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 이야기다. 매년 4월18일 학교에서 4·19국립묘지까지 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대학교 새내기가 됐다. 달리기에 자신 있던 선배는 이를 악물고 달렸더니 5등을 했단다. 5등까지 주는 작은 상을 받았다고. 2학년 때도 참가했으나, 막걸리 과음으로 체력이 망가졌는지 결과는 18등 했단다. 입상권 밖이다. 그러나 4·18 기념 마라톤 특별상으로 18등인 자기도 상을 받았다고. 3학년 때는 30등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4·19혁명 30주년 기념으로 30등인 자기가 상을 받았다고. 그것도 더 큰상을. 이쯤 되면 입상은 실력이 아니다. 타이밍이다.

이번 주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재정 관련 뉴스는 IMF에 따르면 대한민국 2025년도 국가채무비율이 64.96%가 된다는 소식이다. 37개 선진국 중 증가 폭이 9위라고 한다. 이 뉴스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SBS 등 40개가 넘는 기사에서 인용되었다. 특히, 서울경제, 파이낸셜뉴스, 이투데이, 디지털타임스 등은 사설에서도 다뤘으니 이만하면 ‘빅히트 상품’이다. 그런데 모든 기사가 IMF 자료를 인용했으니 그 출처는 과연 IMF일까?

▲ 연합뉴스는 7일 IMF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인용했다고 하나 IMF는 7일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발표한 바 없다.
▲ 연합뉴스는 7일 IMF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인용했다고 하나 IMF는 7일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발표한 바 없다.

 

7일 IMF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인용했다고 하나 IMF는 7일 세계경제전망 자료를 발표한 바 없다.

40여 개의 기사를 보면 거의 모두 “7일 IMF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달아놨다. 그러나 IMF는 대한민국이 2025년에 국가채무비율이 64.96%가 된다는 자료를 2월7일 발표한 적이 없다. IMF는 몇 달에 한 번씩 경제 전망치(World Economic Outlook)를 발표한다. 가장 최근 자료는 21년 1월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가채무 자료 업데이트는 없다. IMF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 국가의 국가채무비율을 발표한 시점은 지난해 10월이다. 그래서 IMF 경제전망치 ‘2020년 10월(IMF WEO oct. 2020) 자료에 따르면’이라고 출처를 달아야 한다. 

그럼 7일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기자가 지난해 10월 IMF 자료를 본 날이 7일이라는 의미다. 기자가 7일 IMF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봤을 수도 있고, 아니면 기재부가 IMF 자료를 7일 언론사에 제공했을 수도 있다. 언론계에 이상한 관행이 있다. 오래전 자료를 인용해서 기사를 작성하려면 좀 뜬금없을 수 있다. “그 기사가 중요한지는 알겠어. 근데 왜 하필 지금이지?”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있다. 이를테면 지난해 1월1일에 발표된 어떤 자료를 이제야 봤다. 그런데 기사 가치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21년 2월7일 기사를 쓸 수 있다. 그럴 때 기사 출처는 ‘지난해 1월1일 발표된 어떤 자료에 따르면’이 아니다. ‘7일 어떤 자료 따르면’이라고 눙치는 이상한 관행이 있다. 기자가 그 자료를 본 시점이 언제인지는 뉴스 가치가 없다. 누가 언제 그 자료를 발표했는지가 중요하다. 중요한 자료라면 발표된 타이밍을 놓쳤다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말자. 그냥 솔직히 원자료가 발표된 시점을 기록하고 그 자료가 왜 지금 시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논리적 근거를 더 충실히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지난해 10월 자료가 ‘갑툭튀’ 40여개 언론에서 기사화가 되고, 여러 개의 사설을 이제야 장식할까? 이 비밀을 알고자 한다면 더 중요한 타이밍을 알아야 한다. 첫 번째 기사는 7일 새벽 5시에 출고된 연합뉴스다. 그리고 7일은 일요일이다. 전에도 일요일 새벽 5시에 출고된 연합뉴스 기사가 많은 언론에서 인용되는 비밀을 다룬 적이 있다. 

[관련기사 : 연합뉴스 기사, 인용될수록 강해진다?]

일요일 출근한 기자들이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을 때, 그날 새벽에 연합이 일용할 양식을 줬다면, 일하기 싫은 일요일 기사 하나가 뚝딱이다. 다만, 출처는 정확히 하는 것이 좋다. 정확한 출처는 ‘7일 IMF에 따르면’도 아니고 ‘20년 10월 IMF 경제전망’도 아니다. ‘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이라고 인용해야 한다. 어차피 연합뉴스를 통해 누구에게나 공개된 IMF자료를 확인했기 때문에 IMF를 출처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

▲ 연합뉴스 보도를 토대로 7일 IMF를 출처라고 인용한 기사와 사설
▲ 연합뉴스 보도를 토대로 7일 IMF를 출처라고 인용한 기사와 사설

 

그럼 한 번 IMF 원자료를 보자. 2020년 10월 IMF WEO 보고서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IMF 보고서에는 한국 국가채무비율 관련 언급 자체가 없다. 관련 내용은 IMF 보고서와는 별도로 IMF가 20년 10월 발표한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한다. 195개 IMF의 회원국 정부의 수입, 지출, 재정수지, 총부채, 순부채 등의 각종 재정자료 수십년 치와 2025년까지의 예측치가 모두 들어있는 광활한 정보의 바다다. 그 정보의 바다 중에서 선진국을 택하고, 총부채 비율을 선택한 후에 하필이면 2025년 총부채비율에서 2015년 총부채비율을 뺀 수치가 “37개 선진국 증가폭 중 9위”라는 제목을 달아서 출고한 기사다. 자료출처만 IMF WEO oct. 2020이지 특정한 정책적 목적을 통해 상당히 공을 들여서 분석한 결과다. 

IMF 재정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한국 재정은 꽤 건전한 편에 속한다. 선진국 37개 재정수지 건전성 순위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5위에서 2020년 2위로 올라간다. 21년도 국가채무비율 건전성 순위가 11위다. 특히 연합기사가 언급한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재정수지 비율을 합산해 봐도 한국은 37개 국가 중 재정수지 비율 건전성이 상위 10위에 랭크된다. 즉, 2015년부터 2025년을 따지더라도 한국 재정 수입과 지출의 차이는 ‘벌어진 악어입’이 아니라 제법 건전한 축에 속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재정 데이터베이스를 이리저리 돌려봐서 한국에 불리한 자료를 찾는 실력과 노력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를 무시하고 출처를 ‘7일 IMF’로 하는 것은 물론 ‘IMF 2020년 10월 경제 전망치’로 달아도 안 된다. ‘7일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이 돼야 한다.

다만 오해는 마시길. IMF 데이터베이스 자료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부정적인 지표를 하나 뽑아냈다고 저 기사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재는 물론 2025년도 재정건전성 지표가 좋다 하더라도 그 증가율이 너무 가파른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 좋은 기사다. 이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기자 본인이든 또는 정부부처 누군가에게 제공 받았는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만약 정부부처 누군가에게 IMF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한 자료를 받은 것이라면 연합 기사 출처는 이렇게 돼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분석한 IMF 2020년 10월 경제 예측치에 따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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