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터뷰이는 2018년 12월 인권운동가 이용수씨였다. 마지막은 지난해 9월 ‘소금꽃’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었다. 2년 동안 만난 여성 100여명의 이야기는 88회 팟캐스트로 연재됐다. 이들의 음성이 지난달 20일 책으로 발간됐다. 오마이뉴스의 유지영(30) 기자, CBS의 박선영(33) PD가 펴낸 책 ‘말하는 몸’ 얘기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의 부제는 ‘내가 쓰는 헝거’다. 헝거는 말하는 몸의 시작이었다.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 게이는 자전 수필집 헝거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폭력의 상처부터 여성의 몸을 둘러싼 왜곡된 편견을 자기 경험과 함께 다뤘다. 록산 게이는 책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고 썼다. 박선영 PD가 눈을 반짝인 문장이다. 

“우리가 ‘여기 이렇게 말하는 몸들이 있다’고 알리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여성이 타인에게 왈가왈부되는 대상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청년 언론인이 2년 전 의기투합한 이유다. 지난 1일 유지영 기자와 박선영 PD를 만나 책 발간 이야기를 들었다.

▲'말하는 몸'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지난달 20일 책을 발간한 박선영 CBS PD(왼쪽)와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사진=문학동네 제공
▲'말하는 몸'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지난달 20일 책을 발간한 박선영 CBS PD(왼쪽)와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 사진=문학동네 제공
▲'말하는 몸' 책 표지.
▲'말하는 몸' 책 표지.

 

화장품 카운슬러 ‘오드리’는 자신의 친족 성폭력 경험을 말했다. 아일랜드 이주자 ‘봄이’는 백인 중심 사회 속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을 얘기했다. 한 생리중단 시술경험자는 “모든 여성들이 생리를 멈추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며 “생리 해방 세상”이라는 말을 남겼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성평등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여성 언론인들도 나왔다. 한국은 2017년에야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방송한 나라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도 팟캐스트에 나와 “최근에 와서야 자유로워졌다”며 “아나운서로 일한 10년 중 7~8년 정도는 몸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어떻게 해야 날씬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운동에 진심’인 한 기자는 운동하는 몸을 얘기했다. 고된 방송 노동을 돌아본 10년 차 방송작가는 “이제는 가마니, 헌신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몸을 무시하면 내 몸은 복수해요”라고 밝혔다.

책에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고백이 나온다. 두 제작자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인터뷰이들이 왜 다 여성이었느냐’는 질문에 박 PD는 “차별은 몸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성도 마찬가지겠지만, 여성은 훨씬 더 엄격하고 획일적인 잣대에 직면한다”며 “이 때문에 너무 많은 여성들이 자기를 괴롭히고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했다. ‘몸 말하기’가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라고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마지막 인터뷰이가 된 것도 심사숙고한 결과다. 박 PD는 김 지도위원을 ‘타인에게로 확장하는 몸’이라고 표현했다. 늘 약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김 지도위원 모습이 말하는 몸의 취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36년째 한진중공업 복직 투쟁 중인 그는 2011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에 반발해 35m 높이 타워크레인에 올라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2018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으나 2019년 12월 다시 거리에 나섰다. 대구 영남대의료원에서 부당해고돼 복직 투쟁 중인 이들을 응원하려고 부산에서 대구까지 110㎞를 도보 행진했다. 지난해 6월 자신의 복직 투쟁을 선언했다. 올해 만 60세가 된 그는 정년을 채웠다. 그러나 ‘복직 없이 정년 퇴임은 없다’며 지난해 12월30일 부산에서 서울 청와대를 향해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현재 경기 평택을 지난 그는 7일 청와대에 도착한다. 

▲팟캐스트 녹음 중인 유지영 기자. 사진=문학동네 제공.
▲팟캐스트 녹음 중인 유지영(오른쪽) 기자. 사진=문학동네 제공.

 

유 기자는 “다시 태어나도 노동운동을 하고 싶습니다”라는 김 지도위원 말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노조를 혐오하는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한다는 건 자신을 혐오에 노출시키는 일이다. 그런데도 운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고, 앞으로도 변화할 수 있으리라는 그의 결의가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2년을 꼬박 채운 제작 과정은 고됐다. 팟캐스트를 진행할 땐 매주 주말을 말하는 몸에 반납했다. 인터뷰이를 알아보고, 사전 취재한 뒤 인터뷰 질문지를 보내면 다시 받아 구성을 마무리했다. 2~3주에 1번 꼴로 녹음하고 편집했다. 책 작업을 할 땐 일일이 녹취를 풀어 다시 글로 썼다. 이를 인터뷰이들에게 다시 검토받고 일화마다 각자 짧은 수필을 붙였다. 그렇게 지난달 20일 말하는 몸이 발간됐다. 

두 사람은 자신의 변화로 용기를 언급했다. 유 기자는 책에서 “내 질문 안에는 그동안 내 몸과 삶에 대해 생각해왔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것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며 “이 여정은 우리가 각자의 몸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성들의 삶을 기록함과 동시에 그들의 용기를 경유해 우리의 삶을 말해보려 한다”고 썼다. 

말하는 몸 콘텐츠는 마무리됐지만 박 PD와 유 기자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종대의 뉴스업’ 제작진인 박 PD는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시사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열중하는 게 현재 목표”라고 말했다.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인 유 기자는 강제 추행 문제와 관련한 르포르타주를 쓰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