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부동산 기사에 ‘벼락거지’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벼락부자’의 반대격인 표현인데 네이버 지식백과에도 올랐다. “자신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자조적으로 가리키는 신조어”라는 의미다.

연일 쏟아지는 기사들은 이런 상대적 박탈감을 한껏 자극한다. 매일경제는 지난해 11월22일 “집값 상승이 낳은 웃픈 현실…씁쓸한 신조어 ‘벼락거지’” 기사에서 부동산 커뮤니티를 출처로 ‘벼락거지’를 소개했다. 기사는 벼락거지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근로소득을 예·적금 통장에 넣는 ‘일개미파’와 정부 공급대책을 믿고 기다리던 ‘타이밍파’다.

▲'벼락거지'와 관련한 기사들. 사진=연합뉴스, 네이버
▲'벼락거지'와 관련한 기사들. 사진=연합뉴스, 네이버

주가 폭등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시기 조선일보(“월급만 믿다간 벼락거지” 8시50분이면 화장실 가는 주식 열풍)는 직장인들의 ‘주식 열풍’을 보도했다. 국내 주식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에 맞춰 너도나도 화장실로 몰려가 주식을 사고판다는 내용이다. 여러 문단으로 이뤄진 기사는 주식 잘해 돈 번 사람들과 이를 부러워하는 이야기로 채워졌다.

급기야 노골적인 광고성 기사들도 등장했다.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까지…‘내 집 마련’ 수요자들 인천 영종 주목(한국경제TV) △씁쓸한 부동산 신조어 ‘벼락거지’…익산시에 ‘내 집 마련’ 해답 있다(파이낸셜뉴스) △벼락거지 피하려고 줍줍…교성지구 풍림아이원 트리니움, 무순위 청약 받아(e대한경제) 등. 홍보관 주소까지 친절하게 적어둔 ‘기사’를 찾아보긴 어렵지 않다.

집값과 주가가 폭등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이지 않다. 현상 보도에 등장하는 전문가들도 지금처럼 과열된 시장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고, 충동적인 투자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에서 이런 분석이나 전망은 고작 몇 문장, 한두 문단에 그친다. 우려를 명목으로 대중이 상대적 박탈감과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심리에 올라타게 하는 것이다. 노동가치를 경시하는 풍조를 언론이 무책임하게 확대 재생산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매체의 부동산 광고성 기사들 제목
▲일부 매체의 부동산 광고성 기사들 제목

애초 언론이 ‘○○거지’라는 표현을 활용하는 방식의 문제도 돌아봐야 한다. 가까운 예로 이달 초 논란이 된 ‘개근거지’가 있다. 지난 2일 머니투데이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요즘 초등학생들이 개근하면 듣는 말’이라는 글이 올라왔다”며 기사화했다. 학기 중 체험학습 신청을 하지 않고 개근하는 아이들은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사실이 드러나 ‘못 사는 아이’ 취급 받는다는 내용이다.

해당 기사는 짐짓 “문제는 교실에 뿌리내린 ‘혐오’의 정서”를 꼬집었다. 그러나 되레 극소수 학부모나 커뮤니티 사용자들이 쓸 법한 표현을 공신력 있는 스피커에 올렸다는 비판이 돌아왔다. 비단 개근거지 뿐이 아니다. ‘월(세)거지’나 ‘전(세)거지’,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휴거’(휴먼시아 사는 거지) 등의 표현이 알려진 데 언론의 역할이 컸다. 상대적 가난을 당사자의 탓으로 돌리는 혐오 정서가 언론을 통해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실재하는 현상을 언론이 무작정 외면할 수는 없다.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시장과 정책의 문제, 주거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실, 아이들에게 퍼지는 어른들의 혐오정서 모두 문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언론의 존재 이유는 이 물음을 던지는 데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불행을 ‘○○거지’라 부르며 냉소하고, 혐오와 차별을 사회적 추세인 양 정당화하는 역할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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