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온라인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집단·반복적으로 모욕, 따돌림, 협박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지난 1일자 주요 일간지 1면은 ‘북한 원전 건설’ 사건에 집중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다른 소식을 다뤘다. 혜린양(16)이 전아무개(18)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A양을 비롯한 또래 친구들에게 온라인상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드러븐 걸레짝 같은 X아, XXX아.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보라고 죽이기 전에”, “죽여두댐? 뒤질래?”, “니XX 걸레인 거 소문 내주리?”, “혜린이가 걸레인 건 개팩트잖아”, “혜린아 쌍판대기 갖구와봐 X패줄게” 등등. A양이 페이스북 단체방에서 혜린이에게 한 말들이다. 혜린이는 가해자인 전군에 대한 유죄 선고 열흘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일자 한국일보 5면. 또래 집단은 장양이 숨기고 싶어했던 피해 사실을 페이스북 단체 대화방에서 공개하고 피해자를 '걸레'라고 조롱하는 등 2차 가해를 일삼았다.
▲지난 1일자 한국일보 5면. 또래 집단은 장양이 숨기고 싶어했던 피해 사실을 페이스북 단체 대화방에서 공개하고 피해자를 '걸레'라고 조롱하는 등 2차 가해를 일삼았다.

 

▲장혜린(가명·16)양이 2019년 자필로 작성한 일기장 일부. 성폭행 피해자였던 장양은 “말하고 싶어도 반응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고 적었다. 우리 사회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혔을 때 피해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양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또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양 유족 제공.
▲장혜린(가명·16)양이 2019년 자필로 작성한 일기장 일부. 성폭행 피해자였던 장양은 “말하고 싶어도 반응이 감당이 안 될 것 같다”고 적었다. 우리 사회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밝혔을 때 피해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양은 피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채 또 다른 학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양 유족 제공.

인천지법은 지난해 10월8일 전군에게 장기 5년, 단기 3년6월형을 선고했다. 전군은 형량이 너무 높다며 항소했다. ‘소년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이런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데도 청소년법이 있어야 하나.” “소년법 폐지해야 한다.” 한국일보 보도에 달린 댓글이다.

한국일보 보도 후 청소년 사이버 폭력에 대처하는 기관들인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경찰청 등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위기 청소년 발굴·지원 시스템을 개편하고 강화하기로 했다. 채지선, 김영훈, 박소영, 신지후 기자들이 이 보도에 집중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채지선 한국일보 기자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단순 사건 기사일 수 있었다. 4개월간의 취재를 결심한 이유는?

“지난해 9월 제보를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인 혜린양이 가해자 유죄 선고를 앞두고 사망했다는 제보였다. 의아했다. 가해자가 결국엔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피해자는 그걸 못 보고 숨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들여다보니 피해자가 죽기 전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웠으면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혜린양 변호인을 수소문했다. 이후 유족들을 찾아뵙고 설명을 듣게 됐다.”

-사건 이면이 어땠나?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큰 맥락에서 혜린이는 2019년 성폭행을 당했고, 성폭행 사실로 사이버불링이라는 2차 가해를 당했다. 제보를 받고 지난해 10월 혜린이 부모님 집에 방문했다. 페이스북 단체 채팅, 카카오톡 메시지 등 대화 목록과 일기장 등을 통째로 다 받았다. 부모님과 이 자료들을 같이 보면서 혜린이가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추적했다. 또래 친구들과의 대화를 보면서 ‘이런 부분에 괴로웠을 것 같다’ ‘이 부분은 심각하다’ 등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록을 전부 봤던 게 주된 취재였던 것 같다. 기사에도 썼지만 대화를 읽어보니 또래 친구들이 성폭력 사실을 사이버상에서 폭로했고, 이유 없이 혜린이에게 욕을 정말 많이 했다. 기자인 내가 읽어나가는데도 정말 힘들었다.”

▲성폭행 피해자였던 장양이 2019년 7월에 작성한 일기장 내용의 일부. 고통 속에서도 장양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흔적이 보인다. 장양 유족 제공
▲성폭행 피해자였던 장양이 2019년 7월에 작성한 일기장 내용의 일부. 고통 속에서도 장양이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흔적이 보인다. 장양 유족 제공

-1면에 보도하게 된 이유?

“지난해 9월 제보받은 사건인데 보도는 지난 1일에 나갔을 만큼 굉장히 조심스러운 사건이었다. 성폭력 2차 가해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낀 기존 보도들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성폭력 2차 가해 형태인 ‘사이버불링’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대책들이 마련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책들이 마련되면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성폭행 가해자인 전군이 항소했다. 누리꾼들은 소년법을 지적하고 있다.

“전군은 형량이 많다며 항소했다. 혜린이를 사이버상에서 괴롭힌 친구들은 경찰 수사를 받았고, 현재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어가 있다. 소년법은 19세 미만에게 적용되는 법으로 교화에 방점이 있다. 이 법에 ‘죄질에 비해 가해자 형량이 가볍다’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이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법의 심판을 통해 치유를 받는 측면이 있다.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피해자는 더 상처받는다.”

-사이버불링 신고 건수가 2019년 대비 2020년 2배 증가했다. 사이버불링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필요하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이버불링은 보통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는 사이에서 빚어진다. 어떻게 해결할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 후에 걸맞은 교육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아이들이 재미로 또래 친구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들에게 굉장한 고통이라는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부에 물어보니 또래들끼리 상담해주는 형식의 교육 과정을 개발할 거라고 했다. 서로 입장에 서보면 사이버불링 심각성과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 가정, 관계기관 등에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먼저 선생님들에게 말하고 싶다. 1차가 가정, 2차가 학교다. 학교는 마지노선이다. 학교에서 놓치면 끝이다. 선생님들이 고생스러운 것 잘 안다. 아이들에게 애정 있는 분들도 많다. 다만,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문제아라고 낙인찍기보다 아이가 힘든 게 있는지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요즘엔 학교마다 상담교사가 한 분씩 계신다. 상담교사에게 연결까지만 해줘도 좋을 것 같다. 당위적 이야기지만 학생들도 사이버상에서 피해 학생을 보고 방관해선 안 된다. 방관도 가해다. 이런 일이 있으면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에게 이야기해 피해 친구가 구제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