고 밝혀 ‘성소수자 지우기’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SBS는 13일 저녁 8시30분 영국 록밴드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편성해 방영하면서 동성간 키스 장면만 잘라내 도마에 올랐다. SBS는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와 짐 허튼(아론 맥커스커)의 입맞춤 등 머큐리의 키스신 2개를 삭제했다. 배경에 깔린 남성 엑스트라 간 키스신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반면 머큐리 아내였던 메리 오스틴과의 입맞춤 등 이성 간 키스신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이에 온라인에선 성소수자 정체성 지우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편집된 장면은 머큐리 일상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영화의 주제의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의 핵심 주제를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를 비추며 그의 성적 지향과 성소수자 정체성을 주제로 다뤄 음악 영화이자 퀴어 영화로 꼽힌다. 

SBS 관계자는 해당 장면을 잘라낸 이유에 “동성애에 ‘반대’할 의도는 없었다”면서도 “동성 간 키스 장면을 불편해하는 의식이 사회에 깔려있다 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녁 8시는 가족 동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인 데다 15세 관람가였고, 신체접촉 시간이 긴 장면은 편집했다”고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개봉 당시에도 12세 관람가로 상영됐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트레일러 갈무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트레일러 갈무리

SBS는 방통심의위원회 심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SBS 관계자는 “과거 동성애코드 키스신이 나간 데 대해 경고 판정이 나온 적이 있다”며 “우리도 그대로 내보냈다면 방심위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제재 조치는 당시에도 큰 비판을 받았고, 이후 최근 5년 간 동성 간 애정 표현 장면에 제재 조치를 의결한 적은 없다.

방통심의위는 2015년 4월 JTBC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이 동성인 두 고등학생이 키스하는 장면을 내보낸 데에 제재를 결정했다. 방통심의위 통신소위는 2016년 네이버 tv캐스트에서 제공하는 웹드라마 ‘대세는 백합’ 내 키스신에도 시정요구 조치했다. 

이후 방통심의위는 방송인의 마약 사건을 소개하며 성소수자 정체성를 언급하는 방송 보도에 제재 의결하거나 성소수자 인권 관련 방송에 수차례 ‘문제없음’으로 처리했다. 2018년에는 대구퀴어문화축제 이슈를 다룬 보도가 ‘반대 목소리’를 다루지 않았다며 ‘공정성 위반’을 이유로 의견제시를 결정하는 등 갈지자 행보를 보여왔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가 그 사회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려 하고 어떤 차별을 당했는지 비추는 영화다. 삭제된 대목은 그 핵심을 담은 장면”이라며 “방송사가 이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잘라낸 것은 오히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시청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방송사가 최근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 논의가 일어난다고 해서 해당 부분을 조명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그릇된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