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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은어(8)] 당꼬(談合)
[언론계 은어(8)] 당꼬(談合)

담합 ≒ 유착

우리 사회의 ´담합´은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담합은 사회의 비리와 부정부패의 온상입니다. 그래서 항상 담합이라는 말에는 ´유착´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국회에는 여야간에 잇속을 챙기기 위한 밀실 합의가 있으며, 대기업에는 그럴싸한 광고 뒤에 가격 담합인상이라는 독이 숨어 있습니다. 유통업자들에게는 작황이 좋지 못한 농산물을 창고에 쌓아두고도 방출하지 않는 이기심이 있고, 국민들의 코 묻은 돈을 훑겠다는 동네 목욕탕이나 대학가 하숙집의 얄팍한 상술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그중 단연 대표적이라 할 만한 것이 건설사들의 입찰 비리입니다. 건설사들의 ´담합´ 관행은 그 뿌리가 깊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말입니다. 그 당시 우리사회의 소수 특권층이었던 친일파들이 일본인들의 행태를 답습한 결과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행해져 오고 있는 것이죠.

일본인들은 담합(談合)을 ´당고(Dang Go)´라고 부릅니다. 당고의 일본어 사전의 의미는 "상의하다, 의논하다"입니다. 모든 일을 상의해서 해결하는 일본인들의 특유한 민족성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속담에 "의논할 사람이 없으면 무릎하고 의논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당고는 일본에서도 사전의 긍정적인 의미와 다르게 일상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검소하고 청빈하다는 일본의 관리들도 업체들의 ´당고´를 묵인하는 대가로 검은 돈을 받았다가 검찰에 소환되거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신 분은 조금 더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기자들의 담합 관행, ´당꼬´

기자사회에서도 담합 관행이 있습니다. 기자들은 ´당고´를 ´당꼬´라고 부릅니다. 기자사회에서 ´당꼬´의 의미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협업과 생존의 논리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당꼬´는 혼자 힘으로 특종하기 어려운 경우에 주로 합니다. 서울지법의 경우에 하루에 쌓이는 공소장만 해도 한 자 높이는 된다고 합니다. 취재하기도 바쁜 시간에 언제 소장을 일일이 뒤지겠습니까. 특히 옷로비 사건처럼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이럴 때 당꼬를 합니다. 자신이 기삿거리의 냄새를 먼저 맡았다고 해도 한두 개 사의 기자들에게만 상의를 한 뒤, 타사 기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취재에 들어갑니다. 그런 다음에 ´꽝´하고 터트리는 거죠.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안 타사 기자들이 비분강개할 것은 뻔하겠죠.

사실 이런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한두 사의 기자들이 연속해서 특종을 할 경우에 독이 바짝 오른 타사 기자들이 이런 수법을 쓰기도 합니다. 연속되는 타사 특종으로 회사의 질책의 강도는 점점 세어지는데 만회가 안될 경우에 골탕을 먹이기 위해 사용하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 당꼬해서 저 XX 물 먹이자."

´왕따´, 그릇된 경쟁심 유발

당꼬는 ´왕따´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기자실에서 얌체처럼 혼자만 정보를 독식하거나 특종을 하는 기자를 ´왕따´시키는 화풀이용으로도 사용됩니다. 그 기자만 빼놓고 쑥덕공론을 한 다음 다 함께 기사를 써버리는 거죠. ´꽝´하고. 반면 그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액물 기자가 특종을 하면 아예 타사 기자들이 특종기사를 받지 않는 거죠. 참 치사하죠. 중딩이나 고딩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왕따´를 기자들이 한다니…

하지만 당꼬하기로 한 기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있습니다. 각자 역할 분담을 해서 취재를 하던 도중에 혼자만 특종거리를 찾았을 때 얼마나 고민하겠습니까. 특종을 버리느냐, 기자의 의리를 지키느냐는 갈림길에서 헤매는 거죠. 하지만 원래 마피아도 의리 하나는 끝내주잖아요. 결론은 도원결의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참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입니다.

이처럼 ´당꼬´는 기자들의 본질적인 심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기자도 인간이기에 한 기자실에서 지지고 볶다보면 퇴행적인 인간 본심이 나오는 거죠. 조금 거창하게는 집단적인 룰과 그 룰을 깨는 사람에 대한 응징이라고 해야 될까요.

여하튼 사정이 그러해도 당꼬는 가해자가 집단과 소수라는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피해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또 그로 인해 기자사회에 그릇된 경쟁심이 유발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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