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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13)] ´게찌(kechi)´
[언론계 은어(13)] ´게찌(kechi)´

우리말 표현에 ´∼붙다´는 맞닿아서 ´떨어지지 아니하다´ ´어울리거나 이어지다´ ´어떤 일이 서로 어울리어 시작되다´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말 그대로 정감 어리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붙어살다´는 뜻으로 사용하면 ´약삭빠르게 유리한 편을 든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 ´붙다´의 앞에 일본어 ´게찌´라는 말을 덧댄다면 어떤 의미가 될까요."게찌붙다." 언뜻 보기에는 ´붙어먹다´는 의미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의미를 찬찬히 뜯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게찌는 일본어로 ´kechi´라고 읽습니다. 명사로는 ´인색함´ ´초라함´ ´비열함´, 동사로는 ´∼재수 없는 소리를 하다´ ´∼트집 잡다´를 나타냅니다.

일본과 한국의 묘한 대립과 조화의 관계처럼 요즘 기자사회에서는 이 말을 ´어떤 사람이나 일에 트집잡다´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합니다. 즉 취재원들이 기사로 피해를 봤거나 오보라면서 기자에게 항의를 해왔을 때 기자들이 ´게찌 붙었다´고 말하는 것이죠.

정부부처와 대기업의 왕성한 ´게찌´

시대변천에 따라 개인 명예의 중요성이 강조된다고 할지라도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정부부처와 대기업 등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게찌를 붙는다고 합니다. 가판이 나온 뒤 편집국에는 2∼3일에 한번 꼴로 정부부처 공보실 관계자들이 기사수정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입니다.

특히 정부부처에서는 문화관광부, 기업 중에서는 5대 대기업이 가장 심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세 명 정도가 한 팀이 되어서 활동합니다. 이들의 역할은 시위담당, 연락관, 차량 및 고위와의 핫라인 담당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편집국에 정부관리 여러 명이 들어와 있으면 보기에도 안 좋을 뿐더러 혹여 언론간섭이라는 잡음을 우려해서입니다.

한 명이 담당 데스크나 기자 옆에서 기사 제목이나 내용 심지어는 기사를 빼줄 것을 요구하면서 죽치고 있으면 다른 한 명은 편집국을 들락거리면서 밖에서 대기 중인 관리에게 상황을 전달합니다. 차량에서 대기 중인 사람은 변하는 상황을 체크하고 상부와의 연락을 통해 지시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상당수 언론사들이 제목의 톤을 조금 낮춰주거나 기사 내용을 수정하는 선에서 합의를 해버립니다. 그들의 전략이겠지만 귀찮아서라도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곧은 소리를 잘한다는 ´뜻´도 내포

기자실에서도 ´게찌붙는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한솥밥을 먹다가도 출입처를 비판하는 기사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부처의 경우에 관리들이 기자실에 전화를 걸거나 방문을 해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섭섭하다´ ´이럴 수 있느냐´면서 기사에 항의를 하면 동료기자들이 해당기자에게 "야 게찌붙었다"면서 반농담을 던집니다.

게찌는 외부에서 붙는 경우 이외에도 편집국 내부에서 붙기도 합니다. 데스크나 선배들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딴죽거는 사람에게 일명 게찌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언론사 편집국에는 ´조게찌´라고 불리는 기자가 있기도 합니다. 물론 ´조게찌´라는 별명에는 곧은 소리를 잘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음을 밝혀 둡니다.

하지만 해방 전후에는 ´게찌붙다´를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기자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가면서 ´유리한 기사를 써주겠다´며 변론비 즉 촌지를 요구했을 경우에 동료 기자들이 ´게찌붙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일반인들이 감히 기사에 대해 항의할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에게 국한되어 사용한 것이 당연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촌지를 받아먹으며 기생하는 기자를 비꼬는 말에서 기자에게 항의하는 일을 지칭하는 말로 의미가 변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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