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다른 분들은 생소할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정확한 뜻을 몰라서 ´내가 취재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기자사회에서 풀(pool)은 사전적인 의미처럼 "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각출한 요원들"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대통령 해외순방이나 국빈초청 등의 경우에 주로 풀 취재를 하게 됩니다. 갑자기 수백 명의 기자들이 대통령 취재 등에 몰려들 경우 경호나 행사진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타사 기자를 대신해 취재·촬영할 기자를 선발합니다. 일명 대표선수를 뽑는 거죠.

대표선수는 특별한 때를 빼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합니다. 방송사 카메라기자의 경우 방송3사 중 한 회사가, 신문사 사진기자는 10대 종합일간지 중 보통 2명 정도가 그림을 찍어서 다른 회사들과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방송사의 경우 3사가 거의 비슷한 그림을 찍기 위해 카메라, 카메라 보조 등 거의 천만원에 가까운 출장비를 지불하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통령 순방 등을 보도하는 3사 뉴스를 보면 그림이 모두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신문사 사진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사 크레딧에 ´특별취재단이나 공동취재단´이라고 쓰인 것은 대부분 풀 취재를 했다고 보면 됩니다.

효율적인 취재를 위한 기자들의 약속

그러나 취재기자들의 사정은 조금 다릅니다. 한 신문사에서 최소한 한명 이상이 가게 마련입니다. 사진처럼 기사를 베끼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각 사마다 기사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취재지시를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때론 취재기자들도 풀 취재를 합니다. 자발적이거나 별도 요청이 있을 경우인데, 한꺼번에 여러 장소에서 행사가 진행될 때 기자들끼리 담당영역을 나눠 할 때가 자발적인 경우에 속합니다. 대통령은 정상회담, 장관은 실무회담, 수행 전경련 회장들은 기업 대표들과의 만남 등 중심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한 기자가 동시에 취재할 수는 없으니까요.

지난해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한했을 때의 일입니다. 언론은 여왕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고 싶어했지만 여왕 측이 경호문제를 들어 풀 취재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자단에서는 여왕이 움직이는 동선에 각각 한 명씩 기자를 배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취재를 마친 후에는 취재결과를 모아서 나눠 사용했다고 합니다.

풀 취재는 기자들 사이의 효율적인 취재를 위한 약속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이 깨지거나 오·남용되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기자단 내부의 ´사전합의´라는 절차가 없었음에도 기자들 사이에서 찍은 사진을 마구 나눠준다거나 또 그 사진을 자사 기자가 찍은 것처럼 보도하는 것을 들 수 있죠.

한 언론사 기자가 발품팔며 고생하면서 사진을 찍어오니 다른 언론사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기자 이름으로 사진을 ´턱´하니 써버리는 거죠. 취재한 기자는 생고생만 하는 거죠. 물론 사진을 제공한 측도 문제지만 다른 기자가 찍은 사진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는 언론사 관행이 더욱 큰 문제겠지만 말입니다.

기자들 사이의 담합이 되기도

기자들은 해외취재를 할 기회가 많습니다. 물론 취재명분이 확실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외부기관에서 돈을 대는 외유취재입니다. 그중에서도 위성발사 등 정부에서 취재비 일체를 부담하는 국가적인 사안의 경우, 비슷한 취재를 위해 20여명이 넘는 기자들이 따라갈 필요가 굳이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풀 취재가 필요함에도 정부의 언론플레이와 기자들의 외유욕이 맞아떨어져 풀 취재를 하지 않는 거죠. 풀 취재는 기자들 사이에 담합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취재 후 국민의 알권리보다 기자들의 담합으로 그 결과를 아예 보도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정보가 기자단 내부에서 1차로 걸러지는 과정에서 비슷한 내용이 되거나 동일한 의제가 선택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기자사회의 풀 제도는 허와 실이 있습니다. 효율적인 취재라는 명분과 기자들의 그릇된 윤리의식이 상충하고 있는 것이죠. 인간사 모든 일이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자의 모든 취재행위는 사회정의와 국민의 알권리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기자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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