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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15)] 조지다 ↔ 빨다
[언론계 은어(15)] 조지다 ↔ 빨다

"내 이놈을… 감히 누굴 넘봐. 단단히 단속하고 오너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가 몰매를 맞을 줄 알아라"

사극의 단골 메뉴는 대감집 외동딸과 동네 머슴(또는 나무꾼이나 백정, 허준처럼 서자)이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주인마님은 자신의 딸을 꼬신 더벅머리 총각을 데려다가 몰매를 놓으며 한바탕 난리 굿을 벌입니다. 하지만 사랑이 부모 맘대로 된답니까. 뭇매로 멍투성이가 된 총각과 딸은 야반도주를 하게 됩니다.

결국 주인마님은 병석에 드러누워서 "아가야(흑흑)"를 외치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합니다. "그때 확실히 조졌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을"하면서. 아니면 "딸을 잃느니 차라리 사위로 받아들였으면"이라고 후회할 지도 모르죠(물론 드라마의 시청률 때문에 이런 스토리는 없지만).

´확실´하게 조져라

언론계에서 야마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은어는 ´조지다´ ´빨다´입니다. 앞의 상황처럼 ´조지다´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단히 잡도리하다, 호되게 때리다"의 의미죠.

언론의 유일한 무기는 ´기사´입니다. 기자가 제 아무리 ´허풍´을 떨어도 그 기자는 기사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언론계에서는 출입처나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것을 ´조지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자사회의 ´조지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게´라는 단서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조질 때 확실히 조지지 못하면 반격의 여지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계에서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사 제목에서부터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완벽한 기사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99%까지 정확한 기사를 써야 한다"고 말이죠. 기자들은 누구나 이런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만 출입처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들을 조지는 기사에 협조할 리가 있겠습니까. 대부분 확인이 안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기자의 취재력이 돋보이는 기사, 바꿔 말하면 정확하게 조져서 출입처 사람들이 ´찍´소리 못 내게 하는 기사를 쓴다면 금상첨화겠지요. 기자들은 이런 기사를 쓴 기자에게 "(출입처에서) 되게 아프겠다"라고 말한답니다. 일종의 부러움과 칭찬이 포함된 말이라고 할 수 있죠.

인간심성 활용, ´어르고 달래라´

그러면 ´빨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상상하시는 대로 ´조지다´의 반대 의미입니다.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로는 해석이 되질 않습니다. 빨래를 빠는 것도 아니고, 아기가 젖을 빠는 그 어떤 의미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거죠. 난감하지만 제 사견으로는 비속어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도를 다녀온 친구의 말을 듣자 하니 인도에서는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 발에 입을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도는 엄격한 신분질서인 카스트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하층민인 수드라 계급이 바로 신의 발 부분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상대방에게 신발을 주거나 만지는 일도 극도로 불쾌해 한다고 합니다. 경의를 표하는 것 이외에 자신을 낮추는 비굴함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지만 ´빨다´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지다´ ´빨다´를 별개로 이해하면 기자들의 농담처럼 ´오보´를 내게 됩니다. 조지는 것과 빠는 것은 그만큼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원칙
1. 한번 세게 조지면 한번 빨아라.
2. 조질 때는 ´악´소리도 못하게 조져라.
3. 아무리 빨아도 한번 조지느니만 못하다. 취재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져라.

쉽게 말하면 ´어르고 달래라´는 말입니다. 기자들의 일상은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내부 심성을 활용해야 합니다. 제 아무리 화를 내던 사람도 비판의 원칙에만 동의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얼었던 마음도 눈 녹듯이 녹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언론계에서 이 말이 항상 좋은 데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 한국경제신문에서 산업연구원 이선 원장이 자신들과 관련된 보도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가 ´괴씸죄´에 걸려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데스크가 ´버릇을 고치겠다´면서 연일 비판기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야 조져버려"라면서.

´빨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광고주 등을 지나치게 빨아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광고주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총수와 관련된 일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고 반대급부를 받는 경우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광고주에게 조진다면서 반협박을 가했다가 광고를 받고 빨아주는 일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언론행위는 이렇듯 정도가 지나치면 부작용을 낳기 쉽습니다.

하지만 언론계 취재시스템과 출입처 제도에 변화 바람 때문에 이런 여지도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점차 전문화되면서 출입처의 접촉력도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깊이 있는 기사작성은 상대방이 할 수 있는 반론의 여지도 줄입니다. 은어 ´조지다´ ´빨다´가 언제까지 사용될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자들의 애환과 언론의 역사가 내포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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