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가지´도 쉽지 않군요

매주 한 가지씩 ´은어´를 고민한다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일간지 기자들과 같은 ´기자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주로 선배들의 입을 빌려야 합니다. 한번은 총선시민연대 기자회견장 스케치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제가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기자가 저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하더군요. 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느냐고. 나 같으면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을 적시했을 거라고.

이번 연재를 하면서 내내 저를 괴롭혔던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현장´의 경험이, 물론 저도 기자고 언론이라는 또 다른 현장을 취재하고 있지만, 부족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일본어 취재용어는 그래서 저의 궁금증을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험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조급증´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일본어뿐만 아니라 각종 외래어나 비속어 등도 조금씩 다루어 볼 참입니다.

쵸칭모치(chochin mochi)

"으으...너희들의 앞잡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나를 죽여다오"
"독한 놈. (채찍을 들고 때리며) 말해. 누구야"

이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상상을 하십니까. 독립투사를 고문하는 일본 순사,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고문실. 그리고 우리 민중들이 일제 식민지배에 맞서 싸워 독립을 쟁취했다는 마음 뿌듯함? 그렇다면 반대의 상상도 가능하겠지요. 일본의 앞잡이, 변절자, 한국인 순사, 독립투사를 고문하는 반민족주의자? 독립투사와 앞잡이. 역사교육 탓인지 내가 둘 중에 어디에 비교되는가에 따라 기분이 상하기도, 마음 뿌듯해지기도 합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기자 사회에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 중에 대표 격이라 할만한 것이 바로 쪼찡입니다. 사실 ´쪼찡´은 정확한 발음이 아닙니다. 일본어의 ´쵸칭모치(chochin mochi)´의 앞부분 쵸칭만을 떼어 ´쪼찡´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쵸칭´은 한문으로는 제등(提燈)으로 일본식 등잔인 ´초롱´을 의미합니다. 일본식 음식점 앞에 걸려 있는 주름잡힌 붉은 색 등이 바로 ´초롱´입니다. 모치는 ´갖고 간다´는 일본말로 둘을 합해 직역하면 ´초롱을 들고 간다´가 됩니다.

의미가 금방 이해가 되지 않죠? 일본인들이 밤이 이동하기 위해서는 등이 필요하겠죠. 지위가 높은 사람일 경우 초롱을 들고 길을 훤하게 밝혀주는 주인을 떠받드는 역할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리란 짐작이 가능합니다. ´쪼찡´은 그래서 기자사회에서 ´남의 앞잡이가 되어서 그 사람의 장점 등을 잘 선전하는 자´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내 얼굴이 뭐가 되는냐"

기자들을 칭할 때 ´쟤는 스트레이트용이야. 인터뷰용이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취재원이나 출입처를 비판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잘 쓰는 기자와 인터뷰 등 비교적 호의적인 기사를 잘 쓰는 기자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쪼찡´은 호의적인 기사를 주로 쓰는 기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전 연재에서 밝혀 두었듯이 기자는 비판기사와 호의적인 기사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조절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연속해서 출입처에 호의적인 기사를 쓰거나 호의수준을 넘어서 아예 취재처 사람으로 오인될 수준의 기사가 나갈 경우 담당기자에게 ´쪼찡´이라는 농담을 합니다. "야 너 쪼찡이지"라고. 이 말을 듣는 기자는 상당히 기분이 안 좋겠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도 기사를 잘 보면 아시겠지만 기사만을 두고 볼 때 동정란이 이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열독율은 상당히 높지만 ´민원성 기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본사 내방´이라는 이름으로 ´누가 언제 본사를 내방해서 어떻게 했다´는 류의 기사는 상대방에게 최대의 호의를 베풀어주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기자는 본사 내방을 두고 "누가 우리 회사에 왔는지 뭐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하냐"고 말하더군요.

그래도 만약 편집국장이나 부국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내방한 사실을 동정란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핀잔을 듣는다고 합니다. "내 얼굴이 뭐가 되느냐"는 국장급들의 성화가 싫어서라도 신경써야 한다는 거죠. 아무래도 당장은 바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 이제 ´쪼찡´이라는 말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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