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언론계 은어(9)] 야마(山)-1
[언론계 은어(9)] 야마(山)-1

"너는 야마도 제대로 못 잡냐"

편집국을 들어서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구겨진 부장의 얼굴, 아 죽고만 싶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부장은 보자마자 닦달을 시작합니다. "취재 어떻게 한거야" "야 이XX 야! 너는 다른 애들 기사쓰는 거 보지도 않았냐"

초판이 나오는 저녁 7시 반이면 내가 쓴 기사는 국장부터 부장까지 적나라한 평가를 받습니다. 기사 밑에 빨간 줄을 그어가면서 내 기사와 타사 기자들의 글을 비교하는 부장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마치 빨가벗고 ´누드쇼´를 하는 느낌이죠.

깜빡 다른 생각을 했군요. 부장의 꾸중이 계속됩니다. "야마가 이게 뭐야" "너는 야마도 제대로 못 잡냐" "(신문을 휙 집어던지며) 저리가!" 이럴 땐 부장의 얼굴 앞에서 빨리 사라져주는 것이 상책입니다. 가슴이 답답합니다. 이럴 땐 유일한 친구, 담배나 피워야겠습니다.

담배 한 모금을 빨고 나니 갑자기 초년 기자시절이 생각납니다. 신입교육이 끝나고 경찰기자에 배치됐을 때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서에서 밤을 새우는 생활은 고달픔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뭐니 해도 ´글 못쓰는 기자´라는 자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선배들은 수시로 저에게 "야 야마도 제대로 못 잡아. 기사가 이게 뭐야"라며 욕을 해댔습니다. 분명히 내용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늘 깨지기 일쑤였죠. 취재는 열심히 했지만 ´제목´을 뽑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사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첫 문장과 제목으로 뽑아내고, 관련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글을 이끌어 가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취재한 내용을 나열하려고만 했으니 깨지는 것도 당연한지 모릅니다. 이럴 땐 신문을 찢어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 오늘은 기자생활의 회의가 느껴집니다. 3년차 아직 초년 티를 벗지 못했지만 오늘도 여지없이 부장에게 깨지는 제가 싫습니다.

´야마(山)´ = 날끝·나사 ⇒ 기사의 핵심내용

실제 같은 상상을 해봤습니다. 언론계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바로 ´야마´입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기사의 핵심, 주제를 의미하는 말이죠. 하하! 그런데 저는 초년기자 시절에 이 말을 "야마 확 도네"라고 표현할 때 그 ´야마´인 줄 알았지 뭡니까. 요즘 ´개그 콘서트´에서 유행하고 있는 "니 살짝 돌았나"는 말로 받아들인 거죠. 데스크가 "핏대 세우며 야마가 뭐냐"고 물을 때 저는 "야마 도네"라고 상상했으니…

야마는 한문으로 산(山)이라고 씁니다. 뜻은 뫼 산. 이럴 때 산은 후지산 정도의 큰산이 아닙니다. 한반도로 생각하면 해발 1,000m이하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의미로는 톱의 날 끝이나 나사를 의미합니다.

이 정도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셨을 겁니다. 일본어의 산, 날끝, 나사가 왜 언론계에서는 ´기사의 핵심 내용´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을까요. 사실 야마의 뜻을 추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언론계 고참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히 그 뜻을 아는 분이 없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기자들이 자신들이 일상어처럼 사용하는 말의 제대로 된 어원조차 모르다니. 갑자기 의욕이 솟더군요.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야마´의 의미를 추적한다는 즐거움에 가슴이 설레더군요. 핑계같지만 지난 한 주 ´이야기 마당´을 거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일주일동안 고민한 응답이 왔습니다. 교열기자협회 민기 고문이 그 모든 답을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야마´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으며, 그 뜻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얘기가 길어졌군요. 다음 주는 ´야마´의 어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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